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북적북적] 데니스 홍 교수 “한국 피지컬 AI 승부처는 제조 현장…현실 데이터 확보가 관건”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실제 산업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물리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데니스 홍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세계적인 제조업 기반을 활용해 피지컬 AI 분야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데니스 홍 교수이자 로멜라(RoMeLa) 로봇연구소장은 지난 2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제18회 착한 성장, 좋은 일자리 글로벌포럼(2026 GGGF)'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피지컬 AI 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홍 교수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로봇을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존 로봇 시스템에서는 센서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면 컴퓨터가 정보를 분석하고, 사람이 미리 입력해둔 알고리즘에 따라 모터나 유압장치 등이 움직이는 방식이 주로 활용됐다.
최근에는 이 같은 과정을 AI가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센서로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로봇이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AI 기반 제어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 과제로 떠오른 것이 '데이터'다.
생성형 AI는 인터넷에 축적된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 등을 활용해 학습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지만 로봇에게 필요한 데이터는 성격이 다르다. 로봇의 관절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어느 정도의 힘을 사용하는지, 물체와 접촉했을 때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지 등 현실 세계의 물리적 정보를 필요로 한다.
홍 교수는 현재 피지컬 AI가 이러한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 환경에서 로봇을 학습시키는 방법은 실제 공간과의 차이 때문에 현실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이 VR 장비를 활용해 로봇을 원격 조종하며 데이터를 모으는 방식 역시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온라인에 공개된 영상 역시 충분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영상으로 움직임은 확인할 수 있지만 물체를 잡거나 밀고 당길 때 발생하는 힘과 접촉에 관한 정보까지 그대로 확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홍 교수가 한국의 제조업 현장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등 한국이 높은 경쟁력을 갖춘 산업 현장은 로봇과 기계가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가상 환경에서는 얻기 어려운 다양한 물리적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홍 교수는 한국이 이러한 산업 현장을 피지컬 AI의 학습 기반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봤다.
"생성형 AI 데이터는 인터넷에 있었지만 피지컬 인공지능(AI)에 중요한 데이터는 현장에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제조 현장을 자동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다시 AI 학습에 활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AI 학습에 반영한 뒤 개선된 기술을 다시 현장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한국만의 '제조 밀착형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미국과 중국의 AI 전략을 그대로 추격하기보다는 한국이 이미 확보하고 있는 산업 기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홍 교수는 "빅테크 중심의 미국식 AI 개발 모델이나 막강한 하드웨어 공급망을 무기로 삼는 중국의 방식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현장을 보유하고 있다"며 "현장 데이터 강점을 바탕으로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피지컬 AI 기술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해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AI를 활용한 로봇 제어는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AI가 어떤 과정을 거쳐 특정 행동을 결정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문제가 존재한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제어공학을 AI로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두 기술의 장점을 결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00년 동안 축적된 모델링 기반 제어 기술에 AI를 접목해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휴머노이드와 피지컬 AI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로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좋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가'를 꼽았다.
"휴머노이드와 피지컬 AI의 성패는 결국 현실 세계의 정교한 데이터를 누가 가장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어 "한국 산업계가 가진 제조 현장의 강력한 실체적 강점을 극대화해 실용적인 피지컬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지컬 AI의 경쟁은 이제 단순히 더 정교한 로봇을 개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로봇이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판단하며 작업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다시 기술 발전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한국에게는 이미 세계적인 제조 현장이 있다는 점에서 기회가 있다. 결국 관건은 이 현장을 AI 시대의 새로운 데이터 자산으로 어떻게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