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대기줄과 빈집의 괴리… 정부 '치적 삼기'에 일그러진 주택들 [공공주택 심리보고서➂]

강서구 기자 2026. 9. 10. 15:1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더스쿠프×포춘코리아 공공기획
공공주택 심리보고서 3편
공급자의 오만이 빚은 실패
공공임대주택 궤도 이탈 이유
공약 지키지 않은 역대 정부들
실수요자도 모르는 정책의 빈틈

어떤 공공임대주택은 '빈집'이 생기면 대기줄이 늘어선다. 또 어떤 공공임대주택은 '빈집'이 생기든 말든 조용하다. 치열한 경쟁률과 빈집, 공공임대주택의 '두 얼굴'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여기엔 공급자 중심의 왜곡된 정부 정책이 숨어 있다. 공공주택 심리 보고서 세번째 이야기 '공급자의 오만' 편이다.

☞視리즈_공공주택 심리보고서 1부
1편_"누가 부동산 망국론 부추겼나"
2편_ 공공주택에 사회적 낙인 찍은 사람들
3편_ 긴 대기줄과 빈집의 괴리… '치적'의 그림자
4편_ 정부가 알아야 할 정부가 만든 구멍들
5편_ 공공임대주택 부끄럽다? 청년 생각은 달랐다
6편_ 1.5룸이라도 역세권이라면 괜찮다는 착각
7편_ 무조건 싸야 한다? 청년 72%가 제시한 답
8편_ 그곳에 살아본 이들은 더 살고 싶다 했다

긴 대기줄과 빈집의 괴리… '치적'의 그림자 [공공주택 심리보고서③]
잠시 멈추긴 했지만 용산 청년임대주택 논란은 짚어볼 점이 많다. 서울의 심장 같은 녹지를 지워서라도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건 서울과 수도권에 그만큼 공공주택이 부족하단 방증이어서다.

실제로 공공임대주택의 경쟁률은 치열하다. 국토교통위원회 간사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구임대주택·국민임대주택·행복주택·통합공공임대 등 공공임대주택의 입주 대기자는 9만3497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올해 입주가 가능한 공공임대주택 물량은 7779가구로 대기자의 8.3% 수준에 그쳤다. 단순 비교해보면 경쟁률이 12 대 1에 달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통계의 이면에는 씁쓸한 현실이 숨어 있다. 공공임대에 들어가지 못해 줄을 선 대기자는 차고 넘치는데, '텅 빈' 공공임대주택 역시 숱하다는 점이다. 더스쿠프·포춘코리아가 서울 소재 공공임대주택 445개 단지를 분석한 결과, 최근 1년간 퇴거자가 발생한 398개 단지 가운데 입주대기자가 한명도 없는 단지는 247곳으로 62.1%에 달했다.

어느 단지는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겨우 들어가고, 어느 단지는 집을 비우고 나가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입주하겠다는 욕망과 외면받는 빈집의 모순, 공공임대주택이 가진 두 얼굴이다. 그것도 모두가 선망하는 주거 지역인 서울 한복판에서 말이다. 이유가 뭘까.

이 질문을 풀기 위해선 공공임대주택의 정책적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 45만 가구, 문재인 정부 85만 가구, 윤석열 정부 50만 가구, 이재명 정부 110만 가구…. 각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공임대주택 공급 규모다.

집권 중인 이재명 정부를 제외하더라도 180만호로, 이를 2013~2024년으로 단순 환산하면 연평균 15만호가 공급됐어야 한다. 서울시 아파트 수가 170만~180만호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공급량이다. [※참고: 공공임대주택은 국가나 지자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등이 국가 재정을 지원받아 무주택 서민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임대주택을 말한다.]

[사진 | 뉴시스]
하지만 실제 공공임대주택 재고 증가 속도는 이에 크게 못 미쳤다. 2013년 112만4620호였던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2024년 197만2358호로 84만7738호 늘었다. 11년간 연평균 증가량은 약 7만7000호다. 공약 물량을 단순 연평균한 15만호의 51.4% 수준이다. [※참고: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실제로 임대 중이거나 즉시 입주·임대가 가능한 주택 물량을 뜻한다.]

이를 두고 정부 관료들은 "전체 주택 호수(2294만호) 대비 공공임대 비중은 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1%)을 웃도는 수준"이라며 성과를 강조했지만, 내실은 그렇지 않다. 서민을 위한 '진짜 장기 임대'는 외면했기 때문인데,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3~2024년 재고 추이를 보면, 장기적 주거 안전망 역할을 하는 영구임대(거주기간 최장 50년)는 19만1900호에서 22만5410호로 3만3510호(17.5%)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국민임대(거주기간 최장 30년) 역시 48만8552호에서 61만1587호로 같은 기간 12만3035호(25.2%) 증가했다.

그렇다면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연평균 약 7만7000호씩 늘린 '주역'은 누굴까. 민간주택을 활용하는 '기존주택 전세임대'와 '기존주택 매입임대'다. 기존주택 전세임대는 2013년 11만4826호에서 2024년 34만5063호로 23만237호, 200.5% 늘었다. 재고가 3배 수준으로 불어난 셈이다. 기존주택 매입임대는 역시 첫 통계가 집계된 2016년 9만2004호에서 2024년 23만6420호로 8년 새 14만4416호(156.9%)나 증가했다.

참고로 기존주택 전세임대와 기존주택 매입임대는 주택 확보 방식이 다르지만 기존 주택을 활용한다는 점은 같다. 기존주택 전세임대는 LH·SH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맺은 후 이를 재임대하는 개념이다. 기존주택 매입임대는 LH·SH가 집을 사들인 뒤 임대하는 시스템이다. 언뜻 안정적인 주거 형태로 보이지만 한계가 있다.

[사진 | 뉴시스]
두 주택 모두 최초 2년 이후 2년 단위로 총 9회 재계약이 가능해 최장 20년 거주할 수 있다. 30~50년을 보장하는 기존 임대와 견줘보면 주거 안정성이 떨어진다. 이미 지어진 집을 임대하거나 사들인 것이다보니 주거의 질質도 보장하기 어렵다. 쉽게 말해, 튼튼한 주거 사다리로 보기 어려운 단기·유연형 물량이 공공임대주택의 통계를 부풀려놓은 셈이다.

주역은 또 있다. 청년층을 타깃으로 한 '행복주택'이다. 이 주택은 2015년 847호에서 2024년 18만1445호로 18만598호(214배 이상)나 폭증했다. 공교롭게도 이 주택 역시 최대 거주기간이 10년(대학생·청년·무자녀 신혼부부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짧아 한계가 뚜렷하다.

이처럼 "공공임대 비중(8.6%)이 OECD 평균(7.1%)보다 높다"는 정부 관료의 주장엔 착시가 숨어 있다. 무주택 서민을 지탱하는 실질적 장기 공공임대(30년 이상) 재고율을 따로 집계하면 5.28%로 OECD 평균을 크게 밑돈다.

■ 공공임대주택 궤도 이탈한 이유 = 왜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임대 정책의 연속성을 고민하기보단 치적을 쌓기 위해 제각각 새로운 유형과 브랜드를 만들어 붙였기 때문이다.

1989년 공공임대의 첫 문을 열어젖힌 노태우 정부의 영구임대를 시작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국민임대,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 문재인 정부의 통합공공임대까지 정권마다 새로운 간판이 등장했다.

그 결과, 현재 공공임대주택의 유형은 행복주택, 국민임대, 영구임대, 매입임대, 전세임대, 장기전세, 통합공공임대까지 7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름만 나열해도 어지러운데, 입주 자격, 소득 기준, 임대료, 거주 기간까지 천차만별이니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이렇다 보니 집이 없는 수요자가 공공임대주택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더스쿠프·포춘코리아가 종합 리서치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무주택 청년 500명에게 물어본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설문에 응한 응답자 중 32.4%는 현 정부의 공공임대 확대 정책을 "처음 듣는다"고 했고,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7.0%에 불과했다.

■ 같은 실수 반복하는 정부 = 문제는 이재명 정부 역시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는 '전월세·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8·13 대책의 일환)'을 통해 수도권 규제지역에서 발생하는 민간 분양 잔여물량을 LH 등이 우선 매입해 '보편형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새 이름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무주택 일반 국민에게 추첨 방식으로 공급되던 이른바 '줍줍(무순위 청약)' 잔여물량을 공공이 먼저 확보해 임대로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참고: 무순위 청약은 일반 청약에서 미달되거나 계약이 취소돼 남은 물량을 다시 공급하는 제도다. 분양을 마친 단지에서 남은 집을 다시 줍는다는 의미로 '줍줍'이란 별칭을 얻었다. 시세보다 저렴한 최초 분양가로 공급되는 경우가 많아 로또 청약으로도 불린다.]

정부는 과도한 시세차익이 발생하는 '로또 청약' 과열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주거 사다리 복원이라는 취지와 달리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오히려 박탈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사실 '무순위 청약'은 실수요 무주택자가 추첨을 통해 자가를 소유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기회였다. 자격이 무주택 세대구성원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LH가 이를 우선 매입하면 '내 집 마련' 기회가 '임차'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수도권 규제지역에서 발생한 전용 85㎡ 이하 민간 분양 잔여물량은 1600호에 불과하다. 정부가 제시한 수도권 규제지역 연간 매입임대 목표치(약 3만3000호)의 4.8% 수준이다. 생색내기용 제도를 하나 더 신설했을 뿐, 실제 공공임대 공급 재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단 얘기다.

[사진 | 뉴시스]
결국 정권마다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수많은 '신상' 공공임대 정책들은 서민의 주거 사다리를 단단하게 만들지 못했다.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질적 악화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 실효성 없는 생색내기용 브랜드만 늘렸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공공임대주택을 언제까지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 내버려둬야 할까. 이젠 무주택 청년들의 진짜 속마음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힌트를 제시할 설문조사 결과를 지금부터 공개한다. 이어지는 4편의 주제는 '정작 사람들은 잘 몰랐다: 인지 부조화'다.

김다린 포춘코리아 수석기자
quill@fortunekorea.co.kr

강서구·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