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련을 건너 마침내 집으로… 영화 '오디세이'와 명화에 담긴 귀향

아르떼 2026. 9. 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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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전원경의 그림과 음악이 만나는 순간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 먼 길
오디세우스 vs 페르 귄트

천만 영화 ‘오디세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다 장면들이다. 아이맥스 화면을 가득 채운 짙푸른 바다 위를 오디세우스와 병사들은 때론 희망에 차서, 또 때로는 공포와 피로에 지친 채로 하염없이 노를 저어간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가족이 있는 고향 이타카. 집으로 가는 바닷길은 멀기만 하다. 그 바다 위에서 오디세우스 일행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만나 죽을 위기를 넘기고 마녀 키르케의 손에 돼지로 변하며 멀리서 들려오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넋을 놓고 죽음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 장면들은 홀린 듯 아름답기도 했고, 기대에 살짝 못 미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고전을 담은 영화답게 ‘오디세이’의 몇몇 장면들은 저절로 어떤 그림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영화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여기부터 살짝 ‘스포’가 있다)

영화 '오디세이'의 한 장면 / 제공. 유니버설픽처스코리아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이 귀환하면서 만나는 첫 번째 재난은 무시무시한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와의 대적이다. 사나운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병사 하나를 들어 우적우적 씹어먹는 광경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저런, 저 장면은 고야의 그림 그대로잖아!’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30년 넘게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로 군림하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다. 그러나 부패와 실정으로 타락해가는 왕실과 무능한 군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보낸 30년은 화가의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를 남겼다.

궁정화가 직위에서 은퇴한 후, 매독 후유증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 고야는 마드리드 교외에 있는 작은 집에 은둔한다. 노환으로 시름시름 앓다 회복된 고야는 갑자기 집의 벽에 붓을 던지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의 사후에야 발견된 이 열네 점의 벽화들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검은 그림들’이라고 불리는 이 벽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거인이 큰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인간의 몸을 뜯어먹는 장면이다. 그림은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겨지며 ‘자식을 잡아먹는 거인 사투르누스’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고야가 정확히 어떤 인물을 모델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이미지 크게보기 프란시스코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19-23년, 여러 재료로 그림, 벽화, 146 x 83 c 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 출처. 위키피디아

고야의 악몽 같은 그림 속 거인, 무지와 탐욕의 눈을 번들거리며 인간을 먹어치우는 거한의 모습은 놀란 감독이 창조해낸 영화 속 키클롭스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1827~1901)도 허둥지둥 도망치는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돌을 던지며 분노하는 키클롭스의 모습을 그렸다. 무거운 돌을 번쩍 들어 올린, 팔다리 긴 거인의 모습에서 오디세우스를 향한 분노가 선명히 보이는 듯하다. 오디세우스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 아슬아슬하게 거인의 공격을 피해가고 있다.

아르놀트 뵈클린,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무스>, 1896년, 패널에 템페라와 유채, 66 x 150 c m, 보스턴 미술관, 보스턴 / 출처. 위키피디아

모든 화가들이 다 키클롭스를 무시무시한 거인으로 그린 것은 아니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1840~1916)은 키클롭스 중 하나인 폴리페무스가 사랑에 빠진 모습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창조해냈다. 폴리페무스는 짝사랑하는 님프 갈라테이아를 멀찌감치서 훔쳐보고 있다. 산 너머에 몸을 숨긴 채 갈라테이아를 바라보는 폴리페무스의 눈동자에는 애절함과 안타까움, 연모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분명 갈라테이아는 이 외눈박이 거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텐데 어쩌면 좋아, 그림을 보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순진해 보이는 거인을 응원하게 된다.

오딜롱 르동, <키클롭스>, 1914년, 카드보드지에 유채, 65.8 x 52.7 c m,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 출처. 위키피디아

바다에 나간 오디세우스 일행은 마녀와 님프를 만나고 저승을 다녀오기도 하는 등, 숱한 모험 속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다. 그 험난한 모험 중 제일 잘 알려진 장면은 아름다운 ‘물귀신’ 세이렌들이 노래하는 장면이다. 세이렌은 이탈리아 반도 남쪽 끄트머리, 카프리 인근 해협을 항해해 가는 뱃사람들을 아름다운 노래로 홀려서 물에 빠지게 하는 사악한 미녀들이다. 오디세우스는 노를 젓는 부하들에게 모두 귀를 막게 하지만, 자신만은 돛대에 몸을 묶은 채 세이렌들의 노래를 들으며 해협을 통과한다.

세이렌의 존재는 모든 인간은 살아가며 수많은 사악하고 달콤한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며, 인간의 이성으로 그 유혹을 물리치기란 거의 불가능함을 상징하는 듯싶다. 그런데 놀란 감독은 어쩐 일인지 이 장면에서 세이렌들을 멀찌감치 떨어진 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만 처리했다. 매혹적인 노랫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오디세우스의 병사 하나가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 장면을 비추는데 이 배우가 살짝 낯익은 인상을 준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윌 윤 리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1900년, 캔버스에 유채, 177 x 213.5 c m, 페렌스 미술관. 헐 뮤지엄 / 출처. 위키피디아

세이렌의 모습은 놀란 감독의 영화보다 여러 그림에서 훨씬 더 매혹적으로 그려졌다. 영국의 유미주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의 그림에서는 물에 빠진 뱃사람이 세이렌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눈빛을 강력하게 보내고 있다. 그림 속 세이렌은 아름다운 몸과 얼굴을 가졌지만 얼굴은 그늘에 가리워진 채다. 그녀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뱃사람을 구해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역시 영국 화가인 허버트 드레이퍼(1863~1920)도 세이렌의 악마적인 유혹과 몸부림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세이렌>, 1900년, 캔버스에 유채, 81 x 53 c m, 개인소장 / 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여기서 잠깐, 고전에 능통했던 워터하우스가 그린 또 다른 세이렌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인어’가 아니라 반인반조, 즉 사람의 몸에 새의 몸통을 가진 기묘한 형상이다. 실제로 고대의 문헌에는 세이렌이 반인반어가 아니라 반인반조로 묘사된 경우가 많다. 명민한 르네상스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까지도 세이렌이 실제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기록을 남겨놓았다 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00.6 x 202 c m,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 출처. 위키피디아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베를 짜는 페넬로페

오디세우스가 갖가지 모험과 유혹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오디세우스의 고국인 이타카에서 그의 아내 페넬로페 역시 쉽지 않은 난관에 맞닥뜨리고 있었다. 20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는 왕 오디세우스를 포기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 그 남자로 하여금 비어 있는 왕위를 잇게 하라는 압력이었다. 페넬로페는 백 명이 넘는 사나운 구혼자들을 무마하기 위해 시아버지의 상복을 짠다며 베틀 앞에 앉아 쉬지 않고 베를 짠다. 그녀가 밤마다 낮에 짠 부분을 몰래 풀었기 때문에 상복은 언제까지나 완성되지 않는다. 길고 긴 20년의 기다림 끝에 페넬로페는 거지로 변장하고 이타카로 돌아온 남편 오디세우스와 재회하게 된다.

워터하우스의 그림에서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을 애써 외면하며 베틀에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다. 창틀에 매달린 구혼자들은 구애의 세레나데를 부르기도 하고 보석이나 꽃을 바치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납고 맹렬하다. 붉은 옷을 입은 페넬로페는 실을 이로 물어 끊고 있다. 그녀의 상기된 얼굴과 신경질적인 행동은 지금 등 뒤에서 아우성치는 남자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음을, 할 수만 있다면 물어서라도 그들을 내쫓아버리고 싶다는 속마음을 보여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1912년, 캔버스에 유채, 129.8 x 158.5 c m, 애버딘 미술관, 에버딘 / 출처. 위키피디아

역시 영국 화가인 조셉 라이트(1734~1797)가 그린 ‘천을 푸는 페넬로페’는 낮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녀는 잠든 아들 텔레마코스의 머리맡에 앉아 낮에 짰던 천을 가만가만히 푼다. 세상 모르고 잠든 아들의 얼굴 윤곽을 더듬으며 페넬로페는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져가는 남편의 얼굴을 떠올린다. 오른편에 선 오디세우스의 동상, 갑옷을 갖추어 입고 전장에 나설 때의 모습 같은 오디세우스가 그런 모자를 바라보고 있다.

조셉 라이트, <천을 푸는 페넬로페>, 1785년, 캔버스에 유채, 101.6 x 127 c m, 폴 게티 센터, 로스앤젤레스 / 출처. 위키피디아

방랑의 길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남자와 그를 기다리며 베를 짜는 여자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드물지 않은 이야기인 듯싶다. 노르웨이의 설화 ‘페르 귄트’에서도 방랑자 페르 귄트는 약혼녀를 버리고 길을 떠난다. 수십 년의 방랑에서 페르는 트롤 왕의 궁전에 가고 여자를 납치하는가 하면 모로코와 이집트까지 먼 길을 헤매어 다닌다.

시간이 흐르고 노인이 된 페르는 지친 몸을 끌고 고향에 돌아온다. 늙고 병든 그는 자신이 헛된 꿈을 찾아다니며 인생을 허비했음을 깨닫는다. 감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집 안에서 자신의 약혼녀였던 솔베이그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솔베이그는 평생 베를 짜며 페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솔베이그에게 용서받은 페르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숨을 거둔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또 가고~’라는 가사의, 구슬픈 솔베이그의 노래를 음악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는 분도 계실 것이다. 이 노래는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헨리크 입센이 쓴 극시 ‘페르 귄트’의 부수음악 중 한 곡으로 역시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트 그리그(1843~1907)의 작품이다.

[모음곡 ‘페르 귄트’ 중 ‘솔베이그의 노래’]


놀란 감독은 트로이 전쟁을 통한 한 문명의 종말에 주목했다. 그의 영화 속에서 오디세우스는 어둡고 고난에 찬 운명과 맞닥뜨린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방랑은 비극적인 행로만은 아니다. 길고 긴 여정 끝에 이 남자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만물박사 존슨’으로 불렸던 영국의 문필가 새뮈엘 존슨은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기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든 야망의 궁극적 결과이고 인간의 노력과 노동이 지향하는 종착점이다.”

결국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매일의 노동을, 때로는 만만치 않은 고통이나 어려운 사명까지도 다 감내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상이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전원경 예술 전문 작가·세종사이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