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학교 향해”…962일 만에 출근하는 지혜복 교사 [플랫]
9일 오후 12시 서울 A중학교 교문 앞에서 지혜복 교사가 학교 건물을 올려다봤다. 이곳에서 상담 부장으로 일한 지 교사는 학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 문제를 제기했다 부당 전보됐다. 학교에 짐을 그대로 둔 채 거리로 나선 지 962일만인 이날은 지 교사의 복직 첫 출근날이었다. 자신을 배웅하러 온 연대자들을 바라보던 지 교사가 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뗐다.
‘A학교 투쟁’으로 불린 지 교사의 오랜 싸움은 이날 복귀로 한 매듭을 지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전날 지 교사와 합의하며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고 공익신고자 보호 및 학교 성폭력 대응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 교사는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형식적 조사와 교육으로는 학교를 바꿀 수 없다”며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5월 지 교사는 여러 여학생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학생들이 “못생겼으니 얼굴을 가리라” “성관계하고 싶다”는 등의 성희롱을 하고 뒤에서 껴안는 식의 성추행을 일삼는다는 얘기였다. 지 교사는 곧장 사실관계를 파악했고 익명 설문에서 여학생 3분의 2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A학교가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시교육청에 신고한 학생들의 신원이 드러났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발언도 나왔다. 지 교사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학생인권침해 구제신청서를 제출했고 이듬해 2월 전보 발령을 받았다. 지 교사가 1인 시위를 벌이자 서울시교육청은 그를 ‘무단결근’으로 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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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교사에게 성폭력 사건부터 부당 전보까지의 일들은 단순히 A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는 응답률은 2013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성평등가족부의 지난 4월 발표에 따르면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80%는 10~20대였다. 지 교사는 다시 A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용기를 내준” 피해 학생들의 얼굴을 그리고 자신을 지켜야 했다. 이는 모든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

금방 돌아가려 시작한 싸움은 길어졌다. 지난 1월과 7월 서울행정법원이 지 교사에 대한 전보 처분과 해임 처분을 각각 취소하는 판결을 내릴 때까지 2년이 훌쩍 넘었다. 지 교사는 그동안 수많은 투쟁 현장을 찾아 학교 안팎에서 차별·폭력으로 인해 고립되는 사람들을 만났다. “진정한 성평등이란 무엇일까. 학교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들 때 지 교사는 개별 싸움들이 연결되는 지점을 들여다봤다. 폭력이 일어나는 구조 안에선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 교사를 찾는 연대자들이 “우리가 지혜복이다”라고 외치는 이유도 같았다. A학교 투쟁에 연대해 온 말벌 동지(연대가 필요한 현장에 순식간에 달려가는 시민들)들은 지 교사의 싸움이 남 일이 아니라고 했다.

학생 때 성폭력 피해를 겪은 김명중씨(25)는 “내 편이 되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학교를 행복하게 다녔을 것 같다”며 “이제는 내가 선생님 편이 되어주고자 연대했다”고 말했다. 중학생 시절 성희롱을 겪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된 베라(활동명·21)는 “학교에서 성폭력 등을 겪으면 그것을 방치한 제도와 어른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그것에 맞선 선생님의 투쟁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이날도 지 교사의 복귀를 축하하기 위해 연대자들이 모였다. 학교를 떠날 때 홀로였던 지 교사의 손에 이들이 준비한 꽃다발과 선물이 한 아름 안겼다. “잘가요” “고생 많았어요”라고 외치는 동지들을 연거푸 돌아보며 지 교사가 손을 흔들었다. “성평등한 학교”를 향해 나아가는 지 교사의 뒷모습이 작아질 때까지 수많은 손들이 그를 배웅했다.
▼ 우혜림 기자 saha@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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