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개구리들의 함성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2026. 9. 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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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꿈에 내소사를 다녀왔다. 어린 시절의 내가 나오는 꿈은 드물지만 그 이미지는 선명하고 잔영(殘影)은 오래간다. 대여섯 살의 나는 우물가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전거가 지나가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한다. 추석 성묘차 아버지는 형을 뒤에 태우고 격포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막 길을 나선 중이다. 이제 뒷일은 불 보듯 뻔하다. 아버지는 페달을 부러 세게 밟으며 손사래를 치고 징징 울며 나는 뒤를 쫓는 중이다. 마침내 자전거 앞 축에 탄 나는 웃으며 곤댓짓을 해댄다.

어려서 딱 한 번 가본 내소사 길이지만 나는 날 업은 아버지 등과 그때 보았던 몇 생명체를 또렷이 기억한다. 땡감이라고 흔히 부르던 고염, 내소사 뒷산 관음봉에서 발원해 서해로 졸졸 흐르던 물길을 옆으로 기던 칠게와 배때기 붉고 등이 얼룩덜룩 초록인 무당개구리. 그러나 그땐 몰랐다. 그 무당개구리가 산 채로 유럽에 수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럽의 일부 호사가들은 등과 배의 특이한 색을 쫓아 무당개구리를 애완용으로 키웠다. 먹잇감을 챙겨주고 주변 환경이 좋으면 30년까지도 산다고 해서 한때 제법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다 2018년 ‘한국’의 무당개구리는 화려하게 복귀했다. “최근 아시아에서 유래한 항아리곰팡이가 전 세계 양서류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왔다”는 ‘사이언스’ 논문 제목에 등장한 ‘아시아’는 한국의 무당개구리를 가리킨다.

1964년 일간신문에 수출용으로 살아 있는 개구리 10만마리씩 납품할 업자를 구한다는 광고가 실릴 정도로 국내 개구리의 대량 반출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때 개구리 피부에 바짝 달라붙은 항아리곰팡이도 수출길에 편승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출이 시작된 시점부터 양서류의 떼죽음이 드문드문 알려지기 시작했다.

피부병을 일으키는 항아리곰팡이는 양서류 피부에 기생해 피부조직을 구성하는 케라틴을 먹어 치운다. 케라틴이 사라지면 피부호흡을 하는 개구리는 숨을 쉬지 못해 죽는다. 치사율이 90%에 이르고 번식력도 강한 항아리곰팡이는 1970년대 호주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남미와 미국, 유럽 등을 휩쓸며 200여종의 개구리를 몰살시켰다. 파나마의 토착희귀종인 황금개구리를 10년 만에 멸종시킨 것도 항아리곰팡이다. 생태학자들은 현존하는 양서류의 약 3분의 1은 항아리곰팡이에 감염돼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추정한다. 이는 질병으로 인해 생물 다양성이 감소한 사례 중에서 최대 규모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남미의 개구리와 도롱뇽이 곰팡이의 침탈에 맥없이 쓰러지자 말라리아모기가 기승을 부리게 됐다. 모기의 유충과 알을 먹어 치우던 존재가 휑하니 사라진 탓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연관성이 곧바로 인과성을 뜻하지는 않지만 과학자들은 항아리곰팡이가 생태계의 한 부분을 크게 잠식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곰팡이 감염에도 끄떡없이 살아가는 우리 내소사 무당개구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아시아 개구리의 자존심을 세우기라도 하듯 2025년 일본의 연구팀은 개구리 장에서 사는 세균이 암세포를 공격하고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대장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논문을 ‘장 미생물’(Gut Microbes)에 발표했다. 이번에는 청개구리가 주인공이다. 너른 토란잎에 보일 듯 앉아 있는 청개구리 모습을 떠올려보자.

작고 연약한 청개구리지만 이들도 장이 있고 그 장에는 세균이 살아간다. 일본과학기술원 연구진은 개구리와 도롱뇽 및 도마뱀의 장에서 45종의 세균을 분리하고 이를 생쥐의 꼬리 정맥에 주사해 독성이 있는지 등 몇 가지 생체 적합성 여부를 조사했다. 그다음에 인간 대장암 세포주가 이식된 생쥐에 이들 세균을 집어넣었다. 놀랍게도 이 세균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치료제보다 우수한 효과를 보였으며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았다. 유잉겔라 아메리카나라는 이름의 청개구리 장 세균은 생쥐의 정상 조직은 건드리지 않은 채 오직 암세포에만 달려들었다. 투과성이 좋은 암 조직 주변의 혈관을 쉽게 뚫고 나가 생착하기 쉬운 것도 세균의 암약에 커다란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렇게 세균은 암세포를 공격함은 물론 생쥐의 면역계도 단련시켰다. 본디 그게 장내 공생 세균의 소임이다. 종을 넘어 미생물을 이식하는 방법이 질병 치료를 목표로 쓰일 수 있음을 증명한 이 실험은 한편으로 인류가 지구 생명체의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읽힌다.

내소사 무당개구리는 여태도 잘 있을까?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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