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품은 개인투자용 국채…금융권 '머니무브' 주목

김호성 기자 2026. 9.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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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부터 DC·IRP로 10·20년물 직접 투자 가능
금융사들 고객 유치 경쟁…장기·안정형 자산 선택지 확대
국고채권.사진=연합뉴스.

개인투자용 국채가 퇴직연금이라는 새로운 수요처를 확보하면서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9일부터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활용해 개인투자용 국채 10년물과 20년물을 직접 매입할 수 있게 되면서다.

금융권에서는 장기·안정형 상품을 선호하는 퇴직연금 고객에게 새로운 투자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증권사뿐 아니라 은행도 관련 상품 판매에 나서면서 퇴직연금 고객을 둘러싼 금융사 간 경쟁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개인투자용 국채 자체의 판매 수익보다 이를 계기로 장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퇴직연금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금융사들의 관심을 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 퇴직연금으로 투자 영역 확대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개인투자용 국채 발행 규모는 2300억원이다. 전월보다 800억원 증가했다.

종목별 발행 규모는 3년물 이표채 20억원, 3년물 복리채 30억원, 5년물 500억원, 10년물 1100억원, 20년물 650억원이다. 10년물과 20년물을 합친 장기물 발행액은 1750억원으로 전체의 약 76%를 차지한다.

이번 달부터는 개인투자용 국채 10년물과 20년물을 DC·IRP 계좌에서 직접 매입할 수 있다. 기존에는 별도의 개인투자용 국채 전용계좌를 이용해야 했다.

초기 판매에 참여하는 금융사는 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3개 은행과 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KB·NH투자증권 등 5개 증권사다. 정부는 향후 참여 금융회사를 추가할 방침이다.

9월 청약은 15일까지 진행된다. 최소 투자금액은 10만원이며 10만원 단위로 매입할 수 있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정부가 개인의 장기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발행하는 저축성 국채다.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표면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 금리를 기준으로 연 복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9월 발행분의 표면금리는 10년물 연 4.415%, 20년물 연 4.570%다. 두 상품에는 각각 35bp의 가산금리가 적용된다.

만기 보유 시 세전 총수익률은 10년물 약 59.3%, 20년물 약 161.3%다. 20년물의 경우 1000만원을 투자하면 만기 원리금이 약 2613만원이 되는 구조다.

퇴직연금 계좌를 활용하면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에 대한 과세가 적립금 인출 시점까지 미뤄진다. 만 55세 이후 적립금을 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연금소득세가 적용되는 등 퇴직연금의 기존 세제 혜택도 적용받을 수 있다.

다만 중도환매할 경우 가산금리와 연 복리 혜택은 적용되지 않는다.

◆ 금융사들, 국채보다 '연금 고객' 확보 주목

금융사들이 개인투자용 국채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국채 판매 자체에만 있지 않다. 정부가 발행하는 동일한 상품인 만큼 어느 금융회사를 통해 가입하더라도 상품 자체의 차별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개인투자용 국채를 계기로 퇴직연금 고객을 자사 플랫폼으로 유입시키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DC·IRP 자산을 한 금융회사로 옮긴 고객은 단기간에 다시 금융회사를 변경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장기 고객 확보 효과가 기대된다.

개인투자용 국채 자체도 10년과 20년 만기의 장기 상품이다. 금융사로서는 장기 국채 판매를 통해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 퇴직연금 고객과 접점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증권사들은 이미 고객 유치에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은 다른 금융회사에 보유한 DC·IRP 자산을 이전하는 고객에게 모바일 상품권을 제공하고 있으며, 삼성증권도 개인투자용 국채 청약 고객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마련했다.

미래에셋증권은 15일까지 전국 영업점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해 9월 개인투자용 국채 청약을 받는다. DC·IRP 가입자는 MTS의 퇴직연금 상품 화면에서 청약할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번 제도 도입으로 개인투자용 국채가 퇴직연금 계좌의 안정형 자산 30%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장기 투자 대안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삼성증권은 퇴직연금 계좌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개인투자용 국채 청약 및 배정 완료 고객 중 500명을 추첨해 1만원 상당의 포인트 쿠폰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오는 12월 31일까지 진행한다.

은행과 증권사 모두 퇴직연금 고객 확보를 겨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개인투자용 국채가 금융권의 고객 유치 경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금융권, 장기·안정형 상품 선택지 확대

은행에서도 개인투자용 국채를 퇴직연금 상품군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 IRP 고객은 장기·안정형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정기예금 외에 국채가 추가되면서 선택 폭을 넓힐 수 있다는 평가다. 증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던 퇴직연금 상품 라인업을 보완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신한은행은 기존 DC·IRP 계좌에서 별도의 개인투자용 국채 전용계좌를 만들지 않고도 청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신한 슈퍼SOL'과 영업점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하나은행도 DC·IRP 계좌를 통해 개인투자용 국채 10년물과 20년물을 판매한다. 9월에는 영업점에서 청약할 수 있으며 다음 달부터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하나원큐'를 통한 비대면 청약이 가능하다.

금융권은 개인투자용 국채 외에도 퇴직연금 상품군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달 1일부터 IRP 전용 '보증형 실적배당보험' 판매를 시작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올해 2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이 58조8888억원으로 전체 퇴직연금사업자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신한은행은 개인투자용 국채 판매를 계기로 퇴직연금 상품 라인업과 전문 상담 역량을 지속해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 개인 자금, 장기 국채 수요처 될지 주목

채권시장에서는 개인투자용 국채와 퇴직연금의 결합이 장기 국채의 수요 기반을 넓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장기 국채는 그동안 보험사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수요 의존도가 높았다. 개인투자용 국채를 통해 가계가 보유한 장기 저축자금이 국채로 직접 유입될 경우 새로운 수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일반 국고채처럼 유통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하기보다는 만기까지 보유하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채시장 금리 변화에 따라 매매를 반복하지 않는 장기 투자자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퇴직연금 역시 장기간 운용하는 자금이라는 점에서 10~20년 만기의 개인투자용 국채와 운용 기간 측면에서 맞닿아 있다.

다만 시장 확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도 있다. 현재 개인투자용 국채의 투자 매력에는 국고채 금리 상승의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향후 시장금리가 내려가면 신규 발행 국채의 금리도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환매가 가능하더라도 가입 후 1년이 지나야 하며, 중도환매 시 가산금리와 복리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유의할 부분이다.

이번 9월 청약이 퇴직연금 자금의 실제 유입 규모를 확인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기존 전용계좌를 통한 개인 청약을 넘어 DC·IRP에서 얼마나 자금이 유입될지, 10년물과 20년물 가운데 어느 상품에 수요가 집중될지가 시장 확대 여부를 가늠할 주요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