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의 눈으로 본 전체주의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6. 9. 9.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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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세르주 지음, 조재룡 옮김, 빛소굴 펴냄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파멸한다." 러시아 차르 체제에 저항한 아버지는 망명객이었다.

원은지 지음, 돌고래 펴냄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텔레그램 N번방을 추적하고 최초로 보도한 기자 원은지가 지난 6년 동안의 기록을 묶어 책을 냈다.

노승욱·박섭형 지음, 산책 펴냄 "저는 이 '오래된 곳'이 가진 힘을 믿었습니다." 58분.

홍성후 지음, 이데아 펴냄 "사회주의의 예술은 혁명의 변증법을 반복하지 못하고 신화를 재생산하는 체제로 존재한다." 쫄딱 망해버린 체제의 예술을 재소환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오늘날의 미술사는 냉전의 승자인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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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툴라예프 사건

빅토르 세르주 지음, 조재룡 옮김, 빛소굴 펴냄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파멸한다.”

러시아 차르 체제에 저항한 아버지는 망명객이었다. 부친처럼 저자 또한 망명객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일찍이 아나키즘 운동에 투신했고, 볼셰비키에 합류해 혁명의 심장부에서 언론인이자 편집자, 번역가로 일했다. 그러다 스탈린 독재에 맞서 두 차례 투옥되고 유배당했다. 유럽 지식인들의 국제적 석방 운동으로 옛 소련을 떠날 수 있었으나 나치의 박해를 피해 거처를 옮겨야 했다. 멕시코에 정착해 완성한 정치소설이 이 작품이다. 한 고위 관료의 죽음을 발단으로 대숙청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수많은 인간 군상을 교차시킨다. 전체주의의 공포를 내부자 시선으로 증언한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수전 손태그가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출간되었다.

 

불꽃이 꺼지지 않게

원은지 지음, 돌고래 펴냄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텔레그램 N번방을 추적하고 최초로 보도한 기자 원은지가 지난 6년 동안의 기록을 묶어 책을 냈다. “돌이켜보면 나를 이 자리에 데려다놓은 건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지만 피해자들의 메시지를 받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전국의 경찰서와 재판정에 가고, 때로는 직접 위장 수사까지 하며 그 모든 순간을 꼼꼼히 기록해두었다가 세상에 알리는 일이 ‘사명감’이 아니라면 할 수 있었던 일일까. 그는 한사코 그 모든 공로를 ‘연대자’들에게 돌린다.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도 당신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듣겠다”라고. 이 책은 원은지와 연대자들의 기록이다.

 

우리 동네에 선량한 노동자가 산다

이영주 지음, 교육공동체벗 펴냄

“저 사람들은 ‘선량한 소비자’예요. 당신들은 노동조합이고.”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영주는 ‘부지런히 상상하는 사람’이자 ‘불온한 사람’이고, ‘최저임금 1만원 사회적 총파업’을 만든 전략가이자 ‘일제고사 거부 체험학습’의 기획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노동자’다. 2015년 민중총궐기로 해직된 교육노동자 이영주가 가족과 교육, 노동운동에 대해 쓴 짧은 글을 모았다. 아주 일상적인 단상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정면으로 담아낸다. 그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과 문제들은 결국 가정과 학교에서 시작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지금 겪는 어려움이, 수학 문제 풀이와 맞춤법은 배워도 사람에 대해선 배우지 않은 결과라는 진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노동운동가이면서 엄마이고 학부모이자 시민인, 우리 동네 ‘선량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춘천 카페 기행

노승욱·박섭형 지음, 산책 펴냄

“저는 이 ‘오래된 곳’이 가진 힘을 믿었습니다.”

58분. 서울 청량리역에서 강원 춘천역까지 ITX를 타면 걸리는 시간이다. 채 한 시간이 안 걸린다. 춘천은 데이터센터 같은 최신 기술과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의 낮은 집이 이웃한 인구 28만명의 ‘가까운’ 도시다. 외지인인 내게 춘천의 특산물을 묻는다면 ‘안개’라고 답하고 싶다. 춘천 사람들이 꼽는 춘천의 자랑은 뭘까? 국문학자 노승욱과 공학자 박섭형이 어린이, 물, 낭만, 지성, 문화까지 다섯 가지 키워드를 주제 삼아 춘천 카페 14곳을 두루 살폈다. 단순히 가볼 만한 카페를 추천하는 책은 아니다. 카페는 집과 일터 사이의 공간으로 ‘도시의 거실’ 역할을 한다. 우리가 몰랐던 춘천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앉은 자리에서도 여행을 가능케 하는 책의 장점을 실감하게 된다. AI 시대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야 할지에 대한 통찰을 얻는 건 덤이다.

 

붉은 미술

홍성후 지음, 이데아 펴냄

“사회주의의 예술은 혁명의 변증법을 반복하지 못하고 신화를 재생산하는 체제로 존재한다.”

쫄딱 망해버린 체제의 예술을 재소환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오늘날의 미술사는 냉전의 승자인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그 덕분에 사회주의 진영의 미술은 ‘오직 당과 계급, 프롤레타리아만을 대상으로 한 프로파간다에 머물렀다는 비판’으로만 납작하게 이해된다. 저자는 그 인식에 의문을 던진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시대 정세와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정되었으며,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형식과 해석을 포함하는 유동적인 체계였다고. 이는 실패한 체제를 변호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책은 20세기 중반의 예술이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 그 미학이 정치적·윤리적 요구와 어떤 긴장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성취이자 한계 사례로 바라보고자 한다.

 

포용금융

김용기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포용금융은 위험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금융이다.”

‘포용금융’은, 이 용어에 ‘포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퍼주기 금융 아니냐’는 오해에 시달려왔다. 저자는 “포용금융은 선의로 저렴하게 빌려주는 착한 금융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반박한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금융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낡은 신용평가 시스템에 대한 고집이다. 정규직 중심의 기존 평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경력 단절 복귀자, 금융 이력이 짧은 청년, 담보가 없는 소상공인 등 새로운 경제주체들은 은행에서 제대로 된 신용평가도 받지 못한 채 고금리 사금융 등으로 밀려나고 만다. 저자는 소득과 매출의 현금흐름, 계좌 입출금과 플랫폼 거래 등 기존 신용평가에서 충분히 참고되지 못하는 정보들을 활용해 더욱 정교하고 관리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자고 역설한다. 포용성과 건전성을 함께 달성하기 위한 금융의 판단 기준과 실행 구조를 새로 설계하자는 것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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