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姓 안 바꿉니다”… 日 덮친 ‘동성 중매’ 열풍

“처음 뵙겠습니다, 사토(佐藤)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사토입니다.”
‘매칭 앱(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만남이 활발한 일본에서 최근 같은 성씨(姓氏)를 가진 이들만 연결해 주는 이른바 ‘동성혼(同姓婚) 중매 서비스’가 이목을 끌고 있다. 혼인 시 부부 중 한쪽의 성을 따르도록 규정한 ‘부부 동성제(同姓制)’ 탓에 개명에 부담을 느껴 결혼을 망설이는 청년층을 겨냥한 것이다. 제도 개선 논의가 보수 진영의 반대로 번번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중매 업체가 아예 ‘결혼 후에도 성을 바꿀 필요가 없는’ 남녀를 짝지어 주고 나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시민단체 ‘아스니와’와 매칭 앱 업체 ‘IBJ’는 지난 3월부터 ‘동씨혼 권유(同氏婚のススメ)’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3~5월 도쿄에서 스즈키(鈴木), 사토, 다나카(田中) 등 성씨별로 나눠 개최한 중매 파티에는 20~30대 남녀 50여 명이 모였다. 6월에는 ‘스즈키씨’만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소개팅에 14명이 참석했다. 이 같은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면서 ‘스즈키 커피’ ‘사토 주조’ 등 같은 성씨를 사명으로 쓰는 기업들의 후원도 이어졌다.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사토씨’가 모인 파티는 “학창 시절 같은 반에 사토가 세 명이나 있어 선생님의 호출에 매번 헷갈렸다”는 등 동성(同姓)만의 고충이 오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행사에 참석한 30대 남성 사토씨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만나기 전부터 같은 성씨라는 공통점이 있어 대화를 시작하기가 수월했다”며 “결혼 시 누구의 성으로 바꿀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1898년 메이지 시대 민법 개정 당시 부부 동성제를 채택해 13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부부의 약 95%가 남편의 성을 따른다는 점에서 꾸준히 성평등 쟁점으로 대두돼 왔다. 신분증 갱신이나 은행 계좌 명의 변경 등 행정적인 수고가 여성에게 편중될 뿐만 아니라, 이혼 시 두 번이나 성씨를 바꿔야 해 경력 단절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네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민법 개정을 권고했다.
개명에 대한 거부감은 혼인 기피로도 직결되고 있다. 2021년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다’고 답한 20~60대 독신 여성의 약 32%(남성은 약 9%)가 그 이유로 ‘성을 바꾸는 것에 대한 번거로움’을 꼽았다. 반면 부부가 원할 경우 각자 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에 대해서는 국민 10명 중 8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현재 사실혼 관계인 커플 약 58만명이 법률혼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다는 민간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정치권에선 고이즈미 신지로 현 방위상이 2024년 9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선택적 부부 별성제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전통적 가족관의 붕괴를 우려하는 보수층 반발에 부딪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현 내각을 이끄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등에서 옛 성의 사용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제시할 뿐, 사실상 부부 동성제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부부 동성제가 지속될 경우 2531년에는 모든 일본인의 성씨가 ‘사토’로 통일된다는 웃지 못할 연구 결과도 있다. 동성혼 중매 프로젝트를 이끄는 아스니와 측은 “부부가 각자 성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이러한 파티 자체가 불필요해진다”며 “이 역설적인 프로젝트가 결혼을 앞둔 이들이 겪는 현실적인 장벽을 허물고, 제도 변화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제주서 감귤농사 강신철 父도 ‘철거민 특공’...3代가 서초·분당에 부동산
- 삼성증권, 여덟 번째 발행어음 사업자 됐다…금융위, 단기금융업 인가
- 미국의 첨단 무인 잠수정, 이란혁명수비대 손에 넘어갔다
- 달러 대비 원화 환율 9.5원 내린 1336.1원…23개월 만에 1330원대
- 경찰, 김승원 ‘임상 청탁 의혹’ 제넨셀 대표 ’112억 사기 혐의’ 수사
- 여자 핸드볼, 항저우서 일본에 내준 정상 탈환 도전
- 前 앤스로픽 연구원 “AI, 통제 불능 우려… 2030년 전에 인류 모두 죽일 수도”
- 국회-경제계 상시협의체 출범… 최태원 “국회, 산업 현장 플레잉코치 되어주길”
- [단독] DMZ·사드 기지 다 가렸다… 구글, 21년 만에 韓 안보시설 가림 처리
- [단독] 용혜인 장관 후보자, 기본소득당 ‘유령 시·도당’ 의혹으로 피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