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세상을 역주행하는 마음[책과 삶]
윤고은 지음
문학동네 | 212쪽 | 1만7000원

주인공 ‘미아’는 생존배낭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 사내 동호회로 시작한 마라톤이지만 어느덧 풀코스를 뛰는 마라토너가 됐다. 미아는 풀코스 완주 1㎞를 앞두고 스쳐 지나간 얼굴 때문에 돌연 역주행한 전적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태오’는 지하철 K선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인턴 직원이다. 소설 속 세상은 인공지능(AI) 덕분에 대부분의 것들이 자동화되면서 하나의 노선 전체를 한 명의 담당자가 맡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커지는 승객들의 불만에 K선 운영사는 이곳을 사람이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요량으로 태오를 뽑았다.
두 사람은 K선 마라톤 행사를 준비하다 만났다. 마라톤 증정품 중 하나로 미아 회사의 생존배낭이 포함되면서다. 나이 차가 꽤 나는 두 사람이지만, 이들은 어느새 서로를 향한 마음이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연인이 된 두 사람은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낭만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키운다.
책 제목이기도 한 ‘테니스 나무’는 두 사람의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 테니스 코트에 굴러다니는 공들이 “깨물면 상큼한 과즙이 흐르는 라임빛 열매”로 보이는 순간을 담은 말이다. 하지만 K선 인근에서 우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고 둘의 관계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소설은 사랑의 모습으로 시작되지만, 사회 속에서 소진되는 한 청년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대부분 자동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무관심해졌고, 기업들도 자동화와 매뉴얼이라는 방패막을 쓴 채 직원들을 더 불편한 자리로 몰아낸다. 사고 이후 K선의 ‘얼굴’을 맡은 태오에게 모든 비난이 향하는 모습은 현실 속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가 정이현은 추천사에서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윤고은만의 ‘사회파 소설’”이라고 평했다.
<테니스 나무>는 한국 최초로 영국의 문학상인 대거상 번역추리소설부문을 수상한 작가 윤고은의 신작 장편이다. 전작에서도 보여줬던 기발한 상상력에 사랑이라는 주제가 만나 한층 몰입력을 높였다.
서현희 기자 h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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