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도 노인을 차별한다”…UN 노인인권 전문가가 경고한 ‘AI 연령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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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AI에 '요리하는 사람'과 '요리하는 노인'을 각각 주문하면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가 가진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AI에도 스며드는 이른바 'AI 연령주의(Ageism)'다.
노인에 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거나, 선별적으로 수집되면 AI가 기존의 연령차별을 그대로 학습하고, 이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령주의는 결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사실 30~40년 뒤 자신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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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수집 단계부터 AI 연령주의 시작”
노인도 AI ‘공동 창작자’로 참여해야 해결

지난해, 세계 65세 이상 인구가 5세 이하 영유아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인류의 나이 지도가 최초로 뒤집힌 지금,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매일경제는 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제6차 아셈 노인 인권 현실과 대안 포럼’에서 유엔이 임명한 제3대 ‘노인의 모든 인권 향유에 관한 독립전문가’ 즈베즈단 피르토셰크 박사를 만났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신경과 교수로 파킨슨병, 치매 등을 연구해 온 그는 인공지능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연령주의의 뿌리 역시 우리가 오랫동안 노인을 바라봐 온 방식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차별로 ‘연령주의’를 꼽았다. 연령주의는 특정 연령대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을 뜻한다. 연령주의는 반드시 노골적인 차별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친절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환자가 노인이라는 이유로 의사가 환자 본인 대신 보호자에게 설명하거나, 증상을 호소해도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라며 충분한 진단이나 치료를 시도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보호’라는 가면을 쓴 연령주의도 있다. 노인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보호가 어느 순간 당사자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근거가 될 때 문제가 시작된다. 즈베즈단 박사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결정할 자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특히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노인에게서 의사 결정권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즈베즈단 박사는 의학에서 노인 인권으로 관심을 넓힌 계기에 대해 “처음에는 정확한 진단과 최선의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기술적으로 성공한 치료가 환자의 실제 삶을 거의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의학이 나를 인권이라는 지점으로 이끌었고, 두 영역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답했다. 그가 지난 5월 노인 인권 독립전문가로 임명된 후 작성한 보고서도 ‘인지장애 노인’과 ‘노년기의 의존’에 대한 것이다.
연령주의는 인공지능 시대에 알고리즘에 숨어들 수 있다. 그는 “AI 연령주의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노인에 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거나, 선별적으로 수집되면 AI가 기존의 연령차별을 그대로 학습하고, 이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이 AI의 사용자나 소비자로만 여겨지는 것도 문제다. 그는 “노인도 AI의 ‘공동 창작자’로서 기획·설계·개발·활용 등 전 과정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는 이미 의료와 돌봄으로 들어오고 있다. AI는 낙상을 감지하고,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며 건강 상태를 분석하는 등 노인의 삶을 돕는다. 동시에 노인의 움직임과 대화, 수면, 생활 습관까지 끊임없이 기록한다. 즈베즈단 박사는 “지원과 감시의 차이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누가 그 기술을 통제하고,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보다 노인이 ‘싫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AI가 인간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는 “AI가 특정 상황에서 인간보다 더 정확할 수는 있지만, 결정의 주체와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남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즈베즈단 박사는 무엇보다 AI가 인간의 ‘값싼 대체재’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AI는 돌봄에서 여러 일을 도울 수 있지만, 이것이 인간적인 접촉과 지역사회의 지원을 없애기 위한 값싼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 역시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2060년 세계에서 가장 나이 든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국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3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즈베즈단 박사는 노인이 겪는 여러 문제를 각각 떼어놓고 보기보다 ‘인권’이라는 하나의 렌즈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노년에는 여러 불리한 조건들이 서로 교차하고 축적되는데, 서로 다른 문제들을 연결하는 공통된 고리는 바로 인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같은 기관이 아시아 전역에 더 많이 생기고, 노인 인권 문제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의 견고한 지원이 지속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현재 노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체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노인인권기본법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유엔 차원의 노인인권협약 작성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즈베즈단 박사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충분히 이른 단계부터 노인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라며 “노인에 관한 것을 노인 없이 결정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즈베즈단 박사가 그리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는 모든 세대가 서로 연결돼 지원하는 사회다. “연령주의는 결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사실 30~40년 뒤 자신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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