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시장 8094억 ‘역대 최대’…클래식은 왜 웃지 못했나”[여보세요]

강석봉 기자 2026. 9. 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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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사내벤처서 스핀오프…오페라 가수 꿈꾸던 개발자가 찾은 답은 ‘티켓’
일러스트|AI생성

[스포츠경향 강석봉 기자] 올해 상반기 국내 공연 시장은 8094억 원을 기록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집계 기준 역대 상반기 최대치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9% 늘었다. 티켓 판매량은 약 1141만 매에 달했다.

그러나 이 성장은 고르게 나뉘지 않았다. 대중음악이 4527억 원으로 전체의 55.9%를 가져간 반면, 클래식·국악·무용을 합친 순수예술 장르는 약 515억 원, 전체의 6% 수준에 머물렀다. 클래식은 지난해 상반기 판매액이 4분의 1 가까이 줄었다가 올해 소폭 회복했다. 그러나 2년 전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국악과 무용은 올해 다시 줄었다. 시장 전체가 커지는 동안, 이쪽은 그 흐름에 함께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지역 편중도 뚜렷하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수도권이 전체 판매액의 85.4%를 차지했다. 전국에 문예회관이 자리 잡고 있지만, 실제 거래가 일어나는 곳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

1000석을 다 팔아도, 누가 앉았는지 모른다

두 시장의 격차는 대체로 콘텐츠나 예산의 문제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티켓 데이터 솔루션 기업 마스킷(MASKIT)의 배호연 대표는 다른 지점을 지목한다.

“여러 문예회관을 직접 찾아다녔는데, 규모와 지역이 달라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객석을 채웠던 관객과의 관계도 함께 끝납니다. 1000석을 다 팔아도 누가 앉아 있었는지 모르는 겁니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국내 공연 예매는 대부분 외부 예매처를 통해 이뤄지고, 관객 정보는 예매처에 남는다. 공연장에는 정산 내역이 돌아올 뿐이다. 같은 공연장에서 열 번 공연을 올려도, 열한 번째 공연을 알릴 대상 목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 대표는 이를 담당자의 역량 문제로 보지 않는다. “문화재단과 공연장은 조직 특성상 기술과 데이터를 직접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고객관계관리(CRM)를 도입하고 싶어도, 그보다 먼저 있어야 할 데이터 수집·축적 인프라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다음 공연 홍보는 현수막과 지역 광고로 대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더 무겁게 보는 것은 경쟁 상대다. 게임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유튜브는 이용자 반응을 계속 학습하며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 전환(AX)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공연예술도 같은 시장에서 관객의 시간을 놓고 경쟁합니다. 그런데 정작 관객을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몇몇 공연장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에 선행 데이터 인프라가 없어서 생긴 구조적 문제라고 봤습니다.”

오페라 가수를 꿈꾸던 사람이 돌아온 자리

배 대표의 이력은 이 업계에서 흔치 않다. 연세대 교회음악과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 오페라과에 합격했지만,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당시 급등한 환율을 감당하지 못해 진학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곧바로 개발자가 된 것은 아니다. 음악과 미술, 영상과 기술이 함께 작동하는 종합예술에 대한 관심이 웹아트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코드가 또 하나의 표현 언어가 됐다. 이후 DB Inc.에서 엔지니어 경력을 시작해 GS홈쇼핑과 LG전자에서 디지털 전환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개인정보와 고객 데이터를 다루는 실무자였다. “돌이켜보면 음악가로 15년, 엔지니어로 15년을 살았습니다.”

두 이력이 만난 지점이 티켓이었다. “데이터를 다루다 보니 티켓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티켓은 단순한 입장권이 아니라 개인정보와 구매, 관람 경험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사명 마스킷도 ‘마이데이터 스타터 키트(MyData Starter Kit)’에서 출발했다.

대기업을 떠나는 결정은 가볍지 않았다고 했다. “음악과 기술 두 세계를 오래 경험한 제가 그 둘을 연결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은 경험이 절반씩 서로 만나지 못한 채 남을 것 같았습니다.”

마스킷은 맨바닥에서 시작한 회사가 아니다. LG전자 사내벤처로 출발해 사업을 검증한 뒤 스핀오프로 독립했다.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클래식·국악·무용을 합쳐도 전체 공연 시장의 6% 남짓이다. 왜 하필 이 시장이냐는 질문에 배 대표는 두 개의 답을 내놨다.

“첫 번째 답은 단순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만으로 창업한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답은 시장의 크기를 고정된 값으로 보지 않는 데서 나온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시장을 넓히기 어렵고, 관객을 이해하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기반이 먼저라는 판단이다.

“공연예술 콘텐츠에 기술과 데이터가 제대로 연결되는 순간, 이 시장이 지금의 작은 규모 안에서 경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훨씬 큰 흐름을 만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좋은 공연이 더 많은 관객에게 발견되고, 한 번 온 관객이 다시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것. 그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시장 자체가 확장될 수 있습니다.”

예매처는 그대로, 발권만 바꾼다

마스킷이 운영하는 ‘큐리스(QLESS)’는 예매처를 바꾸지 않는다. 예매는 기존대로 두고, 공연 당일 티켓을 발권하는 단계만 교체한다.

이 설계는 현장에서 나왔다. “많은 공연장이 새 시스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예매처를 바꾸는 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존 예매 방식은 그대로 두고 발권과 검표, 데이터 활용부터 연결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관객이 티켓을 받는 자리에서 마케팅 수신 동의를 함께 받는다. 발권 단계에서 장애인·단체·청소년 등 할인 대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모바일 티켓과 지류 티켓을 함께 운영한다. 전용 키오스크를 통한 무인 검표도 지원한다.

모바일 일변도로 가지 않은 것도 시행착오의 결과다. “처음에는 모바일 티켓만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 있었고, 직원들이 안내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관객과 현장 직원에게 부담이 된다면 공연장은 도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두 방식을 병행하자 관객은 익숙한 쪽을 고를 수 있게 됐고, 티켓박스 업무는 오히려 단순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공연장이 다음 공연 홍보에 활용할 수 있다. 예매처를 바꾸거나 담당자가 바뀌어도 데이터는 이어진다. 축적된 관객 정보를 AI가 분석해 메시지를 작성하고, 발송 결과가 다시 데이터로 쌓이는 구조다.

기존 CRM 도구를 먼저 도입하는 접근과는 순서가 다르다. 배 대표는 “넣을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CRM만 들이면 작동하지 않는다”며 “데이터가 생기는 자리가 먼저이고, 공연장이 관객 정보를 만나는 자리는 티켓뿐”이라고 설명했다.

도입 공연장의 관심도 이동한다고 했다. “처음 기대하는 건 모바일 티켓으로 상징되는 선진성입니다. 그런데 운영이 시작되면 관심은 관객 데이터와 CRM 마케팅으로 옮겨갑니다.”

“서로를 모르는 상태를 끝내는 일”

마스킷은 회사의 지향을 ‘공연예술 AX(AI Transformation) 인프라’로 설명한다. 발권 시스템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이 관객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는 의미다.

배 대표는 이를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로 본다. “공연에 AI 기능 하나를 덧붙이는 게 아닙니다. 예매와 발권, 검표, 관람 이후가 디지털로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동의 기반 데이터가 쌓여야 합니다. 그 위에서야 AI가 관객의 관심사를 분석하고, 공연에 맞는 대상을 찾고, 캠페인 반응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5년 뒤의 목표를 묻자 그는 매출 대신 시장의 상태를 말했다. “모바일 티켓이 더 널리 쓰이는 정도의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공급자는 자기 공연을 좋아할 관객이 누구인지 알고, 관객은 좋아할 공연을 제때 발견하는 시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정보가 흐르지 않아 좋은 공연과 좋은 관객이 서로를 만나지 못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제가 꿈꾸는 공연예술 AX는 공급자와 관객이 서로를 모르는 상태를 끝내는 일입니다. 두 주체 사이에 정보와 피드백이 막힘없이 오갈 때, 좋은 공연은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시장도 함께 커집니다.”

수도권과 지방, 대중음악과 순수예술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는 동안, 문제를 무대가 아닌 티켓에서 찾은 시도가 어떤 결과를 만들지 주목된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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