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색으로 풀어낸 치유의 춤…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권지현 2026. 9. 1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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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색으로 이뤄진 겹겹의 무복을 입은 무녀가 무대에 올라섰다.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에 쓰러져 괴로운 듯 몸을 떨자, 무녀 역의 무용수가 그들에게 가만히 다가가 오방색의 겉옷을 하나씩 벗어 덮어 주었다.

윤 단장은 "작품에서 무감서기는 1장에서 무녀가 무용수들에게 옷을 덮어주는 행위로 시작해, 마지막 장에서 무녀와 같은 오방색의 옷을 입고 즉흥 춤을 추는 행위로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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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감성으로 재해석한 정화와 치유의 굿…다섯 빛깔 속 해방의 난장
"굿, 스스로 돌아보고 나를 찾는 과정"…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색으로 이뤄진 겹겹의 무복을 입은 무녀가 무대에 올라섰다.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에 쓰러져 괴로운 듯 몸을 떨자, 무녀 역의 무용수가 그들에게 가만히 다가가 오방색의 겉옷을 하나씩 벗어 덮어 주었다.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시연된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무감서기'는 전통 굿과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오방색(五方色)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품은 서울굿을 모티브로 굿이 지닌 정화와 치유의 의미를 현대의 감성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서울굿의 한 부분인 '무감서기'는 굿을 의뢰한 사람이 무녀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행위다. '굿을 의뢰한 이가 스스로 복을 구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윤혜정 서울시무용단 단장과 함께 춤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 등에서 이름을 알린 무용수 기무간 등이 창작했다.

흐느끼는 울음소리로 막을 여는 제1장 '흑의 눈물'은 고통과 맺힌 감정이 몸에 깊이 남아 있는 상태로, 치유를 위한 의례를 시작하는 부분이다.

방울 소리 같은 무구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검은 옷을 입고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린 무용수들이 군집을 이뤘다 흩어지며 몸부림에 가까운 춤으로 괴로움을 표현했다. 이윽고 몸을 떨던 무용수들은 무대 밑 부분으로 떨어지듯 퇴장하고, 무녀가 그들에게 옷을 덮어 줬다.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음 장인 황·청의 눈물은 서서히 고통을 인식하고 그 고통을 한 걸음 떨어져 보기 시작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슬픔과 아픔의 기억을 형상화한 몸부림은 2장에서 박진감 넘치는 음악 속 절도 있게 손을 뻗는 안무로 바뀐다.

경쾌한 꽹과리 소리와 함께 다시 등장한 무녀가 복을 기원하는 '비나리'를 추는 3장은 굿판 속 무속인의 모습을 그대로 따왔다.

오방색 줄이 달린 방울과 부채를 흔들며 콩콩 뛰기도 하고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던 무녀가 퇴장하자, 붉은 옷의 무용수들이 빠른 장단에 맞춰 역동적인 몸짓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모든 음악이 멈추며 소리꾼 김율희가 '이고 지고…'로 시작하는 창을 부르며 등장했다.

하얀 고깔에 겹겹의 하얀 옷을 입은 기무간이 이에 맞춰 평온과 정화의 경지를 그려내는 가운데 김율희는 '지나간 것들, 품고 온 것들, 이고 지고 온 것들…'이라며 노래했다. 기무간은 정제된 움직임으로 켜켜이 쌓여온 감정을 기꺼이 품고 삶을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표현했다.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지막 장 '무감서기'에서는 오방색이 한데 섞인 다채로운 빛깔의 옷을 입은 45명의 무용수가 등장해 해방의 난장을 펼쳤다.

세 겹의 원을 그려 빙빙 돌기도 하고 무릎을 치다가 만세를 하며 신명 나게 논 이들은 한바탕의 굿판이 끝난 각자의 자리에서 고요히 오방색의 겉옷을 벗어 내려놓았다.

무대는 무녀 역 무용수가 사람들이 내려놓은 삶의 무게를 나눠서 지는 것처럼, 옷들을 주워 담으며 마무리됐다.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연 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윤혜정 단장은 "작품은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위해 내가 행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밝혔다.

누군가 복을 내려주는 의식이 아닌, 인간이 자기 내면을 관찰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현대적 의례로서 굿을 조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윤 단장은 "주변 상황과 남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우리 조상들이 행했던 무감서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과정이 현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무감서기에서는 무녀가 굿을 하던 도중 굿을 의뢰한 사람이 무녀의 옷을 빼앗아 입고 즉흥 춤을 춘다.

윤 단장은 "작품에서 무감서기는 1장에서 무녀가 무용수들에게 옷을 덮어주는 행위로 시작해, 마지막 장에서 무녀와 같은 오방색의 옷을 입고 즉흥 춤을 추는 행위로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녀의 옷마저도 벗어놓고 떠나는 무용수들의 마지막 모습은, 굿이 끝난 이후 후련하게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라며 "무감서기에 들어 있는, 스스로 문제를 이겨내는 정신과 태도에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공연은 이날 개막해 오는 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어진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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