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아날로그 장인정신의 반격

전지현 기자(code@mk.co.kr) 2026. 9. 10. 17: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천만 영화 '오디세이'는 신(神)에게 휘둘리는 인간의 이야기다.

CG와 타협하지 않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아날로그 장인정신이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현대 영화관에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CG가 만든 가짜에 질린 사람들이 아날로그의 신화를 '영접'하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갔다.

AI를 비롯한 혁신 기술이 바꾸는 세상의 변화 속도에 대한 거부감도 아날로그의 재부상에 불을 붙인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CG가 만든 환영 아니라
실제 세트장서 고군분투
영화 '오디세이' 천만 돌파
가짜 영상에 질린 사람들
혼신 다하는 장인에 열광
전지현 오피니언부장

천만 영화 '오디세이'는 신(神)에게 휘둘리는 인간의 이야기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다. 컴퓨터 그래픽(CG)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피땀 눈물로 만든 대서사이기 때문이다. 10.7m 높이 실제 목마 안에 배우와 촬영팀이 들어가 고군분투하면서 찍었다. 좁은 공간에서 버티는 배우들의 고통과 땀방울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CG처럼 보이는 장면조차 진짜였다. 여신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을 돼지로 만드는 마법은 고무 재질의 돼지 애니매트로닉스와 특수 분장, 정교한 카메라 앵글,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마저 실제 움직이는 높이 18m 구조물을 제작해 찍었다. 그리스 남부 동굴에서 자연광 촬영으로 기괴한 괴물이 주는 공포를 오롯이 담아내 경이롭다.

CG와 타협하지 않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아날로그 장인정신이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현대 영화관에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감독은 현장에서 모든 것이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끝까지 몰아붙여 관객들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CG가 만든 가짜에 질린 사람들이 아날로그의 신화를 '영접'하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갔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감독의 집념에 압도돼 생전 처음으로 같은 영화를 한 번 더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AI에 밀리고 있지만,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증명해 더 뜻깊은 작품이었다. CG가 만든 환영이 아니라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혼신을 다한 진짜 영상에 전율했다. 어떤 난관에도 물러서지 않고 전력질주하는 인간만이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우쳐준다. 소셜미디어를 잠식해 가는 AI 영상에 속으면서 느꼈던 배신감과 혼돈이 이 걸작으로 정화됐다.

기계와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람에게 더 끌린다. AI가 뚝딱 만들어낸 글보다는 창작의 고통으로 써 내려간 인간의 문학에 더 매력을 느낀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제품보다 오랜 세월 연마한 장인의 수제품에 더 높은 값을 치른다. 인생을 바쳐 이뤄낸 예술의 경지는 쉽게 '복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대인 젊은이들도 사람 손길의 값어치를 안다.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물건보다 희귀성과 진정성, 창의성이 깃든 공예품에 더 가치를 둔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인간의 흔적을 구입하는 것이다. MZ세대는 이런 '가치 소비'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즐긴다. 자개장이나 도자기, 한지 등 전통을 '힙(Hip)'하다고 여기며 SNS에서 구매 인증샷을 자랑한다. 최근 가수 던은 지연장 배무삼의 방패연 등으로 꾸민 집을 TV 예능에 소개해 "감성 장인" "문화유산을 지키는 연예인"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콧대 높은 명품도 장인들에게 구애를 하고 있다. 최근 샤넬은 40년 넘게 전통 목가구를 만들어온 조복래 소목장을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하고 전시를 지원했다. 소목은 쇠못을 쓰지 않고 가구를 제작하는 전통공예 기법으로, 조 소목장은 800년 넘은 느티나무를 10년에 걸쳐 건조해 책장을 완성했다.

AI를 비롯한 혁신 기술이 바꾸는 세상의 변화 속도에 대한 거부감도 아날로그의 재부상에 불을 붙인다. 스마트폰에 대한 피로감에 종이책을 다시 읽고, LP 음반을 듣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프로야구 직관 열풍도 디지털에서 얻기 어려운 유대감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항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AI와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거친 바다에 휩쓸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처럼, AI의 격랑에 휘말린 인간도 언젠가 안정을 찾게 되기를.

[전지현 오피니언부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