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딜레마…사립대 외면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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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사립대의 학생들도 분명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사립대에서 교육받은 학생도 사회 발전에 꼭 필요한 국가적 인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다고 국립대에 대한 지원이 계속되면 사립대의 교육은 더욱 부실해질 것이고, 재정적으로도 파탄에 이르게 되는 사립대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그런 뜻에서 우리 고등교육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국가적 의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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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교육은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이라 조심스럽다던 정부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으로 보인다. 초중등 교육에 쓰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내국세 연동 구조에서 경상성장률·학령인구 변화를 반영하도록 변경하면서 발생하는 연간 약 20조 원의 재원 중 일부를 대학 지원 쪽으로 재배분할 모양이다.
구체적인 지원 내용도 드러나고 있다. 내년부터 비수도권 국립대 30곳의 신입생 등록금을 사실상 전액 면제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국립대의 등록금 면제 요구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교육부가 자발적으로 내놓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당장 내년에 1000억 원이 추가로 투입돼야 하는 일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첫 대상으로 9개 지역거점국립대 중 부산대·전남대·충남대에 학교당 연간 1000억 원을 지원한다. 탈락한 나머지 6개 지역거점국립대에도 400억 원의 위로금이 주어진다. 고등교육이 ‘맹목적 퍼주기’의 대상으로 변해버리는 셈이다.
● 실종된 사립대 지원 방안
2009년 포퓰리즘적인 반값 등록금 정책 이후 18년째 이어지고 있는 정부의 강력한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대학의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른 현실에서 정부가 대학 지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심지어 고등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투자가 OECD 평균의 7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고등교육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국립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간이 설립해서 운영하는 ‘사립대’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교육부의 대학 지원 정책에서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이다. 우리의 고등교육에서 사립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2025년 대학정보공시의 대상인 4년제 일반·교육대학 193개교 가운데 사립대학은 151개교로 전체의 78%나 된다. 국공립대학은 40여 개교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 수 기준으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육부 통계에서도 대학 재학생의 80%가 사립대학에 재학하고 있다. 수도권이나 비수도권에 따른 지역별 편차도 크지 않다.
사립대의 비중을 절대적으로 만든 것은 정부였다. 특히 1996년에 시작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교지·교사·교원·수익용 기본재산의 4대 요건만 갖추면 정부 심사 없이 대학을 세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민적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던 정부가 민간에게 고등교육의 부담을 떠안겨버린 것이었다.
전국에 사립대가 우후죽순으로 설립됐다. 157개였던 사립대가 순식간에 281개로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에 국공립대는 오히려 67개에서 54개로 줄어들었다. 결국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은 사립대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물론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사립대의 상황이 매우 위태롭다. 정부가 집중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국립대를 키우면, 지역의 사립대도 덩달아 발전한다는 시너지는 지나치게 순진한 기대일 뿐이다. 오히려 신입생이 등록금이 면제되는 국립대로 몰려가면서 사립대의 신입생 확보 전쟁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내년에는 자진해서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에 지급하던 국가장학금 ‘Ⅱ유형’마저 폐지된다. 신입생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국립대보다 더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사립대에 대한 매력이 더욱 줄어드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립대와 사립대를 선택한 학생을 드러내놓고 차별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사립대의 학생들도 분명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사립대에서 교육받은 학생도 사회 발전에 꼭 필요한 국가적 인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립대는 민간에서 설립했으니, 교육도 전적으로 대학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일방적인 억지다. 민간의 독지가가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을 설립해 준 공로는 분명하게 인정해야 하고, 그 이상의 책임을 무작정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이중잣대가 낳은 부실
더욱이 현재 사립대는 어떠한 근거도 없는 과도한 등록금 동결 정책에 묶여있는 형편이다. 사립대 재정난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간다. 대학교육협의회의 자료에 따르면 사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는 1713만5000원으로 국립대(2280만7000원)의 75% 수준이다.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도 사립대가 국립대의 70%에 머문다.
대학의 자율권도 대부분 교육부에 빼앗겨 버렸고, 학생 선발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사립대가 민간의 재정 지원을 확보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사립대의 현실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교원 충원은 물론이고, 꼭 필요한 시설 투자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사립대 107개 중 55개에서 비정년트랙 교원의 비율이 25%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있다.
전임교원 확보율이라는 평가지표를 채우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사립대의 고육지책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국립대에 대한 지원이 계속되면 사립대의 교육은 더욱 부실해질 것이고, 재정적으로도 파탄에 이르게 되는 사립대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가 활용할 인재의 교육비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자칫하면 고등교육 인력의 80%를 방치하는 셈이 될 수 있다. 정부가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의 국립·사립 구분 없는 재정 지원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사립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도 정부가 상당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 사립대를 살리는 고등교육 개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게 된 것은 교육에 대한 우리의 뜨거운 열기 덕분이었다. 실제로 피터 드러커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한국어판 서문에서 분명하게 밝혔듯이, 우리는 '부존자원이 없는 후진국으로서 교육을 통해 성공적으로 산업사회에 진입한 대표적인 국가'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성장의 유일한 동력(動力)이 곧 교육받은 인재였다는 뜻이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사정은 오히려 더욱 절박하다. 이제는 공장과 자본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서 공급하는 사회적 능력이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런 지식을 창출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 바로 대학이다. 대학이 끊임없이 지식을 창출하고, 인재를 양성해야만 사회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길은 없다. 그런 뜻에서 우리 고등교육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국가적 의무일 수밖에 없다.
인재 양성에서 사립대의 중요성은 인공지능(AI) 분야의 인력 양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27년 AI 분야 인력은 1만2800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회의 인력 수요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사립대다. 실제로 2027학년도 입시에서 AI를 포함한 첨단학과 정원을 가장 많이 늘린 곳은 고려대·세종대·동국대를 비롯한 사립대였다. 우리의 인력 양성 사업에서 사립대의 존재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사례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립대만 바라보고 있다. 교육부가 작년 11월에 내놓은 ‘모두를 위한 AI 인재 양성 방안’이 그렇다. 지역거점국립대를 ‘지역 AI 거점대학’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립대가 모두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상당수의 지역 사립대가 신입생과 재정의 확보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교육협의회의 추산으로는 2025년에 53개교가 신입생 미충원으로 운영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교협의 2021년 분석에 따르면, 비수도권 사립대의 81.3%와 수도권 사립대의 70.8%가 적자를 기록했다. 교육부가 2025년에 학자금 지원을 제한한 대학도 10개나 된다.
물론 부실 사립대에 퇴로를 열어주는 ‘사립대학구조개선법’과 같은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립대가 처음부터 부실에 빠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부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립대의 퇴출이 남기는 충격은 지역균형 발전의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학 생태계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립대를 의도적으로 제쳐놓은 고등교육 개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사립대의 손발은 꽁꽁 묶어두고, 정부가 세금을 쏟아붓는 국립대와 경쟁해서 살아남으라는 요구는 공정한 것도 아니고,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자칫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대학 생태계를 통째로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서 지원해야 하는 궁극적인 대상은 ‘대학’이 아니라 ‘학생’이다. 대학을 누가 설립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고, 사립대의 학생을 2등 국민으로 취급해서는 절대 안 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로 마련하겠다는 ‘미래대응기금’에도 ‘사립대 이공계 인프라 구축 지원’이 들어있다.
그러나 사립대는 이공계 인프라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인문사회계열의 재정난이나 노후 시설의 개선처럼 이공계 지원 항목만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영역이 훨씬 넓다.
교육부가 고등교육 개혁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이 국립대와 사립대의 상생(相生)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개편으로 확보한 재원의 일부를 명시적으로 사립대의 상생을 위한 몫으로 배정하고, 국립대와 사립대를 가리지 않는 재정 지원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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