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도 다녀간 호텔 …이곳의 애프터눈티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한다 [류재도의 테마가 있는 다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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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영국의 영화감독이자 배우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이다. 호텔에는 채플린이 조명한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오늘날까지 호텔 전통으로 이어지는 애프터눈 티 의식이다.
1921년 호텔 투숙 당시에 가든 파티와 애프터눈 티 의식 속에서 수집한 영국 식민지 상류층의 인간 군상을 바탕으로, 단편 소설 '파티에 가기 전'을 썼다.
체면을 위한 연극에 가까웠던 과거의 비극이 빠진다면, 오늘날 래플스 호텔에서 소비되는 애프터눈 티는 희극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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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영국의 영화감독이자 배우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이다. 사회를 향한 해학적인 풍자로 웃음을 선사하며 유명세를 떨친 채플린은, 1930년대에 아시아 그랜드 투어 길에 오른다. 1932년 싱가포르 지역 팬들의 환대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유서 깊은 래플스 호텔이었다. 호텔에는 채플린이 조명한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오늘날까지 호텔 전통으로 이어지는 애프터눈 티 의식이다.

래플스 호텔은 채플린을 비롯한 수많은 거장들이 다녀간 곳으로 유명하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대문호인 '서머싯 몸'은 “래플스 호텔은 신비로운 동양의 전설을 모두 담고 있다."라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채플린 못지않은 풍자의 대가다. 1921년 호텔 투숙 당시에 가든 파티와 애프터눈 티 의식 속에서 수집한 영국 식민지 상류층의 인간 군상을 바탕으로, 단편 소설 '파티에 가기 전'을 썼다. 사회적 평판을 잃는 게 두려운 한 가족의 이야기. 끔찍한 사건의 진실을 덮고 태연하게 가든 파티에 가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애프터눈 티라는 우아한 사교 문화 뒤에 숨은 인간의 모순적인 이면을 뾰족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신흥 부유층을 등장시켰다. 기존 상류층들은 속내를 숨기고 세련된 가식을 유지하는 예법을 정교화 하면서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썼다. 애프터눈 티 의식이 상류층의 신분증명 도구로 활용됐던 이유다. 체면을 위한 연극에 가까웠던 과거의 비극이 빠진다면, 오늘날 래플스 호텔에서 소비되는 애프터눈 티는 희극이 될 수 있을까.
애프터눈 티의 우아함은 여유로운 자세로부터 나온다. 배를 채우는 것보다 교양을 뽐내는 사교활동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랜드 로비에서 서빙되는 애프터눈 티는 오후 12시 30분부터 5시 30분 사이 사전 예약이 필요한데, 외부인 출입 금지인 호텔 입구 레드 카펫 통과 의례로 캐주얼 시크 드레스 코드가 요구된다. 덥고 습한 싱가포르 날씨를 포용할 수 있는 신사 숙녀 옷차림을 갖추고, 주인공처럼 천천히 무대로 입장해 보자.

반짝거리는 그랜드 로비 샹들리에와 하프 연주의 감미로운 선율이 듀엣을 이루는 동안 눈과 귀가 먼저 매료된다. 자리로 안내를 받으면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이 기본. 테이블에는 래플스 로고 자수가 들어간 냅킨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리넨의 사각사각하고 뽀송한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냅킨을 펼친 후, 얌전히 무릎 위에 올린다. 테이블 위로 'JING Tea'의 잎차 시향 샘플러가 등장하는데, 단일 다원에서 전통 재배 방식을 고집하는 최고급 티 브랜드다. 홍차, 녹차, 허브차 10종의 선택지에 녹아든 장인의 숨결이 코끝으로 스며든다.

클래식한 '실론 브렉퍼스트' 홍차를 고른 후, 모래시계 타이머와 홍차 빛깔이 번지는 투명 티포트를 번갈아 보는 동안 침이 고인다. 새하얀 찻잔에서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홍차 속에 우유와 설탕을 더하면, 보름달이 차오르는 듯한 색감으로 물든다. 실버 티스푼을 들어 찻잔과 부딪치기 않게 위아래로 섬세하게 저어주면 밀크티가 완성된다.
티스푼은 빙글빙글 돌리거나 입에 대지 않고, 티컵 뒤 컵 받침 위에 수평으로 놓는다. 검지를 티컵 손잡이 안으로 걸지 않은 채로, 다섯 손가락을 모아서 티컵을 살포시 들어 올린다. 후루룩 소리 내지 않는 조신한 첫 모금 후에 눈을 감아본다. 진한 향기와 다르게 가볍고 부드러운 풍미로 인해 팔레트가 스르르 열리는 느낌이다. 시트러스를 품은 청량한 마무리가 텁텁하지 않아서, 다음 잔은 우유와 설탕을 빼고 싶어진다.

오감이 모두 열린 상태에서 카나페와 디저트로 구성된 삼단 트레이가 서빙되고, 별도의 접시에 핑거 샌드위치가 나온다. 오이 딜, 캐비아 연어, 에그 아보카도 샌드위치 3종이 직사각형 접시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먹는 순서는 핑거 샌드위치부터인데, 핑거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먹으라는 것이기 때문에 실버웨어는 쓰지 않는다.
매너 있게 다른 사람에게 먼저 권한 다음, 내가 먹고 싶은 샌드위치를 덜어서 개인 접시로 옮긴다. 다시 샌드위치를 들어서 한입 베어 물때, 대화의 흐름에 방해될 정도로 입안이 가득 차면 안 된다. 샌드위치 가장자리를 매끈하게 썰어놓는 이유 또한, 깔끔하게 떨어지는 한입으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스콘은 플레인과 건포도 두 종류가 있고, 최상의 따뜻함을 위해서 서버 트레이에서 개인 접시로 직접 서빙해 준다. 클로티드 크림과 잼도 함께 서빙된다. 장미 꽃잎을 더한 로즈 스트로베리 잼의 화사한 맛이 일품인데, 호텔 주방에서 천연 성분으로 직접 만든 무설탕 잼이라고 한다. 스콘을 먹는 방법도 따로 있다. 먼저 두 손으로 위아래를 잡아서 반쪽으로 가르는데, 이때 나이프는 쓰지 않는다. 스콘의 갈라진 표면에 크림과 잼을 바를 때 나이프를 쓴다. 스푼으로 크림과 잼을 개인 접시에 소량으로 먼저 옮긴 다음 나이프를 드는 것이 매너.

크림과 잼을 바르는 순서에 대한 뜨거운 논쟁거리가 있다. 유제품 강국 영국의 대표적인 클로티드 크림 생산지로, 내륙의 '데번'과 해안가 '콘월' 스타일이 양대 산맥으로 나뉜다. 래플스 호텔은 데번 크림을 쓰는데, 크림을 먼저 바른 후에 잼을 올리는 것이 정석이다. 반대로 콘월 스타일은 잼을 먼저 바른 후에 크림을 주인공으로 올리는데, 염분과 미네랄이 풍부한 크림의 크러스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란다.
싱가포르의 고온다습한 환경 때문에 스콘이 눅눅해지는 단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 데번 크림이다. 스콘 표면에 미끈한 데번 크림을 바르면 식감을 유지하는 코팅 효과가 있기 때문. 내륙 목초지 데번 특유의 균등하게 부드러운 크림이 받침이 되고, 그 위에 장미 향 은은한 잼이 올라가면 스콘 꽃송이가 완성된다.
삼단 트레이는 1층에 카나페, 2층과 3층은 화려한 디저트로 구성되었다. 애프터눈 티에 올라오는 먹거리는 매일 아침 '태첸린' 총괄 페이스트리 셰프의 손을 거치며, 디저트류는 시즌에 어울리게 재해석된다고 한다. 쇼콜라티에 기본기를 바탕으로 열대지역 식재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디저트 거장의 맛은 남다르다. 지역의 특색 있는 시트러스 품종들을 디저트 레이어에 입혀서 입체적인 미각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특히 살구 같은 제철 과일로 빚어내는 상큼한 타르트 종류를 통해서 셰프의 철학을 맛볼 수 있다.

삼단 트레이의 먹는 순서는 아래부터 위로 올라간다. 접시를 트레이에서 먼저 꺼낸 다음, 다른 사람에게 내밀어서 권한다. 그다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개인 접시로 옮기면 된다. 한 손으로 먹을 수 있는 카나페나 디저트는 손으로, 한입으로 깔끔하게 먹기 어려운 것들은 실버웨어를 써서 요염하게 먹는다. 포크의 날은 항상 아래를 향하도록 하자. 3층 디저트까지 먹다 보면 삼단 트레이 상단을 가리고 있는 반원 덮개의 용도가 궁금해진다. 알고 보니 이 덮개는 역사적인 고증에 대한 스토리텔링 도구라는 사실. 과거 가든 파티에서 애프터눈 티가 서빙될 때, 새들이 음식을 조아 먹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한 장치라고 한다.

만약 서머싯 몸이 오늘날 래플스 호텔의 애프터눈 티 의식을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체면 차리기용 의식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포장된 교양을 과시하려는 인간 본능은 그대로라며 웃음 지을 것 같다. 동시에 생존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도 잠시 주인공이 되어보는 영리한 탈출구가 아닐까 하며 공감할지도 모른다. 치열한 인간극장 속 비극과 희극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에티켓'이라는 보여주기식 가면만 쓰는 것보다, 절제와 배려를 몸소 경험해 보겠다는 내면을 다진다면, 래플스 애프터눈 티 의식이 온전한 희극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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