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그려낸 욕망과 파멸…'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 개막

권지현 2026. 9. 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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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검은색 배경의 무대에서 마녀들이 휘파람 소리와 함께 '장차 왕이 되실 분'이라며 속삭인다.

이들은 극적인 부분에서 맥베스에게 속삭이는 듯한 대사를 읊기도 했지만 때로는 의미가 불분명한 '쉿' 소리를 내거나 휘파람, 하품 소리를 냈다.

무대는 셰익스피어와 제작진이 말한 대로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찼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남긴 채, 맥베스를 죽인 맥더프의 총 든 모습을 조명하며 새로운 비극을 암시하고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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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극 거장 김아라 연출…'맥베스의 자아' 등장시켜 내면 갈등 표현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 [서울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어두운 검은색 배경의 무대에서 마녀들이 휘파람 소리와 함께 '장차 왕이 되실 분'이라며 속삭인다.

마녀의 예언인지, 왕위에 오르고자 하는 주인공 맥베스가 듣는 환청인지 모를 속삭임은 반복적으로 메아리치며 맥베스의 욕망을 증폭시켰다.

지난 8일 개막해 오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하는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The sound of Macbeth)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감각적 소리로 풀어냈다.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의 프로젝트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 일환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연출가 5인이 고전과 현대의 텍스트를 오늘의 무대 언어로 재구성하는 기획이다.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는 1990년대부터 '사로잡힌 영혼' 등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현대 연극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 온 김아라(70)가 연출했다.

고전의 줄거리를 차용하되 음악과 소리, 언어를 융합해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풀어냈다. 맥베스 역은 원로 배우 정동환, 맥베스 부인 역은 김성녀가 맡았다.

8일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띈 부분은 연극에 '또 다른 맥베스'를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배우 송용진이 연기한 제2의 맥베스는 무대 중앙의 피아노에 앉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맥베스의 내면적 자아인 그는 피아노 소리와 독백, 방백으로 심리를 표현했다.

예컨대 맥베스가 덩컨 왕을 살해한 후 자신의 손이 피로 물든 듯한 환각에 휩싸이며 이를 '바닷물로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내면의 맥베스는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와 함께 그를 향해 "아니, 네 손이 푸른 물을 시뻘겋게 물들일 것"이라고 소리쳤다.

이러한 연출은 마치 이중주처럼 얽히며 욕망과 죄책감이 공존하는 내면의 갈등으로 표출됐다.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 [서울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아라는 프로그램북을 통해 원작의 명대사 '소리와 분노'(sound and fury)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아내가 미쳐서 죽어버렸음을 들은 직후 맥베스가 "(인생은)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찼으나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백치들의 이야기"라고 읊는 부분이다.

김아라는 "정복과 지배를 향한 야망, 유혹, 살인, 불안, 파멸의 수순을 밟는 맥베스의 감정을 '헛소리'로 규정하고 사운드로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과 같이 작품에선 소리의 감각이 두드러졌다.

셰익스피어 작품 특유의 시적 운율과 리듬감이 극대화한 인물의 대사는 하나의 소리가 됐다. 정동환은 대사의 억양과 높낮이를 극적으로 강조하고, 호흡을 조절해 문장을 때론 짧게 치거나 때론 길게 늘어뜨리는 등 '대사의 소리화'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맥베스와 한몸인 동시에 극의 공간과는 분리된 '내면의 맥베스'는 서사의 흐름을 따라 붕괴해가는 그의 심리를 환기했다.

멜로디라기보다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외침과 같은 피아노 소리는 관객의 귀에 맥베스의 죄의식과 타락한 마음을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또 다른 소리의 축은 마녀들의 속삭임과 휘파람이다. 마녀로 등장한 배우들은 무대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대부분의 장면에서 음향 효과와 같은 역할을 소화했다.

이들은 극적인 부분에서 맥베스에게 속삭이는 듯한 대사를 읊기도 했지만 때로는 의미가 불분명한 '쉿' 소리를 내거나 휘파람, 하품 소리를 냈다. 세 명의 마녀가 내는 소리는 때때로 한데 뒤섞이며 욕망을 부추기고 불안함을 키웠다.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 [서울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극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의미 파악이 어려운 대사와 소리의 뒤섞임은 절정에 달했다.

무대는 셰익스피어와 제작진이 말한 대로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찼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남긴 채, 맥베스를 죽인 맥더프의 총 든 모습을 조명하며 새로운 비극을 암시하고 막을 내렸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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