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호르무즈 항행의 자유 지키려면 단독파병보다 다국적협력 연대가 최선…김태준의 美·이란戰 중계<92>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호르무즈해협은 어느 한 국가의 국내항로가 아니다.
참가국들은 호르무즈의 무조건적이고 제한 없는 개방과 국제법에 따른 항행의 자유를 요구했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상선 보호와 해운업계의 신뢰 회복, 기뢰제거를 위한 독립적이고 엄격히 방어적인 '다국적 군사임무(Multinational Military Mission)'를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것과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항행의 자유와 상선 보호를 위한 다국적 해양안보협력에 참여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국가 지휘권과 제한된 임무를 전제로 한 다국적 협력은 항행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을 지키면서 이란과의 직접적인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英佛 추진 다국적 협력 파병, 국제사회 공동행동으로 전환해 위험과 책임 분산
무엇을 보낼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미리 결정하는 일
호르무즈 통행료, 국제해협을 누가 통과할 수 있는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
항행의 자유 선언만으로 유지 안돼, 자유 필요로 하는 국가들이 함께 지킬 때 현실의 권리

호르무즈해협은 어느 한 국가의 국내항로가 아니다. 세계의 에너지와 상품이 이동하고 수많은 국가의 상선과 선원들이 이용하는 국제해협이다. 국제법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가 작동해야 하는 공간이며, 국제해협에서는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이 그 자유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런데 지난 6개월 동안 상선에 대한 공격과 위협이 계속되면서 호르무즈는 고위험 항로로 변했고, 선별적 통항과 허가, 통행료와 서비스비용 같은 요구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돈의 액수가 아니다. 국제법에 따라 통항이 보장돼야 할 국제해협에서 누가 어떤 선박의 통과를 허용하거나 제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군사적 위협이 통항의 조건을 결정하고 그것이 관행으로 굳어진다면 항행의 자유는 법전에만 존재하는 권리가 될 수 있다.
한국도 이 문제의 제3자가 아니다. 한국의 선박과 선원, 해운기업이 호르무즈의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에너지와 무역을 해외 해상교통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에 항행의 자유는 직접적인 국가이익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군을 보내는 것이 답일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누구와 함께, 어떤 임무와 지휘체계로 참여할 것인가이다.
특히 한국이 단독으로 군사적 기여에 나선다면 이란과 직접 대치하고 상대적으로 압박하기 쉬운 대상으로 인식될 위험도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추진하는 다국적 협력이 중요한 이유다. 특정 국가와 이란의 양자적 대결을 항행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행동으로 전환하고 위험과 책임을 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은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 국제법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이다. 그렇다면 그 자유를 현실의 바다에서는 누가, 그리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지난 6개월 동안 호르무즈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군사적 균형이 아니라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다는 신뢰였다. 상선에 대한 공격과 위협이 반복되면서 선박과 선원들은 군사적 충돌의 위험에 노출됐고, 해운회사와 보험회사들은 호르무즈를 정상적인 국제항로가 아니라 고위험 해역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국제법상 항행할 권리가 존재하더라도 선박이 실제로 통과하지 못한다면 법적 권리와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생긴다.
호르무즈의 특수성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더라도 선박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국제해운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데 있다. 해운회사는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우선하고 보험회사는 위험을 가격에 반영한다. 선주는 운항을 연기하거나 우회항로를 검토한다. 결국 군사적 위협은 실제 공격의 횟수를 넘어 국제해운의 움직임 자체를 위축시킨다.
이것이 그동안 호르무즈에서 나타난 이란의 ‘현존위협(TIB·Threat in Being)’과 거부능력(Denial)의 효과다. 이란이 미국과 대등한 해군력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미사일과 드론, 기뢰 등의 위협수단이 살아 있다는 인식만 유지하면 상선의 자유로운 통항을 위축시킬 수 있다. 미국이 압도적인 해·공군력으로 군사적 우세를 확보하더라도 국제상선이 안전하다고 판단해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군사적 우세가 곧바로 항행의 자유 회복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위협이 통항의 조건까지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든 선박이 동일한 국제법적 권리에 따라 통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국가나 선박에 예외가 허용되는 상황이 반복되면 국제해협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 지난 8월 이란이 이라크의 요청을 받아 일부 이라크 유조선의 통항을 선별적으로 허용한 사례가 중요한 이유도 몇 척이 통과했느냐가 아니라 국제해협의 통항이 특정 국가의 허가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러한 위험의 밖에 있지 않다. 한국 국적 선박과 한국인 선원이 실제 위험에 노출된 사례가 있었고, 한국 해운기업의 상업적 이해관계가 연결된 선박도 불안정한 통항환경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공격주체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개별 사건을 곧바로 이란의 공격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호르무즈를 이용하는 한국 선박과 선원, 기업의 이해관계가 더 이상 군사적 위험과 분리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결국 지난 6개월 동안 호르무즈에서 훼손된 것은 선박 몇 척이나 일정 기간의 물류 흐름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훼손된 것은 국제해협에서는 국제법에 따라 자유롭고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신뢰다. 항행의 자유는 법적 선언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선박과 선원, 해운회사와 보험회사가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현실의 질서가 된다.
그렇다면 군사적 위협을 넘어 특정 선박의 통과를 허가하고 그 대가로 비용까지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해상안전의 문제인가, 아니면 항행의 자유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인가.

호르무즈에서 통행료와 서비스비용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그 액수에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제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누가 통항의 조건을 정할 수 있느냐에 있다. 군사적 위협을 배경으로 특정 선박의 통항을 허용하거나 제한하고 그 대가로 비용을 요구하는 관행이 정착된다면, 이는 단순한 경제적 부담을 넘어 항행의 자유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로 발전할 수 있다.
국제해양법은 모든 해역에 동일한 통항제도를 적용하지 않는다. 영해에서는 일정한 요건 아래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이 적용되고,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는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이 핵심적인 법적 제도로 작동한다. 호르무즈는 이러한 국제해협의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통행료를 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본질을 놓치게 된다. 상위의 문제는 국제법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이며, 호르무즈에서는 그것이 통과통항권을 중심으로 한 국제해협의 통항질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돼야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사적 위협과 통제의 관계다. 이란이 호르무즈 전체를 물리적으로 점령하거나 모든 선박의 통항을 차단해야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사일과 드론, 기뢰 등 현존위협(TIB·Threat in Being)을 유지해 선박과 해운회사로 하여금 통항 여부를 다시 계산하게 만들고, 그 위에서 특정 선박의 통항을 허용하거나 제한한다면 군사적 거부능력(Denial)이 ‘정치적 통제(Control)’로 전환될 수 있다.
그 과정은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군사적 위협 → 통항위축 → 허가 → 선별통항 → 통행료·서비스비용 → 사실상의 통항통제
군사적 위협으로 통항이 위축되고, 안전을 위해 허가를 요청하는 사례가 반복되면 선별적 통항이 하나의 관행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기에 통행료나 서비스비용까지 결합되면 국제법상 권리였던 통항이 마치 연안국이 허가하고 제공하는 서비스처럼 변질될 위험이 생긴다.
지난 8월 이란이 이라크 정부의 요청을 받아 일부 이라크 유조선의 통항을 허용한 사례도 이러한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것만으로 이란이 호르무즈의 법적 통제권을 확보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국제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특정 국가가 예외를 요청하고 이란이 이를 허용하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국제법에 따라 행사돼야 할 권리가 이란의 허가에 의해 주어지는 권리처럼 인식될 수 있다.
통행료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란이 제기한 통행료나 서비스비용 요구가 국제적으로 승인된 새로운 법적 질서가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를 이미 확립된 ‘호르무즈 통행료 체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군사적 위협을 배경으로 이러한 요구가 반복되고 국제해운이 현실적인 안전을 이유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법적 승인 여부와 별개로 사실상의 관행이 만들어질 위험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선례가 호르무즈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국제해협에서 군사적 위협으로 선박의 행동을 바꾸고 통항의 허가와 비용을 요구하는 방식이 국제사회의 실질적인 저항 없이 정착된다면 다른 전략적 해협과 해역에서도 유사한 논리가 등장할 수 있다. 호르무즈에서는 통과통항권이 핵심이지만 다른 해역에서는 무해통항권이나 공해에서의 항행의 자유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통항제도 하나가 아니라 그 위에 존재하는 항행의 자유라는 국제해양질서의 원칙이다.
한국에도 이것은 먼 나라의 법률논쟁이 아니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이란으로부터 특별한 통항허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국제법에 따라 한국 선박이 예측 가능하고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는 질서다. 오늘의 안전을 위해 예외적인 허가를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편리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방식이 일반화되면 장기적으로 한국이 누려야 할 권리를 다른 국가의 재량에 맡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통행료의 액수가 아니다. 국제해협을 누가 통과할 수 있는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군사적 위협을 근거로 허가와 비용을 요구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사실상의 질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거부능력(Denial)은 통제(Control)로 전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막고 항행의 자유를 현실에서 회복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호르무즈의 항행의 자유가 특정 국가의 군사적 위협에 의해 제약된다면 이를 회복하는 책임을 미국이나 어느 한 국가에만 맡길 수 있는가. 호르무즈를 이용하는 국가는 미국만이 아니며 이 해협을 통과하는 에너지와 상품의 수혜자 역시 전 세계에 분산돼 있다. 항행의 자유가 국제공공재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한 책임 역시 국제사회가 함께 분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미 국제사회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17일 영국과 프랑스는 51개국이 참여한 호르무즈 국제정상회의를 주도했다. 참가국들은 호르무즈의 무조건적이고 제한 없는 개방과 국제법에 따른 항행의 자유를 요구했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상선 보호와 해운업계의 신뢰 회복, 기뢰제거를 위한 독립적이고 엄격히 방어적인 ‘다국적 군사임무(Multinational Military Mission)’를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도 이 공동노력에 참여한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이 구상은 정치적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4월 22일부터 영국 노스우드에서 30개국 이상의 군사기획자들이 참가한 회의가 열렸고 이후 군사기획에는 40개국 이상이 참여했다. 5월 12일에는 38개국 국방장관과 대표들이 다국적 군사임무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확인했다. 영국도 함정과 전투기, 기뢰탐색 및 대드론 전력 등의 기여계획을 제시했다. 다국적 임무가 정치적 연대에서 공동 군사기획과 전력준비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이 임무의 성격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과 구별되는 독립적이고 방어적인 임무로 설정했다. 목적도 이란에 대한 공격이나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상선 보호와 기뢰위협 제거, 해운업계의 신뢰 회복을 통한 항행의 자유 회복에 두고 있다. 7월에도 양국은 오만과 협력해 안전한 항행여건을 조성하면서 필요할 경우 보다 광범위한 다국적 임무를 전개할 준비가 돼 있음을 재확인했다. 아직 완성된 상설 연합함대는 아니지만 단순한 외교적 제안의 단계도 넘어선 것이다.
다국적 협력에는 군사적 능력 이상의 의미도 있다. 개별 국가가 독자적으로 호르무즈에 전력을 보내면 이란과 해당 국가가 직접 대치할 수 있지만 여러 국가가 항행의 자유라는 동일한 목적과 제한된 임무 아래 행동하면 위험과 책임을 분산할 수 있다. 특정 참가국을 압박해 전체 참여를 흔들려는 전략의 효과를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9월 8일 파리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한국의 선택을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직접 연결시켰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한 호르무즈 회의에서 한국이 해협의 안정과 항행의 자유를 위한 기여 의지를 밝힌 사실을 재확인하고, 호르무즈의 항행의 자유와 글로벌 공급망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프랑스와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항행의 자유에 대한 평화적 해결책을 강조하면서 영국과 함께 추진하는 다국적 임무와 한국의 협력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한국이 영국·프랑스 주도의 다국적 군사임무에 정식 참가하기로 결정했거나 특정 전력을 보내기로 합의한 것은 아니다. 파병 여부와 참여방식, 전력의 종류와 규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중요한 변화는 한국의 선택지가 더 이상 미국의 파병 요구에 응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 국제법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를 회복한다는 목적 아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와 협력하면서 국가이익과 작전상의 자율성을 함께 확보하는 제3의 선택을 검토할 수 있다. 미국의 요구가 목적이 아니라 항행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이 목적이 되고, 다국적 협력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러한 방식으로 참여할 경험과 작전모델을 가지고 있는가. 새로운 모델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이미 독자적인 국가 지휘권을 유지하면서 다국적 해양안보작전에 선택적으로 참여해 온 청해부대의 경험이 있다.

한국이 호르무즈의 항행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한다면 다음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가이다. 다국적 지휘체계에 그대로 편입하거나 한국이 독자적으로 전력을 보내는 두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독자적인 국가 지휘권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부분에서는 다국적 협력을 해온 경험이 있다. 바로 청해부대다.
청해부대는 한국의 국가 지휘계통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면서 필요에 따라 다국적 해양안보작전에 참여해 왔다. 한국 선박의 안전항해와 국민 보호뿐 아니라 연합해군사령부(CMF·Combined Maritime Forces)와 유럽연합(EU)의 해양안보활동에도 참여했다. 특히 CMF 예하 다국적 대해적 기동부대인 CTF-151의 작전과 훈련에 참여했고, 2016년에는 한국 해군이 CTF-151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독자작전과 다국적 협력이 반드시 양자택일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이 호르무즈에 직접 적용된 것이 2020년이었다. 당시 미국은 선박 보호를 위한 국제해양안보구상(IMSC·International Maritime Security Construct)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청해부대를 미국 주도의 지휘체계에 정식 편입시키는 대신 작전구역을 호르무즈 인근까지 확대했다. 한국군은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IMSC에 연락장교 2명을 파견해 필요한 정보와 작전협력을 유지했다.
이 선택의 핵심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단순한 절충점을 찾았다는 데 있지 않다. 한국이 작전목적과 국가 지휘권을 유지하면서도 국제사회의 항행안전 노력에는 필요한 범위에서 참여할 수 있다는 하나의 작전모델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2020년의 방식은 ‘독자활동 + 선택적 다국적 협력’이었다.
2026년에는 이 경험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변화된 상황에 맞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미국 주도의 IMSC와 협력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방어적 다국적 해양안보협력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등장했다. 특히 9월 8일 한·프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호르무즈의 항행의 자유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위한 공조 의지를 확인한 것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협력의 범위가 과거보다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단독으로 호르무즈에 전력을 투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한국이 독립된 군사적 행위자로 전면에 나설 경우 이란과 직접 대치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특히 이란이 미국과 직접 충돌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대응 부담이 작은 참가국을 선택적으로 압박해 다른 국가들의 참여를 위축시키려 한다면 한국이 다국적 참여국 가운데 약한 고리(Weak Link)로 인식될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다국적 협력이 이러한 위험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국가가 항행의 자유라는 공동목적과 제한된 임무 아래 함께 행동한다면 특정 국가를 선택적으로 압박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군사적 비용은 높아질 수 있다. 한국에 대한 공격도 한·이란 사이의 양자적 충돌에 그치지 않고 항행의 자유를 보호하는 다국적 협력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이 한국이 단독참여보다 다국적 협력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다국적 참여가 한국군의 지휘권을 외국에 넘기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청해부대의 경험이 보여주는 핵심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국가 지휘권을 유지하면서 연락장교 파견, 정보공유, 공동 상황인식과 작전협조 등 필요한 분야에서 다국적 협력을 할 수 있다. 작전목적과 교전규칙, 허용되는 임무와 금지되는 임무 역시 한국이 사전에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2020년의 ‘독자활동 + 선택적 다국적 협력’을 2026년에는 ‘국가 지휘권 + 다국적 해양안보협력 + 기능별 기여’로 발전시킬 수 있다.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자동적으로 편입되는 것도, 한국 혼자 호르무즈의 위험을 떠안는 것도 아니다. 항행의 자유라는 공동목적 아래 국제사회와 책임과 위험을 나누면서 한국이 자신의 작전목적과 지휘권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구체적이다. 한국은 청해부대와 P-8 해상초계기, 기뢰·폭발물 대응전력과 군수지원 능력을 어떻게 결합해 항행의 자유를 지키는 데 기여할 것인가.

한국이 호르무즈에 참여한다면 중요한 것은 파병 여부 자체보다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가이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것과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항행의 자유와 상선 보호를 위한 다국적 해양안보협력에 참여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한국의 목적은 이란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선박과 국민을 보호하고 국제법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가 실제 바다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참여는 단독파병보다 다국적 협력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모든 전력을 하나의 대규모 전투부대로 묶어 투입할 필요는 없다. 청해부대와 P-8 해상초계기, 기뢰·폭발물 대응전력, 군수지원함 등을 실제 임무와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결합하면 보호 → 탐지 → 제거 → 지속이라는 한국형 항행안보 기여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첫째는 보호다. 청해부대는 한국 선박과 국민 보호, 안전항해 지원이라는 기존 임무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국 선박의 호송과 위험해역 통과 지원, 조난선박 구조와 국민 보호 등은 새로운 공격임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청해부대가 수행해 온 임무를 변화된 호르무즈 환경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탐지다. P-8 해상초계기는 넓은 해역을 감시하면서 수상함과 잠재적 위협을 탐지·식별하고 ‘해상상황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다국적 협력체와 공유한다면 상선에 대한 위협을 조기에 식별하고 경보하는 공동 상황인식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셋째는 제거다. 기뢰와 폭발물은 호르무즈의 항행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한국의 EOD와 기뢰대응 능력은 발견된 폭발물의 식별과 처리, 위험해역의 안전 확보 등에 기여할 수 있다. 다만 EOD 요원의 투입을 한국이 독자적인 대규모 기뢰제거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실제 제공 가능한 장비와 인력, 다국적 기뢰대응전력과의 역할분담을 기준으로 임무를 설정해야 한다.
넷째는 지속이다. 원해에서 장기간 작전하려면 연료와 식량, 정비와 의료 등 지속적인 군수지원이 필요하다. 군수지원함은 한국 전력의 작전지속성을 높이고 필요할 경우 다국적 임무의 지원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호르무즈의 항행안전 회복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군수지원 능력 역시 중요한 기여수단이다.
그러나 무엇을 보낼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미리 결정하는 일이다. 한국 선박의 보호와 호송, 해상감시와 위협경보, 정보공유, 기뢰·폭발물 대응, 조난구조와 군수지원은 항행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직접적인 국가이익에 연결된다. 반면 이란 영토와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 미국의 대이란 보복작전에 대한 자동적 참여, 공격표적 선정과 타격을 직접 지원하는 임무는 별개의 문제다. 이 경계가 무너지면 항행의 자유를 위한 참여가 대이란 전쟁참가로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다국적 협력에 참여하더라도 한국군의 국가 지휘권은 유지돼야 한다. 다국적 협력은 지휘권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2020년 청해부대의 경험처럼 독자적인 지휘계통을 유지하면서 연락장교 파견과 정보공유, 작전협조를 통해 국제사회와 협력할 수 있다. 공동작전의 범위와 절차를 사전에 합의하더라도 다른 국가가 한국군의 임무확대를 자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는 피해야 한다.
교전규칙(ROE·Rules of Engagement)도 명확해야 한다. 한국군이나 보호 중인 선박이 직접적인 위협에 처했을 때 어느 수준까지 무력을 사용할 것인지, 다른 국가의 함정이나 상선이 공격받을 경우 어디까지 지원할 것인지, 미군과 이란군의 직접적인 교전이 발생하면 한국군은 어떤 위치를 취할 것인지를 파병 이전에 정해야 한다. 현장의 우발적 충돌이 임무확대와 전쟁참가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파병기간과 종료·철수조건도 사전에 설정해야 한다. 상선 통항이 일정 수준 정상화되고 기뢰와 폭발물 위협이 감소하거나 다국적 임무의 목적이 달성되면 한국군의 임무를 재평가해야 한다. 반대로 다국적 임무가 항행의 자유 보호에서 대이란 공격작전으로 변화하거나 한국군의 임무가 최초의 목적을 벗어난다면 참여방식 자체를 재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한국의 선택은 미국의 전쟁에 참가하는 단독파병과 국제사회의 노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사이의 양자택일일 필요가 없다. 국가 지휘권을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와 항행의 자유라는 공동목표를 공유하고 필요한 기능을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2020년의 청해부대 모델이 독자활동과 선택적 다국적 협력을 결합한 것이었다면, 2026년에는 이를 국가 지휘권 + 다국적 해양안보협력 + 기능별 기여 + 임무통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 보호 → 탐지 → 제거 → 지속의 기여체계를 갖추되 공격작전과는 분명한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이다.
한국이 호르무즈에 참여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미국이 요구하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국제법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선박, 국민, 해상교통로를 지키기 위해서여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한국 혼자 위험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책임과 위험을 나누면서 한국 스스로 참여의 범위와 한계를 통제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국제법이 항행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서 현실의 바다에서 그 권리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호르무즈에서 나타난 것은 바로 법적 권리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 군사적 위협이 통항을 위축시키고 선별적 통항과 허가, 통행료와 서비스비용까지 통항의 조건으로 등장한다면 국제법이 보장한 권리는 현실에서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항행의 자유를 지킨다는 이유로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편입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이 참여한다면 목적은 이란과의 전쟁이 아니라 국제해양질서의 회복이어야 한다. 한국 선박과 국민을 보호하고 국제사회와 책임과 위험을 나누되, 국가 지휘권과 독자적인 판단권을 유지하면서 공격작전과 방어적 해양안보활동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한국이 판단해야 할 것은 파병이냐 비파병이냐만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어디까지 참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국가 지휘권과 제한된 임무를 전제로 한 다국적 협력은 항행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을 지키면서 이란과의 직접적인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은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 국제법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이다. 군사적 위협 때문에 국제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특정 국가의 허가를 받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질서를 국제사회가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호르무즈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다른 국제해협과 해상교통로에서도 반복될 수 있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항행의 자유는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 자유를 필요로 하는 국가들이 함께 지킬 때 비로소 현실의 권리가 된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정충신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청주서 20대女 10대 2명과 야차룰 싸우다 사망
- “저거 문신이야?” 기본소득당 부대변인 눈길
- 최태원·노소영 넘어설까…‘최대 4조 재산분할’ 권혁빈 이혼소송 오늘 결론
- [속보]‘보좌관 휴대폰으로 주식투자 의혹’ 이춘석 의원, 법정행
- [속보]용혜인 반대 72.2%·김승원 반대 60.6%-여론조사공정
- [속보]대통령지지 36.4%…서울 부정평가 70%-한길리서치
- “손주 15년 키운 값 7200만원 다오”…‘황혼육아’ 청구서 내민 할머니[아하중국]
- ‘갑자기 대장동이 왜 나와?’…김승원 ‘로비 의혹’ 업체, KH그룹과 사업관계
- “용혜인黨 10곳 중 6곳이 농장이나 아파트…퇴출 사유” 주진우, 의혹제기
- ‘탈출한 개미가 옳았나’…7천피 회복했다 다시 고꾸라진 코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