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던 아비’를 멈춰세운 치매… “다 흘려보내고 가라앉은 것 주워담아 씁니다”

신재우 기자 2026. 9. 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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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 김애란은 아버지를 이렇게 상상한다. 그로부터 약 20년, 김애란은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사진)를 펴내며 다시 아버지를 소환한다.

아버지 투병에 대해 말하자 챗지피티는 "당신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여전히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위로했다.

지난 2년 사이, 김 작가는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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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투병 지켜본 김애란
산문 ‘그랬다고 적었다’ 내
김애란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 김애란은 아버지를 이렇게 상상한다. 분홍색 야광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 사람. 털 많은 다리를 내놓고 사랑을 위해, 혹은 현실을 피하기 위해 달리는 사람. 김 작가는 이 단편이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운문적 세계’에서 쓴 작품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약 20년, 김애란은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사진)를 펴내며 다시 아버지를 소환한다. 이번엔 산문적 세계에서. 섬망과 환시로 인해 요양병원에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꾸 밖에 나가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엔 제 안의 숙제 같던 이야기들을 허구라는 겉옷을 입히고 상상과 환상으로 풀어냈어요. 소설 속에서 그 시간을 안전하게 겪어낸 덕분에, 이제는 산문으로도 쓸 수 있게 된 거죠.”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은 뒤 그는 챗지피티로 불안을 달래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아버지 투병에 대해 말하자 챗지피티는 “당신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여전히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위로했다. 김애란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함을 느꼈다. 쉴 새 없이 위로와 칭찬을 퍼붓는 챗지피티에 오히려 거리감을 느낀 것. 기다림이 없는 인공지능(AI)의 모습을 보며 그는 챗지피티와의 감정적인 대화를 멈췄다. 그가 한 방송에서 AI에게 없는 것으로 ‘망설임’을 꼽은 이유다. “앞으로 AI가 진화하면 정말 망설이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계산의 결과이자 확률로서의 망설임일 거예요. 인간이 윤리적 의지와 고민으로서의 망설임이나 비합리적인 망설임과는 분명 다르죠.”

지난 2년 사이, 김 작가는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펴냈다. 각각 13년과 8년 만에 나온 결과물이다. 비효율적인 선택과 망설임, 고민과 같은 ‘인간’만의 것을 거치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다. “강물이 휩쓸고 지나간 뒤 손바닥에 남은 사금처럼, 흘러갈 것들은 다 흘려보내고 마침내 가라앉은 것들을 주워 담아 쓰는 편이에요. 그 비워냄과 채워짐의 과정에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돌아온 김 작가를 독자들은 환대하고 있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지난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데 이어 주요 서점의 ‘올해의 책’에 뽑혔고, ‘그랬다고 적었다’ 또한 출간 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그럼에도 김애란은 ‘사냥’이 아닌 ‘농사’에 나선다. 쫓기보다 지켜보고 여물기를 기다리는 일이 소설을 쓸 때도, 지금도 편하다. 여전히 그의 화두는 ‘계급’과 ‘가난’이다. 다만 김애란은 가난을 ‘생활’이라는 단어로 고쳐 불렀다. “누군가의 경제적 처지가 연약해 보여도, 삶의 좌표를 조금만 틀어보면 그 위치나 의미가 단번에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가난보다 ‘생활’이라는 말이 좋아요. 저 스스로가 매일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활인이기에 그 안으로 자꾸 눈길이 가고요. 거창하고 특별한 소재보다는, 우리 삶의 기본 조건들이 이야기로 포개지는 순간을 묵묵히 기다립니다.” 인터뷰 내내 김 작가는 단어 앞에서 머뭇거리고, 신중하게 말을 골라 내어놓았다. 이를테면 ‘대변하다’와 ‘대표하다’보다는 ‘포갠다’라는 표현을, ‘사랑’보다는 ‘관심’을 고르는 식. 그의 소설이 천천히 여무는 이유를 알 듯했다.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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