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학교 향해”…962일 만에 출근하는 지혜복 교사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9. 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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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12시 서울 A중학교 교문 앞에서 지혜복 교사가 학교 건물을 올려다봤다. 이곳에서 상담 부장으로 일한 지 교사는 학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 문제를 제기했다 부당 전보됐다. 학교에 짐을 그대로 둔 채 거리로 나선 지 962일만인 이날은 지 교사의 복직 첫 출근날이었다. 자신을 배웅하러 온 연대자들을 바라보던 지 교사가 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뗐다.

‘A학교 투쟁’으로 불린 지 교사의 오랜 싸움은 이날 복귀로 한 매듭을 지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전날 지 교사와 합의하며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고 공익신고자 보호 및 학교 성폭력 대응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 교사는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형식적 조사와 교육으로는 학교를 바꿀 수 없다”며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다가 지난 2023년 해임됐던 A중학교 지혜복 교사의 복직 첫 날인 9일 용산구 서울교육청 앞에서 지 교사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23년 5월 지 교사는 여러 여학생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학생들이 “못생겼으니 얼굴을 가리라” “성관계하고 싶다”는 등의 성희롱을 하고 뒤에서 껴안는 식의 성추행을 일삼는다는 얘기였다. 지 교사는 곧장 사실관계를 파악했고 익명 설문에서 여학생 3분의 2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A학교가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시교육청에 신고한 학생들의 신원이 드러났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발언도 나왔다. 지 교사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학생인권침해 구제신청서를 제출했고 이듬해 2월 전보 발령을 받았다. 지 교사가 1인 시위를 벌이자 서울시교육청은 그를 ‘무단결근’으로 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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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교사에게 성폭력 사건부터 부당 전보까지의 일들은 단순히 A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는 응답률은 2013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성평등가족부의 지난 4월 발표에 따르면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80%는 10~20대였다. 지 교사는 다시 A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용기를 내준” 피해 학생들의 얼굴을 그리고 자신을 지켜야 했다. 이는 모든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

학교 내 성희롱 사실을 공론화한 뒤 해임됐던 지혜복 교사가 9일 학교로 복직한다. 사진은 지 교사가 2025년 3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금방 돌아가려 시작한 싸움은 길어졌다. 지난 1월과 7월 서울행정법원이 지 교사에 대한 전보 처분과 해임 처분을 각각 취소하는 판결을 내릴 때까지 2년이 훌쩍 넘었다. 지 교사는 그동안 수많은 투쟁 현장을 찾아 학교 안팎에서 차별·폭력으로 인해 고립되는 사람들을 만났다. “진정한 성평등이란 무엇일까. 학교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들 때 지 교사는 개별 싸움들이 연결되는 지점을 들여다봤다. 폭력이 일어나는 구조 안에선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 교사를 찾는 연대자들이 “우리가 지혜복이다”라고 외치는 이유도 같았다. A학교 투쟁에 연대해 온 말벌 동지(연대가 필요한 현장에 순식간에 달려가는 시민들)들은 지 교사의 싸움이 남 일이 아니라고 했다.

2023년 A중학교의 학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임됐던 지혜복 교사가 해임 962일만인 9일 지지자들의 축하와 응원을 받으며 서울 A중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학생 때 성폭력 피해를 겪은 김명중씨(25)는 “내 편이 되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학교를 행복하게 다녔을 것 같다”며 “이제는 내가 선생님 편이 되어주고자 연대했다”고 말했다. 중학생 시절 성희롱을 겪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된 베라(활동명·21)는 “학교에서 성폭력 등을 겪으면 그것을 방치한 제도와 어른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그것에 맞선 선생님의 투쟁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이날도 지 교사의 복귀를 축하하기 위해 연대자들이 모였다. 학교를 떠날 때 홀로였던 지 교사의 손에 이들이 준비한 꽃다발과 선물이 한 아름 안겼다. “잘가요” “고생 많았어요”라고 외치는 동지들을 연거푸 돌아보며 지 교사가 손을 흔들었다. “성평등한 학교”를 향해 나아가는 지 교사의 뒷모습이 작아질 때까지 수많은 손들이 그를 배웅했다.

▼ 우혜림 기자 saha@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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