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 AI 데이터센터, 무엇을 먼저 채울 것인가

제주가 AI 대전환, 이른바 AX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너지와 바이오, 관광, 농업, 우주까지 제주가 강점을 가진 분야에 AI를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 된다. 그 흐름 속에서 AI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GPU 인프라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자연스럽다.
먼저 분명히 해두자. 제주에 AI 데이터센터는 필요하다.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하고, AI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충분한 연산자원과 안정적인 운영환경이 있어야 한다. 필요할 때마다 육지의 클라우드를 빌려 쓴다면 비용도, 시간도, 보안도 발목을 잡힌다.
그래서 제주테크노파크가 도내·외 바이오기업 12곳과 손잡고 추진하는 '제주 AI 데이터센터 파트너십'은 반갑다.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바이오 특화 데이터센터를 짓고, 이를 바이오-AI 융합 생태계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벅찬 연산자원과 보안·운영환경을 공동으로 마련해, 지역 바이오기업의 AI 활용 문턱을 낮추는 기반이다. 이 사업은 계획대로,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
다만 하나를 함께 짚고 싶다. 무대를 세우는 일과, 그 무대 위에 올릴 공연을 준비하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는 무대다. 아무리 근사한 무대를 지어도, 그 위에 올릴 공연이 없으면 관객은 오지 않는다. 그 공연에 해당하는 것이 POC, 곧 개념검증이다. 거대한 사업을 한 번에 완성하는 게 아니라, 실제 데이터로 작은 규모에서 먼저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공연은 무대가 서기도 전에 이미 막이 올랐다. 데이터센터 파트너십에 이름을 올린 유제이플러스가 그 주인공이다. 데이터센터는 아직 없다. 그런데 이 회사는 이미 감귤 원물을 골라내는 일에 AI를 붙였다. 결과는 숫자로 나왔다. 정상 원물 분류 정확도가 70%에서 85%로 올랐다. 불량 원물 검출률은 100%다. 사람 눈으로 하루 종일 골라내던 일을, 기계가 놓치지 않고 해낸 것이다. 무대가 다 지어지기도 전에, 공연 하나가 이미 성공한 셈이다.
에너지 현장은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해 계통을 안정시키고 싶어 한다. 관광 현장은 밀려드는 방문객 데이터로 혼잡을 미리 읽고 싶어 한다. 이런 수요도 유제이플러스처럼 작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성공이 아직 하나의 사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누가, 어떤 데이터로, 어떻게 해냈는지가 다른 현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연히 한 번 잘된 공연으로 끝날지, 매 시즌 새로운 공연을 올리는 극장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를 위해 하나가 먼저 풀려야 한다. 데이터 공유다. 제주에는 관광·교통·농업·환경·에너지·바이오·재난의 데이터가 쌓여 있지만, 기관마다 흩어져 있거나 공개 범위와 조건이 달라 실제 서비스로 이어지지 못한다. 열 수 있는 데이터는 표준화해 개방하고, 민감한 데이터는 안전한 분석 환경에서 다루면 된다. 데이터가 이어져야 PoC가 나오고, PoC가 쌓여야 서비스가 태어나며, 서비스가 자랄 때 데이터센터의 값어치도 함께 커진다.

AI 데이터센터는 목적이 아니라 기반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어떤 데이터를 담고,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공연을 몇 개나 올리느냐다. 제주형 AX의 성패는 데이터센터의 규모로 갈리지 않는다. 무대의 크기가 아니라, 그 위에서 펼쳐질 공연이 제주의 미래를 정한다. / 양인하(경영학 박사, 사단법인 AI융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