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정책금융이 만든 팬스타 미라클호…부산-오사카 달린다

이재현 2026. 9. 1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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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2000t급으로 거친 파도에도 안정적인 운항 뽐내
355명 승객에 컨테이너 250개…여객ㆍ물류 동시 수행
해진공의 정책금융로 탄생한 ‘국내 첫 크루즈’

[대한경제=이재현 기자]‘배가 뜰 수 있을까….’

지난 6일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육지의 평온한 가을 날씨와 달리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심상치 않았다. 최대 4m에 달하는 거세 파고와 강풍으로 풍량주의보가 발효된 상태였다. 이 여파로 일본 대마도 등을 오가는 쾌속선과 소형 여객선은 줄줄이 취소됐다. 이날 부산을 출발해 일본 오사카로 가는 여정의 기자도 노심초사했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계류장에 정박한 팬스타 미라클호(사진:이재현 기자)

터미널 계류장에 들어서자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기자가 탑승하는 ‘팬스타 미라클호’는 거친 파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팬스타 미라클호는 총 2만2000t급 대형 크루즈 페리다. 작년 4월부터 부산과 오사카를 잇는 국제항로에 전격 투입됐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해상 관광과 화물 물류까지 수행하는 새로운 바닷길의 주인공이다.

이날 오후 3시 부산에서 출항해 7일 오전 9시 오사카항에 도착하는 일정의 배는 영화에서나 본 럭셔리 크루즈 그대로였다. 인피니티 풀이 적용된 야외 수영장을 비롯해 러닝 트랙, 사우나, 테라피 하우스, 카지노 게임바 등 5성급 호텔을 옮겨놓은 듯했다.

팬스타 미라클호 객실 모습(사진:이재현 기자)

기자가 묵은 객실에는 발코니가 딸려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 운항 중인 크루즈 선박에는 객실 내 발코니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팬스타 미라클호는 운항 내내 발코니에서 프라이빗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대한해협의 느낌은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화려하고 여객 친화적인 시설 아래에는 거대한 물류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 팬스타 미라클호는 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식 구조를 채택해 아랫부분이 대형 화물칸으로 설계됐다. 최대 355명의 승객을 태우면서 20피트(609㎝) 크기의 컨테이너 약 250개를 거뜬히 적재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출항을 앞둔 하역장에는 컨테이너 차량들이 바삐 오갔다.

팬스타 미라클호 객실에 마련된 발코니에서 바라본 부산 전경(사진:이재현 기자)

오후 3시 정각 육중한 뱃고동 소리와 함께 배가 출항했다. 먼바다로 나서자 험악한 파도가 선체를 때렸지만, 팬스타 미라클호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운항을 이어갔다. 선체 하부에 장착된 6m 규모의 핀 스테빌라이저가 파도의 저항을 상쇄하며 흔들림을 잡아준 덕분이다. “항해 중 긴급상황이 발생할 시 자체 동력으로 가장 가까운 항구로 안전한 귀환을 돕는 SRtP(Safety Return to Port) 시스템 등 첨단 안전장치가 적용되어 있다”는 승무원의 말은 더욱 안도감을 줬다.
팬스타 미라클호에 마련된 카지노(사진:이재현 기자)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석식 뷔페를 즐기고 난 오후 8시께 배는 일본 영해로 접어들었다. 갑판으로 나가자 시모노세키 관문대교가 화려한 빛을 내고 있었다. 다소 쌀쌀한 바닷바람에 선내로 들어오자 다채로운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생애 첫 바다 위 숙박이라 무심히 흐르는 시간이 아까웠다. 다음날 오전 9시 배는 오사카항에 무사히 닻을 내렸다.

화려한 위용과 든든한 항해 능력을 뽐내는 팬스타 미라클호는 대한민국에서 건조되어, 대한민국 국적으로 운항하는 최초의 크루즈 페리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이 거대한 선박이 바다를 가르며 나아갈 수 있었던 이면에는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의 전폭적인 정책금융 지원이 자리한다.

팬스타 미라클호 조타실 모습(사진:이재현 기자)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대형 선박을 새로 건조하는 일은 막대한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중소ㆍ중견 선사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부담이다. 팬스타그룹도 마찬가지였다.

해진공은 ‘중소선사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선순위 금융에 대한 파격적인 채무보증을 제공하며 구원투수로 나섰다. 미라클호의 전체 선가 7050만달러 가운데 팬스타그룹이 20%인 1410만달러를 자체 자금으로 부담하고, 나머지 80%에 달하는 5640만달러를 선순위 금융을 통해 조달했다. 해진공은 이 중 선순위 금융의 95%에 해당하는 최대 5358만달러를 보증했다. 이 결정적인 지원 덕분에 팬스타그룹은 자금 조달에 필수적인 고금리 후순위 대출을 끌어 쓰지 않고도 건조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해진공의 꼼꼼한 지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존의 미화 대출을 금리가 상대적으로 훨씬 낮은 엔화로 전환하는 리파이낸싱(재금융)까지 지원했다. 약 700억원 규모의 리파이낸싱으로 조달 금리는 기존 대비 2.5%포인트 이상 대폭 낮아졌다. 이를 통해 팬스타는 연간 약 17억원, 향후 4년 동안 무려 7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융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해진공의 정책금융은 선사의 선박 확보뿐만 아니라 국내 조선소에도 진입 장벽이 높은 고부가가치 여객선을 직접 건조해 보는 귀중한 경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팬스타 미라클호는 부산항 기준 매주 화ㆍ목ㆍ일에 운항한다. 단순한 여객 운송을 넘어 해상 관광과 물류를 결합한 새로운 사업 모델로 맹활약 중인 팬스타 미라클호의 힘찬 항해를 응원한다.

이재현 기자 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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