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팝업스토어, 무엇을 팔고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아르떼 2026. 9. 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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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소정의 무대 밖 뮤지컬
무대 밖으로 확장된 서사,
관객의 몰입을 설계하는 법

뮤지컬 팝업스토어(pop-up store) 앞에 늘어선 줄은 매진이라는 숫자로 기사화되곤 한다. 예약 오픈 즉시 마감되고, 하루 만에 수백에서 수천 명이 다녀간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경험하게 하며, 그 경험을 어떻게 작품과의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나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뮤지컬 팝업스토어는 다른 브랜드의 팝업스토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뷰티나 패션 팝업스토어는 그 자리에서 제품을 만지고, 착용하고, 구매까지 완결할 수 있다.

하지만 팝업스토어에서 공연을 실제로 관람할 수는 없다. 뮤지컬 티켓 가격이 상당한 비용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팝업스토어에서의 경험이 곧바로 티켓 구매로 전환되기는 가격과 심리적 장벽을 고려할 때 쉽지 않다.

그렇기에 뮤지컬 팝업스토어를 소매업 팝업스토어와 같은 전환율의 논리로만 평가하면 정작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이미 티켓을 구매한 관객에게 또 한 장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본 공연을 왜 다시 기억하고 싶어 하는지, 아직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엇이 관람의 동기로 작동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뮤지컬 팝업스토어가 팔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관객이 뮤지컬을 보는 이유로 흔히 꼽히는 것은 무대 위 인물에게서 얻는 공감과 위로다. 이때의 공감은 단순히 인물을 좋아하거나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관객이 잠시 그 인물의 관점을 취하고, 그가 처한 상황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동일시(identification)’에 가깝다. 그리고 음악과 무대, 연기와 서사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관객은 현실의 공간에서 벗어나 작품 속 세계로 옮겨간 듯한 ‘서사적 몰입(narrative transportation)’을 경험한다. 동일시는 이 몰입 속에서, 특정 인물의 감정과 관점을 따라가게 될 때 일어난다.

이 두 개념을 팝업스토어에 적용하면 뮤지컬 팝업스토어가 가진 가능성이 선명해진다. 이미 작품을 아는 관객에게는 극장에서 감각했던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 있고, 작품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그 세계로 처음 들어가는 입구가 될 수 있다. 팬에게는 기억의 재활성화이고, 잠재 관객에게는 서사로의 진입이다.

뮤지컬 <마리 퀴리> 팝업스토어 전경. / 사진. Ⓒ 라이브 공식 인스타그램(@livecorp2011)

국내 뮤지컬 팝업스토어는 2023년 성수동에서 문을 연 <마리 퀴리>를 시작으로 <알라딘>(국내 첫 백화점 내 뮤지컬 팝업스토어), <겨울왕국>, <헬스키친> 등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해외에서도 흐름은 비슷하다. 디즈니는 2019년 런던 코벤트가든에 <라이온 킹>, <알라딘>, <겨울왕국>, <메리 포핀스>를 한데 모은 팝업스토어를 열고 VR 체험과 배우들의 라이브 공연까지 마련했다.

<위키드>는 영화 개봉을 전후로 뉴욕 웨스트빌리지의 타운하우스를 작품의 세계와 상품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꾸민 ‘Wicked at Home’을 선보이기도 했다. 공간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상품을 결합해 팬에게는 오즈의 세계를 다시 접하게 하고,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그 세계에 들어갈 계기를 제공한 사례다.

뮤지컬 영화 <위키드: 포 굿> 팝업스토어. /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공식 인스타그램(@universalpictureskre)
뮤지컬 영화 <위키드: 포 굿> 팝업스토어. / 사진. Ⓒ 라이브

국내외 사례를 함께 놓고 보면 뮤지컬 팝업스토어는 단순한 임시 매장이 아니라, 공연장이라는 장소적 경계를 넘어 작품을 일상 속으로 끌어내는 접점이다. 특히 최근 국내에서는 뮤지컬 팝업스토어가 하나의 홍보 방식을 넘어 하나의 관객 경험으로 자리 잡을 만큼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제 질문은 팝업스토어를 열 것인가의 단계를 넘어, 활발해진 팝업스토어를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더 체험하게 할 것인가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물론 기존의 팝업스토어에 배치된 포스터와 소품, 포토존처럼 작품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장치만으로도 팬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만남이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고유한 경험까지 확장하려면, 이미지와 함께 서사와 음악을 어떻게 공간 안에 옮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는 <위키드>와 <랭보>의 체험형 프로모션과 같이 공간과 서사, 상품을 함께 설계한 사례들이 참고될 수 있다. 특히 대학로에서 처음 시도되었던 <랭보>의 팝업스토어는 실제 무대 세트와 극 중 넘버, 시를 활용한 체험 등을 선보이며 일주일의 짧은 기간 동안 약 5천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이처럼 뮤지컬 팝업스토어가 포토존과 소품 전시의 형태와 함께 다른 경험의 층위를 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뮤지컬 팝업스토어의 설계는 방문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서 방문객을 ‘어떤 위치에 서게 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는 데서 다시 상상해 볼 수 있다. 가령 공간을 인물별 서사 중심으로 나누고, 각 구역에서 해당 인물의 넘버와 영상 일부를 접하게 한 뒤, 방문객이 자신에게 가장 크게 와닿은 인물 앞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그 인물을 대표하는 소품을 걸치거나 의상의 일부를 입어보고, 무대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재현한 공간에서 그 인물의 넘버가 흐르는 가운데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문객을 실제로 그 인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그 인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관객은 자신의 몸을 그대로 가진 채 잠시 다른 인물의 위치에 서보고, 그 인물이 보았던 세계를 자신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다. ‘캐릭터 되어 보기’의 핵심은 일회적 변신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점의 이동이다. 이는 단순한 코스프레나 포토존과도 구별된다.

극장에서 관객은 객석이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무대 위 인물을 바라보지만, 팝업스토어에서는 그 위치를 아주 잠시 바꿀 수 있다. 이머시브 공연처럼 형식 자체를 전환한다는 뜻이 아니라, 관객에게 작품의 공간 안에서 특정한 위치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 경험은 작품을 이미 본 관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직 작품을 모르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다. 포스터만 보고 작품의 매력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만, 어떤 인물의 선택 앞에 직접 서보고 그가 부르는 넘버를 듣는 순간에는 이야기에 들어갈 작은 틈이 생긴다.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도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팝업스토어는 이미 작품의 프롤로그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뮤지컬 <헬스키친> 팝업스토어 전경. (사진은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 사진. Ⓒ김소정

공간의 안쪽만큼이나 바깥도 다시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팝업스토어가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있다는 것은 원래 이 작품을 몰랐던 사람과 우연히 마주칠 기회이기도 하다. 팝업스토어의 입구는 예약한 관객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고 그가 작품의 세계에 들어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뮤지컬의 핵심 요소인 음악은 그 우연을 만드는 손쉬운 도구가 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 거리에 캐럴이 흘러나오면 지나가던 사람도 잠시 발걸음을 늦추는 것처럼, 팝업스토어 외부에 넘버가 흘러나온다면 지나가던 이의 귀에 그 노래가 잠시 머무를 수 있다.

물론 공연장 밖에서의 음악 사용에는 저작권 및 공연권 관련 절차가 따르는 만큼, 실행에 앞서 별도의 법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다. 다만 방향성 자체는 짚어볼 만하다. 한 번 귀에 걸린 멜로디는 작품을 기억하게 하는 단서가 될 뿐 아니라, 언젠가 다시 듣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뮤지컬 팝업스토어는 두 종류의 관객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이미 작품을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내가 좋아했던 것을 다시 만나는 경험’을 제공하고, 아직 작품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이 작품을 한 번 더 알고 싶게 만드는 기회’를 추가적으로 기대하게 할 수 있다. 두 경험은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이 가진 세계와 서사를 얼마나 깊고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하느냐에 함께 달려 있다.

뮤지컬 팝업스토어가 정말 극장 밖 확장 무대로 기능하려면, 서사의 언어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 설계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도 ‘몇 명이 왔고 몇 장을 팔았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공간을 나서는 방문객이 작품과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맺고 돌아가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가시적인 판매 효과뿐 아니라 당장 수치로 잡히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작품에 대한 애착과 재관람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브랜드 팝업스토어의 핵심은 브랜드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브랜드와 소비자가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게 하는 데 있다. 뮤지컬 팝업스토어 역시 무대 사진과 소품을 늘어놓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방문객이 작품의 윤리적 선택 앞에 서보거나 특정 인물의 시선을 잠시 빌려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경험을 설계할 때 그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팝업스토어는 티켓 판매를 위한 부속 홍보물이 아니라, 작품의 미학과 서사를 독립적으로 해석하는 확장형 프리뷰이자 프롤로그가 될 수 있다. 포토존에 머무를지, 관객이 작품의 세계를 잠시 살아보는 프롤로그가 될 것인지는 결국 이 질문에 얼마나 진지하게 답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관객을 어디에 서게 할 것인가. 앞으로의 뮤지컬 팝업스토어가 고민해야 할 질문은 아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소정 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