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풍요, 체감은 팍팍… 지역 경쟁력도 물러섰다

안현 2026. 9. 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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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가 첫발을 뗀 1992년, 강원에 발령을 받아 신혼살림을 시작한 9급 공무원을 가정해 당시의 장바구니를 33년 뒤 다시 채워봤다.

이 가격은 당시 본보가 보도한 강원지역 주요 소매시장 가격을 합산해 재구성한 수치다.

이에 따라 강원의 1인당 GRDP는 전국 평균 대비 88.5%에서 82.1%로 떨어졌고, 1992년 비슷한 수준이었던 충북 대비 비율 역시 91.8%에서 70.8%까지 낮아졌다.

'개인의 삶은 나아졌지만, 지역경제의 상대적 위치는 뒤로 밀린 33년', 오늘날 강원도가 받아 든 진짜 영수증의 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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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10000호 ┃33년 뒤 열어본 강원 장바구니
동일 직급 구매력 2.65배 개선
식료품·교통비 3~5배 상승 부담
1인당 GRDP 6배 ↑ 전국 하회
생산력 대비 개인소득 격차 작아
강원경제의 진짜 영수증

강원도민일보가 첫발을 뗀 1992년, 강원에 발령을 받아 신혼살림을 시작한 9급 공무원을 가정해 당시의 장바구니를 33년 뒤 다시 채워봤다. 월급으로 살 수 있는 먹거리는 얼마나 늘었고, 강원에서 살아가는 형편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지령 1만호를 맞이한 본지가 한 가정의 영수증을 시작으로 지난 33년간 도민의 구매력과 지역경제가 받아 든 진짜 내역을 들여다봤다.

■2만550원 장바구니, 33년 뒤 6만9652원

1992년 12월, 강원도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젊은 부부가 알뜰하게 장을 본다. 쌀 8kg과 계란 한 판, 돼지고기 한 근, 배추와 무 한 개씩, 그리고 출출할 때 끓여 먹을 신라면 5봉지. 당시 시장 영수증에 찍힌 총금액은 2만 550원이었다. 이 가격은 당시 본보가 보도한 강원지역 주요 소매시장 가격을 합산해 재구성한 수치다.

33년이 흐른 2025년 12월, 똑같은 장바구니를 채우려면 6만 9652원이 든다. 33년 만에 장바구니 물가가 3.39배로 뛴 셈이다. 품목별 변화의 폭은 더 극적이다. 돼지고기는 한 근에 3000원에서 1만 6572원으로 5.52배나 뛰어 비교 품목 중 가장 많이 올랐고, 달걀은 4.55배, 무는 4.00배 상승했다. 반면 밥상의 주식인 쌀은 2.63배 상승에 그쳐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상승 폭을 보이며 물가 방어선 역할을 했다.
▲강원도민일보 1992년 12월 26일 5면 기사.
▲강원도민일보 1992년 11월 26일 7면 기사.

 

■장바구니 노동시간 22.2시간에서 6.9시간으로

숫자만 보면 삶이 팍팍해진 것 같지만, 노동의 가치와 비교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92년 시간당 925원이었던 최저임금으로 이 장바구니를 채우려면 무려 22.2시간 동안 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2025년 최저임금(1만 30원) 기준으로는 6.9시간만 일하면 된다. 장바구니 하나를 채우기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이 15.3시간이나 줄어들며, 최저임금 기준 구매력은 약 3.2배 개선됐다. 공무원 월급으로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1992년 9급 1호봉 기본급(22만 2500원)으로는 장바구니를 10.8번 채울 수 있었고 기본급의 9.24%를 쏟아부어야 했다. 반면 2025년 9급 1호봉 기본급(200만 900원)으로는 같은 장바구니를 28.7번 살 수 있어, 월급 대비 비중이 3.48%로 뚝 떨어졌다. 동일 직급 기본급 기준 구매력이 2.65배 나아진 것이다.

■전체 물가보다 빠르게 오른 먹거리·교통비

그렇다면 도민들은 왜 여전히 살림살이가 팍팍하다고 느낄까. 강원지역 소비자물가는 1992년과 2026년(1∼7월 평균 기준)을 비교했을 때 2.71배(44.61→120.97)로 올라섰다. 문제는 도민 일상과 직결된 품목의 상승 폭이다. 같은 기간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수는 3.84배(33.59→128.98) 뛰었다. 이동 비용은 더 가팔라 택시료는 5.18배(25.34→131.21), 시내버스료는 무려 8.87배(13.85→122.90)나 솟구쳤다. 소득이 늘었어도 밥을 먹고 이동하는 기본 생활비 부담이 전체 물가보다 훨씬 빠르게 커진 탓에 체감 구매력의 개선 폭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다.

■성장했지만 전국·충북보다 더뎌

강원과 전국의 경제 체력 격차도 벌어졌다. 강원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92년 577만 1000원에서 2022년 3442만 6000원으로 5.97배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이 651만 9000원에서 4194만 8000원으로 6.44배, 충북이 628만 9000원에서 4861만 6000원으로 7.73배 늘어난 것에 비하면 성장이 더뎠다. 이에 따라 강원의 1인당 GRDP는 전국 평균 대비 88.5%에서 82.1%로 떨어졌고, 1992년 비슷한 수준이었던 충북 대비 비율 역시 91.8%에서 70.8%까지 낮아졌다.

■근로소득 낮고 이전소득 높아

생산과 소득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착시 현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22년 기준 강원의 1인당 GRDP는 전국의 82.1%에 불과하지만, 1인당 개인소득은 전국의 95.8%까지 바짝 따라붙었다. 지역의 자체 생산력에 비해 도민 개인이 손에 쥐는 소득의 전국 격차는 상대적으로 작다는 의미다. 이 같은 차이는 소득 구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은행 강원본부 분석에 따르면 강원지역은 다른 시·도보다 근로소득 비중이 낮고 사업·재산·이전소득 비중이 높다. 부족한 근로·사업소득을 기초연금이나 사회보장급여 등 이전소득과 재산소득이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1992년 신혼부부가 맞이한 오늘날의 강원도는 분명 과거보다 풍요로워졌다. 하루 넘게 일해야 채우던 장바구니를 이제 반나절이면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일상 먹거리와 교통비의 가파른 상승은 도민의 체감 물가를 짓눌렀고, 강원 경제의 자체 생산 엔진은 전국 평균과의 격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개인의 삶은 나아졌지만, 지역경제의 상대적 위치는 뒤로 밀린 33년’, 오늘날 강원도가 받아 든 진짜 영수증의 내역이다. 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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