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곁에서 묵묵히 아무런 대가 없이 내 삶을 메워주는 [김윤지의 애살맞아 생긴 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공필수였던 행정통계학에서 나는 F를 받았다. 성적이 뜨던 날 나는 그 알파벳을 세 번쯤 다시 봤다.
그때 내 식에는 우울함이라는 변수 하나뿐이었고 새로운 설명변수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어쩌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오만하게도 그건 전부 내 노력과 끈기의 몫인 줄 알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통계학·계량경제학 용어, 주어진 조건
전공필수 행정통계학 F학점에 재수강
걱정 달래며 카페서 공부 도와준 친구
카톡으로 식사·출퇴근 등 안부 챙기며
말없이 와서 방 치우고 밥 차려준 엄마
둘의 마음 크기 정확히 계산할 수 없어

전공필수였던 행정통계학에서 나는 F를 받았다. 성적이 뜨던 날 나는 그 알파벳을 세 번쯤 다시 봤다. 전공필수라 안 들을 수도 없다. 안 들으면 졸업이 안 되는 과목이었다. 당연히 재수강을 했고, 그럼에도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이다솔을 붙잡고 카페에서 엉엉 울며 공부를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분산이 어떻고 R제곱이 어떻고 말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그게 가장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계량경제학을 또 배웠는데 맥락은 똑같았다. 모집단을 모를 때 모집단을 추정하는 방법. 그게 이 학문의 목적이자 의의이다. 추정하려면 식을 하나 세워야 한다. 지금부터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나도 그렇게 재수강을 했고 겨우 졸업했다.
회귀식은 Y = α + βX + ε로 쓴다. 왼쪽의 Y가 우리가 알고 싶은 참값이고 오른쪽은 그걸 맞혀보려고 세운 추정이다. 그런데 아무리 변수를 늘려도 α + βX 만으로는 왼쪽 Y의 값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맨 끝에 오차항 ε를 붙인다. 설명변수가 못 채운 몫을 오차항이 떠맡아야 등호가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차항은 그저 주어진 조건이기에 시험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 학기 시험지도 전부 β를 구하는 문제였다.
지금 이맘때, 그러니까 가을이었다. 재수강 첫 수업을 듣는 와중에 내 3학년 2학기 학점이 예측됐다. 이대로 가면 행정통계학 때문에 졸업을 못 하겠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날 알바를 끝내고 온 이다솔한테서는 버터 냄새가 폴폴 났다. 나는 다솔이를 붙잡아 다시 카페로 갔다. 책을 펴고 다솔이가 문제 하나를 풀어주면 나는 이해가 안 되어서 엉엉 울었다. 혼자 풀어보다 막히면 계산기를 잡고 또 울면서 나 이러다 졸업 못 하면 어쩌냐고 했다. 다솔이는 그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다. 신기하게도 걔는 한 문제를 세 번씩 설명하면서도 목소리가 커지지 않았다. 카페가 문을 닫으면 자리를 옮겼고 옮긴 데서도 같은 문제를 다시 풀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갔고 나는 결국 그 과목을 통과했다. 성적을 확인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고마움이 아닌 안도감이었다.
다솔이는 내 식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의 식에는 출석과 문제를 풀며 도서관에 앉아 있던 시간만 있었다. 온전히 '나'라는 설명변수만 있는 식이었고 그 식대로라면 나는 재수강에서도 F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솔이를 변수로 설정하지 않았고 당연히 성적표에는 내 이름만 찍혀 나왔다. 다솔이는 설명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설명하려 하지 않아서 오차항이 된 사람이었다. 설명변수가 아니었으니 당연히 다솔이의 몫도 남지 않았다.
내 생활 속 또 다른 오차항은 항상 엄마였다. 다솔이가 한 학기 안에서 뚜렷하게 잡히는 항이라면, 엄마는 학기가 끝나고 내가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리를 뜬 적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안 보였다. 늘 있는 것은 변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값은 식에서 계수를 갖지 못하고 상수 쪽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없는 쪽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딱히 대답할 말도 없지만 나에겐 너무 당연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답이 없어도 다음 날 같은 시간에 또 온다. 가끔 대화창을 위로 올려보면 한쪽 말풍선만 줄줄이 이어져 있다. 엄마의 말만 우르르 쏟아져 있다.
이 주 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 밥도 잘 먹지 않았다. 그때 내 식에는 우울함이라는 변수 하나뿐이었고 새로운 설명변수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주중 내내 전전긍긍하던 엄마는 주말이 되자마자 나를 보러 왔다. 어질러진 집을 말없이 치우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 밥을 차렸다. 나는 그 밥을 먹으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고 집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냄비에 찌개가 이틀 치나 남아 있는 걸 봤다.
오차항의 성질 중 하나는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계산할 수 있는 건 예측과 실제의 차이인 잔차뿐이다. 진짜 오차항은 모집단에 있고 모집단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저 두 사람이 실제로 나를 얼마나 메워줬는지는 원리적으로 계산이 안 된다. 참값을 알아야 구해지는데 안타깝게도 참값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학점이 몇 점 올라갔는지, 그 주에 밥을 몇 끼 먹었는지는 셀 수 있다. 그건 잔차다. 다솔이가 자기 시험공부를 몇 시간 미뤘는지, 엄마가 주중에 몇 번이나 전화를 걸까 말까 했는지는 셀 방법이 없다. 그날 김치찌개에 들어간 재료값은 계산할 수 있어도 내가 걱정되어 마음이 쓰였던 엄마의 일주일은 계산이 안 된다. 그리고 당연히 계산이 안 되니 고마움도 정확한 크기로는 못 느낀다. 그렇다고 안 느껴도 되는 건 아닌 걸 알면서도 나는 오래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았다.
원대한 포부와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언젠가 그 참값에 닿을 줄 알았다. '나'라는 설명변수만 늘리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쩌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오만하게도 그건 전부 내 노력과 끈기의 몫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하루가 쌓이고 경험치가 늘어도 내 식은 여전히 모집단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가끔 내 식이 모집단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 때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오차항을 찾았다. 계수는 조금씩 바뀌고 표본은 해마다 늘어난다. 표본이 늘면 추정이 정밀해진다고 배웠는데 이상하게 오차항의 크기만 커지는 기분이다.

/김윤지 하동군 근무
☞필자는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