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가족부 장관 잔혹사 [플랫]
성평등가족부가 2001년 여성부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이래 가장 인상적인 수장으로 2대 여성부 장관을 맡았던 지은희 장관(이하 전직 호칭 생략)을 꼽는 사람이 많다. 지 장관이 주도한 성매매특별법 제정과 피해여성 지원은 성매매를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했지만 성산업의 규모를 줄이고 사회적 인식을 바꿔놓았다. 거센 반발을 뚫고 호주제 폐지에도 앞장서면서 당시에도 ‘미니 부처’였던 여성부의 존재감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는 타 부처와 대립하고 설득하기도 주저하지 않았다. 예산 수립 때 성별 영향과 성평등 관점을 반영하는 성인지 예산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이후 훌륭한 장관도 여럿 있었지만, 정권과 갈등할 때는 대체로 부처 쪽이 주저앉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현백 장관은 과거 저서 속 여성비하적 표현으로 논란을 빚었던 탁현민 선임행정관 경질을 청와대에 요구했다가 지지층의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원민경 현 성평등부 장관도 촉법소년 연령 하한을 두고 청와대와 이견을 노출했다.
장관이 부처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일 때는 그나마 낫다. 정책 전문성보다 정권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인사, ‘여성 장관 숫자’라는 구색을 맞추고 여성 측근에게 자리를 안배해주기 위한 인선이 이 부처에는 유독 잦았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부의 여성가족부를 거쳐간 장관 3명은 모두 여성·성평등과 관련된 경력이 특별히 없는 정치인이었다. 조윤선 장관과 강은희 장관은 친박계라서 지명됐고, 김희정 장관은 친이계인데 탕평인사 차원에서 발탁된 것이라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정무적 고려에 따른 인선이 여성정책에 관심 없거나 반여성적인 정권과 만나면 부처가 무색무취해지는 것을 넘어 정체성이 뒤흔들리는 참담한 결과가 빚어진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정옥 장관은 박원순·오거돈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냐는 질문에조차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답변을 피할 정도로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며 대통령이 된 윤석열 정부의 김현숙 장관은 그 결정판이었다. 여가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장에서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변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졌다.
용혜인 성평등부 장관 지명은 어떨까. 그의 행보를 부정하지 않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같은 주요 법안 발의자 명단마다 그의 이름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척박한 국회 구도에서 발의자 10명을 채울 수 있도록 이름을 올려주는 국회의원의 존재가, 성평등에 대한 기사를 쓰는 사람으로서 고마웠다. 그의 자질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비판하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굳이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동시대 청년 여성으로서, 나는 그가 젊은 여자이기 때문에 총알받이가 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건 ‘어떤 사유로 정권이 그를 성평등부 장관으로 발탁했느냐’는 구도의 문제다. 그는 기존 지지층이 이탈한다는 정권의 위기감 속에서 ‘진보정당 소속 30대 워킹맘’이라는 상징성을 앞세워 발탁됐다. 경력보다는 정무적 고려가 작용한 인선이다. 위성정당 소속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그는 결정적 국면에서는 여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보완수사권 폐지에 찬성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여당은 함께 지명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적극 엄호하지만 용 후보자는 방어해주지 않고 있다. 용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뚫고 장관이 된다 치더라도 선명한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구도다. 만약 그런다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은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성평등 정책은 태생적으로 기득권이나 다수 여론과 충돌하기 쉽다. 부처 수장이 정권 주류의 눈치를 보지 않거나 정권 차원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밀어붙여야 이뤄질까 말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은희 장관이 예산 편성 지침에 성인지 예산 개념을 넣어야 한다고 국무회의에서 말을 꺼냈을 때 분위기가 싸해지자 “제가 대표로 여쭤보겠다. 성인지 예산이 뭐냐”라고 묻고, 추진 과정에서도 지 장관을 지지해줬다고 한다. 사실 성평등 정책의 성패는 일개 부처 장관이 아니라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달린 문제다. 장관 인선은 대통령의 성평등 정책을 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신호일 뿐이다.
▼ 남지원 젠더데스크 somnia@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반도 앨리스] “파병 거절해도 받아들여지는 시대” 희망한 노 전 대통령…23년 지나도 ‘파병
- 깔창 밑에 숨기고, 창밖으로 던지고…전자기기 9억원어치 빼돌린 40대, 법원 판결은?
- 황희찬, 독일 데뷔전서 ‘택배 크로스’로 첫 도움…샬케 시즌 첫 승리
- 가을 바람막이 ‘운동복’ 아닌 ‘재킷’처럼 힙하게 입기[카드뉴스]
- “이란 돌아가면 사형 당할 수도”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인···법원 “난민 인정해야”
- ‘김승원 청탁 의혹’ 브로커 양씨, 경희대 박사논문 위조 의혹···학교 조사 착수
- “냉동 창고에 사람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수면제 많이 먹으면 죽나요?”···‘범죄 조력
- “너 때문에 망신”···‘친딸 폭행·방치 살해’ 40대 가수 겸 유튜버에 사형 구형
- 김민희 출산 후 첫 복귀작 ‘눈 둘 데가 없네’…10월21일 국내 개봉
- 16년차 일용직 용접사에서 ‘기능장 3관왕’으로···올해의 기술사·기능장 첫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