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김 칼럼:광복81주년, K문화강국의 그늘, 굴절된 역사와 음악적 자존을 묻다

2026. 9. 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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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광복절, 성남시 경축식에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주되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곡이지만, 대영제국의 팽창과 제국주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찬미하는 배경을 지닌 음악이 하필 광복절 기념식에 울려 퍼진 순간 마음이 무거웠다.

공적 기념일의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그 시대와 역사의 맥락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어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사와 우리 음악사를 타자의 시선이나 왜곡된 관성이 아닌,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만큼 성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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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의 행진곡부터 애국가 논란까지,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주체적 음악관을 향하여

주세페 김 (랑코리아 예술감독, K문화독립군 회장)

광복절 제단 위에 울려 퍼진 멜로디의 맥락을 묻다

지난 광복절, 성남시 경축식에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주되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곡이지만, 대영제국의 팽창과 제국주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찬미하는 배경을 지닌 음악이 하필 광복절 기념식에 울려 퍼진 순간 마음이 무거웠다. 예술의 품격과 맥락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급히 글 한 편을 써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기자가 진솔한 답신을 보내왔다. “어떤 맥락에서 탄생한 곡인지도 모른 채 멋진 선율에만 취해 있었습니다. 식민지 잔재와 외래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좇았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라는 자성의 목소리였다.

기자의 진솔한 고백을 마주하며,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음악인이자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러나 자책할 이유는 없다.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성이며, 음악 그 자체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쓴 의도 역시 서양 고전음악을 배척하자는 데 있지 않다. 공적 의례를 맡은 행정과 기획자, 지휘자에게는 ‘시공간의 맥락을 꿰뚫어 보는 지성적 분별과 역사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고 싶었을 뿐이다. 다행히 신상진 성남시장께서도 미처 살피지 못한 점을 인정하며 경청의 뜻을 전해오셨다. 이러한 소통과 성찰이야말로 낡은 관행을 깨뜨리는 진정한 ‘화음(和音)’이 되리라 확신한다.

우리 고유의 명절에 올리는 차례상을 떠올려 본다. 가문과 시대에 따라 찻잔이 술잔으로 바뀌고 먼 훗날 돈가스나 파스타 같은 다문화의 음식이 오른다 한들, 그 상차림의 변하지 않는 본질은 ‘선조에 대한 기억과 예(禮)’다. 순국선열의 피와 땀으로 되찾은 광복절이라는 숭고한 제단에, 대영제국의 식민 팽창을 찬양하던 행진곡을 무비판적으로 축가로 올리는 관행이야 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모순이다.

외국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곡 <선구자>는 창작자들의 친일 부역과 원곡이 만주국 찬양곡 ‘용정의 노래’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무대에서 내려왔고, <봉선화>, <희망의 나라로>, <가고파> 등도 창작자들의 친일 행적으로 재평가의 도마에 올라 있다. 공적 기념일의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그 시대와 역사의 맥락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어야 한다.

K-컬처의 눈부신 번영 속, 우리는 어떤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가

올림픽 시상대와 수많은 공적 행사에서 가슴 벅차게 울려 퍼지는 <애국가>이지만, 그 법적 위상과 역사적 궤적만큼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애국가를 헌법상 국가(國歌)로 명문화하지 않은 까닭은, 엄혹한 근현대사를 건너온 당대 지도자들의 민족적 자존심이 작용한 결과는 아닐까 되짚어 본다. 해방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새 국가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안호상 초대 문교부 장관 주도로 신문 공모전까지 열렸으나 6·25 전쟁과 당선작 부재로 매듭짓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기저에는 창작자들의 뼈아픈 부역과 변절이라는 역사적 실체가 자리한다.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의 만주국 건국 축하곡 지휘와 나치 제국음악원 활동은 요즘 유튜브에서 그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력 작사가인 윤치호 또한 일제 말기 적극적인 친일·반민족 행위로 변절한 인물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해야 할 국가의 창작 주체들이 군국주의의 부역자라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오점이다.

지금 전 세계는 K-컬처에 열광하며 우리의 문화와 깊이 호흡하고 있다. 그러나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 세워진 번영의 터전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세계를 뒤흔드는 문화강국으로 우뚝 섰다면서, 정작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은 어디에 둔 채 일제 부역자와 변절자의 손에서 나온 애국가를 여전히 가슴 벅차게 부르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새로운 국가 제정이 당장 어렵다면 애국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맹목적 자긍심의 찬가가 아니라, 굴절된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며 통한의 세월을 잊지 않겠다는 ‘엄중한 역사적 증언’으로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의 모순을 직시하고 문화적 자존을 세우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사와 우리 음악사를 타자의 시선이나 왜곡된 관성이 아닌,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만큼 성숙했다. 서구 중심의 역사관이 찬양해 마지않는 프랑스 혁명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들이 외친 ‘자유’의 깃발은 피식민지를 향한 가혹한 제국주의 침탈로 이어졌고, 종교적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향했다던 미국의 초창기 이주사 또한 원주민을 몰살하고 터전을 빼앗은 비극으로 얼룩져 있다. 지금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 역시 미국과 강대국들이 과연 어떤 자국 중심의 실리를 좇아 움직이고 있는지 지성의 안목으로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서양에 그러한 모순과 침탈의 역사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봉건적 억압을 깨뜨리고 외세에 맞서 인간 존엄과 평등을 외쳤던 숭고한 ‘동학’의 역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음악의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 고전음악의 예술성은 일상에서 온전히 향유하되, 민족의 수난과 해방을 기리는 국가적 기념식만큼은 그 음악이 품은 맥락을 엄정히 분별하고 우리 땅의 흙냄새와 선열들의 숨결이 밴 우리의 소리로 채우는 것이 마땅한 상식이다. 진솔한 성찰을 보내주신 기자님의 편지처럼, 맹목적인 문화 수용의 관성을 걷어내고 주체적 문화 자존감을 세워가는 성숙한 담론이 사회 곳곳에 더욱 넓고 깊게 뿌리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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