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새로운 무대·의상 ‘엘리자벳’ “나는 나만의 것”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무대 위에서 가장 화려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가장 자유롭지 못하다. 눈부신 드레스와 보석, 황후라는 지위까지 손에 넣었지만 엘리자벳이 평생 갈망한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10여년 만에 프로덕션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황궁의 화려함을 재현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안에서 점차 자유를 잃어가는 엘리자벳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데 힘을 줬다.
날개는 자유와 주체성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엘리자벳의 삶은 황실과 가족, 시대라는 보이지 않는 새장에 갇혀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가장 화려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가장 자유롭지 못하다. 눈부신 드레스와 보석, 황후라는 지위까지 손에 넣었지만 엘리자벳이 평생 갈망한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엘리자벳’이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에서 여섯번째 시즌의 막을 올렸다.
19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엘리자벳’은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만든 독일어권 대표 뮤지컬이다. 실존 인물 엘리자베트의 삶에 허구의 초월적 존재인 ‘죽음’을 끌어들여 화려한 황실 이면의 고독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그린다. 작품은 14개국에서 10개 언어로 공연됐고 전세계 누적 관객은 1270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에서는 2012년 초연된 뒤 올해까지 여섯 시즌을 이어왔으며 제6회 더 뮤지컬 어워즈 8관왕, 제18회 한국뮤지컬대상 4관왕 등을 기록했다.

자유분방한 소녀 엘리자벳(린아·이지혜·이지수)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민영기·박민성)와 결혼하면서 극은 시작된다. 그러나 황실은 그가 꿈꾸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엄격한 황실의 질서를 앞세운 대공비 소피(서지영·주아)는 며느리를 옭아매고, 그 틈을 파고든 초월적 존재 죽음(카이·서경수·고은성)은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며 끊임없이 그를 유혹한다.
올해 여섯번째 시즌의 가장 큰 변화는 무대와 의상이다. 10여년 만에 프로덕션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황궁의 화려함을 재현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안에서 점차 자유를 잃어가는 엘리자벳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데 힘을 줬다. 부채를 형상화한 거대한 무대 아치(프로시니엄)와 독수리 조형물, 대형 영상 스크린, 고딕 양식의 돌기둥이 공간을 채운다. 등장인물이 크레인을 타고 움직이며 장면의 높이와 깊이를 바꾸는 순간에는 정적인 궁정극이 역동적인 공간극으로 변한다.

의상도 눈길을 붙든다. 엘리자벳에게만 16벌의 의상이 쓰이고, 시대별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6종의 치마를 새로 제작했다. ‘죽음과 삶’을 콘셉트로 한 의상은 자유분방한 소녀에서 황후, 다시 고독한 방랑자로 변해가는 시간을 따라간다. 화려한 옷은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장식이면서 동시에 엘리자벳을 옥죄는 황실의 무게처럼 보인다.
‘엘리자벳’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힘은 무엇보다 음악이다. 실베스터 르베이의 선율은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귀에 곧장 꽂힌다. 죽음의 유혹을 밀어붙이는 ‘마지막 춤’, 파국의 기운을 키우는 ‘그림자는 길어지고’, 군중의 불안을 폭발시키는 ‘밀크’, 냉소적인 ‘키치’가 록과 서정적인 멜로디를 넘나든다. 그 중심에는 ‘나는 나만의 것’이 있다. “나는 나만의 것”이라는 노랫말은 황후의 노래이자 한 인간의 선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황실에도, 시대에도 자신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단순하고 힘 있는 선율을 타고 객석으로 건너온다.

무대 곳곳에 반복되는 날개 역시 그 선언과 맞닿아 있다. 날개는 자유와 주체성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엘리자벳의 삶은 황실과 가족, 시대라는 보이지 않는 새장에 갇혀 있다. 그래서 ‘죽음’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엘리자벳을 파멸로 이끄는 유혹이면서 동시에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약속하는 존재다. 실제 엘리자베트 황후의 비극적인 최후를 ‘죽음과의 마지막 만남’으로 치환한 설정은 이 작품이 가진 가장 매혹적인 상상력이다. 11월15일까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 대통령, 다음주 기자회견 검토…개헌·개각·파병 입장 밝힐 듯
- [단독] 김승원 청탁 당일, 식약처 ‘승인 검토’ 보고서 작성…처장에 ‘직보’ 정황
- 현대제철 원·하청 교섭 타결 1호…노란봉투법 반년 만에 첫 결실
- 이 대통령도 ‘피터팬 아빠’ 애도…“지원제도 더 촘촘히”
- 나눠먹기 VS 혼자먹기 [그림판]
- 브렌트유 이어 WTI도 배럴당 100달러 돌파…중동 전쟁 확전 여파
- 빅뱅 전 멤버 승리, 특수폭행 혐의로 고소당해
- [영상] 용혜인 “비례 사퇴가 자리 나눠먹기…의원·장관 겸직은 법이 허용”
- [단독] 이진숙 옆 앉았던 허화평 “5공이 민주화 토대 닦아” 궤변
- 한동훈 “총리실 직원이 사찰”…한성숙 “과한 말씀, 부적절시 엄정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