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무능력 탓일까? 싱가포르에서 가난의 본모습을 파헤치다(feat.능력주의)[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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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로 인해 다른 사람의 부유함이 너무나 잘 보이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부자 나라 싱가포르에서 3년 동안 빈곤층 200여 가구를 연구한 사회학자 테오유옌 난양공과대학(NTU) 교수의 결론은 다릅니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해 이웃 나라에서 이주 가사 노동자를 수입했습니다. "국가 담론과 공공정책에서 고학력 여성은 수십 년 동안 저학력 여성보다 더 가치 있는 어머니로 여겨져 왔습니다. '가난한 여성은 자녀가 너무 많고 부유한 여성은 자녀가 너무 적다'는 제도화된 계급 편견은 우리가 맹점을 다루는 것을 방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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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로 인해 다른 사람의 부유함이 너무나 잘 보이는 요즘입니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모습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죠. 그런데 이와 달리 가난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습니다. 구호단체 광고 속에 등장할 뿐, 주변에서 빈곤층의 삶을 들여다볼 일은 거의 없는데요.
눈에서 멀어졌다고 해서 가난이 사라진 건 아니죠. 그런데도 나라가 부유해지고 ‘평균’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점점 가난은 ‘정상이 아닌 일탈’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난을 개인의 무능력, 또는 게으름 탓으로 돌리는 거죠.
하지만 부자 나라 싱가포르에서 3년 동안 빈곤층 200여 가구를 연구한 사회학자 테오유옌 난양공과대학(NTU) 교수의 결론은 다릅니다. 그는 가난은 결국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라고 말하죠. 싱가포르 특유의 ‘능력주의’ 신화가 이를 심화시킨다고도 지적하는데요. 그가 쓴 베스트셀러 ‘이것이 불평등의 모습이다(This Is What Inequality Looks Like)’에 담긴 가난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책의 내용을 제 나름대로 요약 정리해 소개합니다. 책 속 문구를 그대로 인용한 경우엔 따옴표로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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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아파트인데 대형 TV?
싱가포르엔 눈에 띄는 슬럼가가 없습니다. 거리는 깨끗하고, 수도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도 없죠.
하지만 이 화려한 도시에도 가난이 모인 곳은 있습니다. 가구소득이 일정선(약 월 159만원) 이하인 최하위 계층 가구를 위한 공공임대 아파트 단지가 그곳이죠.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이를 일반 아파트와 구분 짓는 세 가지 특징은 이겁니다. 문, 냄새, 경찰. 현관문 사이의 간격이 좁고, 지저분한 복도에선 눅눅한 냄새가 나고, 경찰차를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죠.
그래서 이곳 주민들의 가장 큰 꿈은 ‘내 집을 장만해서 이사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좁은(45㎡) 집에서 네 식구가 사느라 부딪히는 일도 없을 거고, 좁은 공간 탓에 이불 빨래가 복도까지 밀려나지도 않을 거고, 엘리베이터 입구에 덕지덕지 붙은 범죄 예방 포스터를 보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전기요금을 아끼려 불은 꺼져 있었지만 TV는 거의 항상 켜져 있었습니다. “TV는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 일상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싱가포르는 물가가 비싼 도시이고, 외출엔 돈이 필요하니까요. 부모는 동네의 나쁜 영향도 걱정합니다. 장난감과 게임도 없는 집에서의 생활은 지루합니다. 그래서 TV는 특히 중요한 오락거리이죠.”
이들은 주거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합니다. 밀린 임대료를 걱정하고, 자신이 일찍 죽으면 자녀들이 노숙자가 될까봐 걱정하죠.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택개발청(HDB) 직원들은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이 나라에서 공공임대 아파트에 입주했다면 퇴거당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죠. 그럼, 왜 이들은 끊임없이 불안해할까요.
일단 실제로 과거에 노숙을 했거나 친척 집을 전전했던 주거 불안의 경험이 있어서이고요. 무엇보다 ‘자가 소유=진정한 안정’이란 뿌리 깊은 믿음 때문이죠. “제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집을 살 여유가 없지만, 그들 또한 이 사회의 일원이고 이러한 사회적 규범과 믿음을 공유합니다.”
아이 돌봄에 소홀하다는 편견
빈곤층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는 빈곤층이 양육에 소홀하고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경험으로 볼 때 이는 완전히 틀린 얘기입니다. “아이는 이들의 삶, 정체성, 노력, 그리고 결정의 중심에 있습니다. 부모들이 빠듯한 재정과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가는 동안 아이들은 최우선 순위입니다. 저는 저소득층 부모들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자신의 안락함과 행복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해 이웃 나라에서 이주 가사 노동자를 수입했습니다. 덕분에 고학력 중산층 워킹맘은 돌봄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외주화할 수 있게 됐는데요. 하지만 이 쉬운 해법이 자리 잡으면서, 그럴 여력이 없는저소득층 여성의 육아 문제는 더욱더 사회적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국가 담론과 공공정책에서 고학력 여성은 수십 년 동안 저학력 여성보다 더 가치 있는 어머니로 여겨져 왔습니다. ‘가난한 여성은 자녀가 너무 많고 부유한 여성은 자녀가 너무 적다’는 제도화된 계급 편견은 우리가 맹점을 다루는 것을 방해합니다.”
기득권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싱가포르에서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시험(PSLE)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시험 성적에 따라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느냐 마느냐, 중학교에서 어떤 난이도 등급의 수업에 배정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이는 대학 입시까지 좌우할 수 있기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줍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선 고학력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장기 휴가를 내고 아이의 시험 준비에 매진하는 사례가 많죠. 압박감을 느끼는 건 저소득층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가 매주 받아쓰기에서 낙제하거나 교사가 아이들 학업 문제로 전화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뒀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은 아이 학업을 돕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저는 수야티(인도네시아 출신 이주 여성)를 다시 방문했습니다. 호기심 많고 똑똑했던 아니(수야티의 딸)은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영어를 읽고 쓸 수 없었고, 부진 학생으로 분류됐죠. 저는 제 아이가 읽었던 영어책 몇 권을 가져다줬어요. 제 딸은 이미 ‘해리 포터’를 읽기 시작했거든요. 제 7살 아이가 해리 포터를 읽는 것이 수야티의 아이에게 ‘부진아’ 낙인이 찍히는 것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고소득 가정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교육적 자원에 풍부하게 노출됩니다.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에 올인하는 경우도 많죠. 부모의 경제적 자본은 아이의 학업 능력으로 보상받곤 합니다.
그런데도 이 게임에서 성공한 이들은 이를 ‘노력과 재능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착각하며 기득권을 정당화하죠. 그게 바로 능력주의의 함정입니다. “실제 메커니즘을 오해할 때 능력주의는 결국 승리자를 정당화하고, 그들이 물려받은 불공정한 이점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개인으로 묘사합니다. 또 실패는 시스템적 불이익이 아닌 개인의 부족 때문으로 치부하죠.”
가난한 10대는 왜 밖으로 나도나
흔히 비행 청소년은 나쁜 동네와 가정의 결함 탓으로 여겨집니다. 부모들이 먹고살기 바빠서 자녀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며, 아이를 방치한 부모에 책임을 묻죠. 하지만 임대 아파트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부모들은 10대 자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죠. 그래서 깨닫게 된 건 이겁니다. “저소득 가정의 부모는 부모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 훨씬 더 어려움을 겪고, 저소득 가정 아이들은 고소득 가정 아이들이 누리는 보호 중 일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양육에서 중요한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간, 활동, 용돈, 시간, 여가, 추억, 부모의 사회적 지위. 죄다 가난한 가정엔 부족한 것들입니다.
중산층 부모는 왜 10대 자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자녀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집 안에선 아이가 자신만의 공간을 누릴 수 있고, 부모가 정한 빡빡한 스케줄(학원, 과외 등)에 속해있죠. 그런데 임대 아파트는? 사적 공간이 없으니 답답한 십대들은 집 밖으로 나돌고요. 용돈을 받는 대신 아르바이트로 스스로 돈벌이를 합니다. 경제적 의존도가 낮으니, 부모의 통제력이 약화할 수밖에요.

무엇보다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나처럼 되지 마라.’
고소득 전문직 부모의 조언은 정당성을 얻기가 쉽습니다. 아이도 부모가 싱가포르 사회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경로를 걷지 못한 저소득층 부모는 ‘내 말은 잘 듣되, 내 삶은 본받지 말라’라고 훈육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위를 행사하기란 어렵습니다. 자신의 양육방식이 인정받지 못하고 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건 자아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죠.”
중산층 아이들은 설사 10대 시절 방황하더라도, 부모의 경제적 방어막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준비가 될 때까지 부모가 얼마든지 기다려주죠. 하지만 저소득층 청소년에겐 이런 유예기간이 없습니다. 어린 나이에 생계 전선에 뛰어들거나 부모와 형제를 부양해야 하죠. “현실은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의 구분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매순간 비존엄성과 싸운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은 종종 오래전 불쾌했던 상호작용의 경험을 매우 상세히 끄집어냅니다. 사회복지사의 쌀쌀맞은 말투가 짜증 났다거나, 직장 상사가 소리를 질러서 일을 그만뒀다는 식의 이야기죠.
왜 그들은 사소한 모욕을 이렇게나 오래 기억할까요. 그들의 일상 자체가 만성적인 존엄성 결핍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존엄성은 깨끗한 공기와 같습니다. 부족하지 않으면 그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존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건 그것이 없을 때입니다. 저소득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매일 무례함과 존중받지 못하는 일을 겪습니다. 매일 비존엄성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저임금 근로자는 종종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곤 합니다. 무례한 명령조의 말투를 듣는 경우도 많고요. 이렇게 존엄성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 기관과의 상호작용은 모욕감을 심화시킵니다. ‘진정으로 가난한 수혜자’임을 검증하기 위해 통장 잔고부터 가계도까지 각종 서류를 요구하고, 온갖 사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죠.
최하위 소득 계층인 사람들에게 왜 복지 지원을 신청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절차가 너무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돌아옵니다. 더 놀라운 건 ‘나보다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는 거죠. “그들 역시 자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괜찮아요, 아직 감당할 수 있어요’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불편해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테오유옌 교수는 학회 발표 중 “그런 사람들 말을 믿으면 안 돼요. 그런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라며 언성을 높이는 청중을 마주쳤죠. 왜 그들은 분개했을까요. 싱가포르인에게 자긍심을 안겨주는 국가적 서사-가진 것 없는 작은 나라가 맨손으로 일어나 놀라운 기적을 이뤄냈다-를 깨뜨리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보면 빈곤을 직시하고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부유해진 나라, 한국에서도 필요한 작업일 겁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9월 9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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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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