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역사박물관이 살아 움직인다…131분 압도하는 우하하고 섬세한 스릴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탕탕탕탕탕...탕.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안에서 울린 여섯 발의 총성.
영화 '암살자(들)'은 시작과 동시에 관객을 1974년 8월 그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렇게 관객을 1974년으로 데려다 놓은 영화는 그날 국립극장에서 울린 총성의 미스터리를 본격적으로 꺼낸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탕탕탕탕탕...탕.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안에서 울린 여섯 발의 총성.
영화 ‘암살자(들)’은 시작과 동시에 관객을 1974년 8월 그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제29회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국립극장.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생중계 현장에서 영부인이 저격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는 실제 역사로 남은 이 사건을 출발점으로, 공식 기록이 설명하지 못한 의문과 지워진 공백을 파고든다.
영화는 마치 타임머신처럼 1974년 그 시절로 이동한다. 한옥을 개조한 듯한 오래된 집과 앞마당에 심어놓은 채소, 낡은 골목과 당시 생산된 자동차, 건물과 상점의 모습까지 화면 곳곳에 1970년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인물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물론이고 집 안의 가구와 사무실의 집기, 작은 소품 하나까지 시대에 맞게 채워 넣었다. 마치 1970년대 역사박물관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해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렇게 관객을 1974년으로 데려다 놓은 영화는 그날 국립극장에서 울린 총성의 미스터리를 본격적으로 꺼낸다.



영화의 중심에는 현장을 지킨 형사 철구(유해진)와 사건의 이면을 응시하는 동성일보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그리고 그날의 혼란을 직접 목격한 신입 기자 한영일(이민호)이 있다.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형사 철구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이후 기자들과 진실을 향해 사건을 추적하는 플롯도 설득력을 높인다. 왜 진실이 중요한지, 그리고 진실의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를 일깨우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렸지만 발견된 탄환은 네 개. 공식적으로 발표된 수사 결과와 실제 정황 사이에는 설명되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영화는 바로 그 ‘역사의 공백’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암살자(들)’은 이미 결말이 알려진 역사적 사건을 다시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 총성이 몇 발이었는지, 사라진 탄환은 어디로 갔는지, 사건을 둘러싼 정황이 무엇이었는지를 형사와 기자의 시선으로 하나씩 좇는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하나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다음에는 무엇이 밝혀질까’를 따라가며 좀처럼 긴장을 놓을 수도, 시선을 뗄 수도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과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은 작품의 미덕이다. 허진호 감독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에 미스터리의 장르적 재미를 녹여냈다. 작품성과 대중성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두 요소를 절묘하게 맞물리게 한 연출이 돋보인다. 특히 거칠게 몰아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의 미스터리에 얽힌 서사와 이를 풀어내는 플롯은 유려하고 우아하다. 그동안 섬세하고 서정적인 작품을 만들어온 허 감독은 이 작품에서 그동안 숨겨뒀던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물 연출력을 마음껏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1분의 러닝타임 동안 사건의 전말과 인물의 서사 등 모든 것이 팽팽하게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느슨한 틈을 보이지 않는다. 장르적 재미를 위해 허진호 특유의 섬세함을 버린 것도 아니다. 자극적인 방식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보다 인물과 상황을 차분하게 쌓아 올린다. 그래서 영부인 저격 사건이라는 다소 거칠고 격해질 수 있는 사건을 둘러싼 스릴러에 세련된 아우라를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거운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관객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도록 대중성을 확보한 것도 장점이다.

또 철구 가족이 전하는 소소한 웃음도 영화에 숨을 불어넣는다. 철구의 아내가 철구의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며 “새장가 가도 되겠네”라고 하자 철구가 웃음으로 답하고, 이어 아내가 “내가 중신 함 설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옛날 부부의 케미가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무거운 사건을 다루는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 같은 장면은 철구라는 인물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극의 긴장을 잠시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 오정세, 박해준, 심은경, 정우성, 신현빈, 임원희, 유연석, 박성훈, 류경수, 배성우, 오달수 등 유명 배우들의 특별출연과 단역 릴레이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끌어 올린다. 이처럼 정상급 배우들이 릴레이로 출연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으로 작품에 대한 배우들의 높은 신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배후가 누구인가’에 머물지 않는다. 진실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철구는 자신이 목격한 정황을 의심하고, 재환은 검열과 압박 속에서도 기사를 쓰려 한다. 영일 역시 자신이 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인다. 거대한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둘러싸고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박해일이 연기한 재환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끊임없는 검열과 압박에도 진실을 기록하려는 그의 모습은 1974년이라는 시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무엇이 사실인지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려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를 지금의 관객에게도 되묻는다.
‘암살자(들)’의 또 다른 강점은 세대 확장성이다. 최근 극장가에서 다양한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인지 여부가 흥행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가운데, 특히 가족이 모이는 추석 연휴에 어울리는 영화라는 평가다.
1970년대를 직접 살아온 중장년·노년층에게는 영화 속 풍경과 사건이 자신의 기억을 불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당시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영화가 재현한 시대를 보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반면 1974년의 사건을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역사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 새롭게 접하는 기회가 된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부모 세대는 ‘그때는 이랬다’고 이야기하고, 자녀 세대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영화 한 편이 세대 간 기억과 질문을 연결하는 대화의 장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단순히 온 가족이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영화를 보고 각자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석 극장가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
결국 영화는 1974년의 공기와 분위기를 스크린에 되살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과 그 시대를 잘 모르는 사람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역사의 공백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사건의 배후만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자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다. 23일 개봉, 12세 이상, 131분.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방송인 낸시랭, 새벽 강남서 음주운전 적발…면허취소 수준
- “독일이 전쟁을 원한다” 폭탄 발언 나왔다…세계대전까지 언급, 도대체 무슨 일?
- ‘이효리 남편’ 이상순, 건강 이상으로 활동 중단…“정밀검사 기다리는 중” 무슨 병이길래
- “엄마 대신 날 채워줄 사람이 필요해”…‘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어떻게 13년을 속였나
- 현대차 노조 “직원 車 할인 30% 포기 못해”…20% 수정안 결국 무산
- “제주 가기 무섭다” 실종 사건 악용한 SNS 괴담 확산에…관광업계 ‘골머리’
- “밖에서 술 마셔봤자 돈만 쓰고”…술집서 사라진 젊은이들 뭐하나 봤더니
- 돈 많은 부자 이렇게나 많다니...다들 어떻게 벌었나 봤더니
- “개미들, 100주 사놓고 핸드폰만 쳐다봐”…존리 “부자 되고 싶다면” 조언 들어보니
- “라면 국물 제발 남기세요”…전문가 경고 나오는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