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화 "싫어하는 것 마주할 때 비로소 '나'를 알게 됩니다" [책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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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널의 뉴미디어 시대라지만,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존재입니다. 을 통해 각양각색의 도서들을 만들어낸 여러 저자 및 관계자를 직접 만나, 책은 물론 그들의 삶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열정을 쏟는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며, 싫은 감정이나 부정적인 시선은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막연히 손을 놓고 있자니 스스로 늘어질 것 같아 '나에게 매일 수행할 미션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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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다채널의 뉴미디어 시대라지만,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존재입니다. 책은 전문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부터 각 분야 유명인사와 스타들 및 이웃들의 흥미로운 경험들을 기반으로 탄생합니다. [책과 사람]을 통해 각양각색의 도서들을 만들어낸 여러 저자 및 관계자를 직접 만나, 책은 물론 그들의 삶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세상은 언제나 긍정만을 강요한다.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열정을 쏟는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며, 싫은 감정이나 부정적인 시선은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좋아하는 것'만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있는 존재일까.
최근 첫 에세이집 '미안하지만 싫습니다'를 펴낸 정준화 작가는 이 같은 통념에 차분한 물음표를 던진다. 은행원, 남성지와 패션지의 피처 에디터, 렌털 플랫폼 스타트업 창업가라는 다채로운 이력을 거쳐 전업 에세이스트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싫어하는 것들'을 담담하고도 위트 있는 시선으로 응시한다.
냉소와 투덜거림 대신 따뜻한 성찰과 자기 고백이 깃든 그의 글은, 거꾸로 우리가 무엇을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또렷하게 비춰낸다. 서울의 한 호젓한 카페에서 정 작가를 만나 책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삶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은행원부터 잡지사 피처 기자, 플랫폼 스타트업 창업까지 이력이 무척 다채롭다. 첫 책을 펴내며 전업 작가로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스타트업을 작년 상반기에 정리했다. 한바탕 큰 파도를 겪고 나니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고 당장 새로운 사업을 찾을 기력도 없었다. 그렇다고 막연히 손을 놓고 있자니 스스로 늘어질 것 같아 '나에게 매일 수행할 미션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가 당장 혼자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해보니 글쓰기였다. 잡지사를 그만둔 뒤 한동안 글 쓰는 일에서 멀어져 있었지만, 가장 익숙하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작업으로 돌아가 보자는 마음으로 출판사에 기획안을 제안하고 쓰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좋아하는 것을 예찬하는 책이 넘쳐난다. 굳이 '싫어하는 것'을 중심 테마로 잡은 이유가 있는가.
▶스타트업 아이템을 찾을 때처럼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다들 좋아하는 것만 이야기하니까 역발상으로 싫어하는 것에 대해 써보면 색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부정적인 글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했다. 평소 좋아하던 빌 브라이슨이나 움베르토 에코의 칼럼, 닉 혼비의 에세이처럼 온도가 낮으면서도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풀면 부담스럽지 않게 읽힐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책 제목에 '싫습니다'라는 단어가 들어가 주변에서 우려도 있었을 텐데, 본래 제목을 끝까지 고수한 이유는.
▶처음부터 가제로 붙여둔 제목이었다. 마케팅팀에서는 '싫습니다'라는 표현이 너무 강하고 부정적인 인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다른 대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런 반응을 보고 '이게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주제인가' 고민도 했다. 하지만 거창하게 멋을 부리거나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제목은 성격상 낯간지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내 입에 가장 자연스럽게 붙고 책의 알맹이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장이 결국 이 제목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불편이나 싫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글의 바닥에는 오히려 인간적인 온기와 다정함이 짙게 배어 있다.
▶그렇게 읽어 주셨다면 다행이다. 사실 나 자신은 불의나 부당함 앞에서 당당하게 '싫다'고 외치는 용감한 사람이 못 된다. 뒤돌아서서 이불을 차며 혼자 곱씹는 소심한 사람에 가깝다. 누군가를 단죄하거나 계몽하려는 글이 아니라, 왜 이것이 불편한지 그 이면의 기억과 감정을 차근차근 되짚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인 만큼 맹목적인 거부감으로 끝내지 않고 근거와 배경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의 온도가 누그러진 것 같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순간이 있었나.
▶스스로 꽤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한 편 한 편 글을 완성해 갈수록 '내가 생각보다 그렇게 냉소적인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싫어하는 대상을 파고들다 보면 결국에는 내가 진정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 마음 깊이 애틋하게 여기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더라. 미움의 대척점에 있는 다정함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에세이에서 유독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교훈'을 강박적으로 요구하는 한국 특유의 독후감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어릴 적 읽던 안데르센 동화나 고전들을 돌이켜보면 어둡고 잔혹한 인간사의 비극이 가감 없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동화든 소설이든 권선징악이나 확실한 정답, 도덕적 교훈을 인위적으로 쥐여 주려는 경향이 강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영화나 책을 볼 때 '이 작품의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도식적인 결론에 얽매인다. 문학과 예술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다. 굳이 교훈을 얻으려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며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
-집필 기간인 8개월 동안 하루의 일과는 어떠했는지, 글이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극복했나.
▶잡지 기자 시절부터 밤에는 집중을 못 해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썼다. 아침 시간에 집중도가 높아 해가 뜨기 전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다. 한 가지 키워드로 한 편의 글을 밀도 있게 채워야 하다 보니 중간에 완전히 막히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는 억지로 붙들고 있기보다 혼자 걷거나 친구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 환경을 바꿨다. 묵묵히 자리에 앉아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을 꾸준히 밀어 올리는 속도와 성실함이야말로 글 쓰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주변에 글을 쓰고 싶어 하면서도 첫 문장을 떼지 못해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글을 기술적으로 유려하게 쓰려는 부담감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문장이 아무리 화려해도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가 빠져 있으면 울림을 주기 어렵다. 반대로 문장이 투박하거나 서툴더라도 솔직한 자기 이야기가 또렷하게 담긴 글은 반드시 힘을 발휘한다. 문장의 완성도는 퇴고를 거듭하며 다듬어 가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잘 쓰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털어놓고 싶은 나만의 소재를 발견하고 일단 한 줄을 시작하는 용기다.
-'미안하지만 싫습니다'가 독자들의 손에 닿아 어떤 울림으로 남기를 바라는가.
▶우선은 가볍고 유쾌하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뒤 한 번쯤 자신이 무심코 지나쳤던 싫음의 감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스스로 긍정적인 면모만 인정하려 들면 진짜 자신과 마주하기 어렵다. 내 안의 못난 구석이나 부정적인 감정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온전한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싫어하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자기 자신을 향한 더 깊고 단단한 이해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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