“돈 내고 눈치보기 싫어” 경로당 떠나는 노인들

정동하 기자 2026. 9. 1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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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회비에 비해 운영 부실하고 텃세까지… ‘무인 카페’가 새 사랑방으로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경로당에 한 남성이 홀로 앉아 있다. 최근 ‘무인 카페’가 동네 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경로당을 대체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10일 오후 1시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동에 있는 한 무인(無人) 카페를 찾은 신화연(79)씨. 신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친구들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2인용 테이블 4개가 놓인 무인 카페 창가 자리는 신씨의 ‘고정석’이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나면 으레 이곳에서 오후 시간을 보낸다는 신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 경로당을 주로 찾았다고 했다. 그런 신씨가 왜 경로당 대신 무인 카페를 찾게 된 것일까.

신씨는 “경로당에 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 혼자 우두커니 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고 했다. 동네 노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사랑방’ 역할을 경로당이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신씨는 “카페에 오면 사람 사는 느낌이 들고, 오래 있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어 편하다”고 했다. 이날 오후 이 카페를 찾은 손님도 대부분 신씨와 비슷한 또래 노인들이었다.

그래픽=김의균

경로당을 찾는 노인이 줄고 있다. 서울시복지재단 통계를 보면 경로당 회원(서울 기준)은 2022년 15만4743명에서 2024년 12만8126명으로 2년 새 17.2% 감소했다. 서울의 65세 이상 노인 중 경로당 회원에 가입하는 노인 비율도 2022년 9.3%에서 2024년 7.4%로 1.9%포인트 줄었다. 반면 경로당 수는 매년 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전국 경로당은 2021년 6만7655곳에서 지난해 6만9687곳으로 4년 새 2000곳 넘게 늘었다. 매년 500곳 안팎 새로 생긴 셈이다. 경로당은 늘어나는데 정작 찾는 노인은 줄고 있는 것이다.

노인복지법상 경로당은 65세 이상이 이용하는 노인 여가 복지 시설이다. 통상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이 회원으로 가입해 이용한다. 가입비와 월 회비를 받는 곳도 많다. 가입비는 2만원 안팎, 월 회비는 3000~2만원 수준이다. 경로당에서는 매달 받는 회비 등으로 점심과 간식 등을 제공한다.

그런데 노인들은 회비에 비해 운영이 부실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숙(81)씨는 두 달 전 집 앞 경로당을 찾았다가 회원이 4~5명밖에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매달 회비 2만원을 내야 했지만 그만한 서비스를 받는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반찬이 집밥보다 못하고, 딱히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매달 2만원씩 내는 게 아까웠다”고 했다. 김씨는 그 뒤로 경로당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 노인은 기존 회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로당 특유의 텃세도 발길을 꺼리게 만든다고 말한다. 서울에 사는 조현옥(66)씨는 “같은 노인이라도 경로당 안에서는 회원들끼리 나이 차이가 크다”며 “나이 많은 어른들이 은근히 눈치를 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2024년 서울연구원 조사에서 막 노년층에 접어든 60~64세는 경로당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경로당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100가구 이상 아파트에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경로당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새로 지어 놓고 문을 닫아두는 경로당도 적잖다.

전남광주의 한 아파트 단지 경로당도 몇 년째 문이 닫혀 있다. 400가구 규모인 이 아파트 주민은 “단지에 사는 어르신이 10명 안팎이라 경로당을 운영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다른 아파트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노인 인구가 10%도 되지 않아 경로당이 아예 비어 있는데 입주자 대표 회의에서 공간이 너무 아깝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글이 올라왔다. 한쪽에서는 노인들이 경로당을 떠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용할 사람이 없는 경로당이 계속 생겨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경로당 정책과 관련해 ‘몇 곳 만들었느냐’보다 ‘노인들이 실제로 찾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로당을 노인들이 모여 시간을 때우는 공간으로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경로당에 운동·교육·디지털 프로그램 등을 갖추고, 노년층에 갓 접어든 세대도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로당은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라며 “노인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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