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금전신탁은 마법 그릇? 은행 맘대로 담아 팔다 ‘금 간’ 신뢰[경제밥도둑]

서대웅 기자 2026. 9. 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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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고객 맞춤형 신탁이지만
사실상 모범답안지 담은 기획상품
은행서 ETF 가입땐 ‘수수료 2배’
불완전 판매 막을 모범규준 필요성
특금신탁 활용해 사실상 펀드 운용
신탁 취지 살릴 규제안 마련 필요
연합뉴스

‘마법의 우산’ ‘마법의 그릇’.

금융회사에 돈(금전)을 맡겨 운용을 지시하는 ‘특정금전신탁’을 놓고 금융권에서 나오는 말이다. 금융회사가 쉽사리 내놓지 못하는 상품을 특정금전신탁이란 ‘그릇’에 담으면 판매 못 할 게 없다는 의미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은행권의 ‘상장지수펀드(ETF) 신탁’ 판매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특정금전신탁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불완전 판매가 은행권의 특정금전신탁에서 잇따라 발생하다 보니, 은행권의 특정금전신탁 운용 실태 전반을 살피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라임펀드 등도 특정금전신탁 형태였다.

맞춤형 신탁 아닌 기획된 상품, 특정금전신탁

신탁은 본래 ‘고객 맞춤형’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위탁자(자산을 맡기는 사람)인 고객이 수탁자(은행 등 신탁회사)인 금융회사에 재산권을 넘기면 금융회사는 고객의 지시대로 수탁받은 자산을 운용 및 관리해야 해서다. 이때 금융회사는 고객이 어떤 자산을 맡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용하라고 지시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맞춤형 상품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은행권의 특정금전신탁은 사실상 ‘기획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특정금전신탁이란 고객이 금전(돈)에 대한 운용 지시를 금융회사에 특정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은행권이 운용 자산과 운용 방법을 미리 기획해 상품으로 내놓으면 고객이 가입한다. 표면적으론 계약 단계에선 고객이 투자 금액과 목표 수익률 등을 정해 고객이 정하는 형태로 계약서를 작성하지만, ‘모범 답안지’가 주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은 중장년층이 많은데, 이들을 대상으로 직·간접적으로 고위험 상품 권유가 이뤄지면서다. 실제로 2020년 무렵부터 발생한 대규모 불완전 판매 사태는 대부분 은행권이 판매한 특정금전신탁에서 발생했다.

최근 논란이 된 은행권의 ETF신탁을 두고도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제기된다.

은행들은 증권사에서도 살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특정금전신탁에 담아 판매했다. 주로 1~5% 수익을 얻으면 중도해지되는 형태로 팔았고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먼저 1% 수수료를 떼어갔다. 같은 상품을 증권사에서 사면 수수료는 절반에 불과하다. 은행권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판매한 ETF신탁 규모는 66조원에 달했고, 이중 64조원이 주요 6개 은행에서 판매됐다.

은행들은 수수료 논란이 일자 증권사 애플리케이션(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사용하지 못하는 중장년 고객을 위주로 ETF신탁에 대한 수요가 몰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MTS도 사용하지 못하는 고객이 은행을 찾아 ETF신탁을 먼저 문의했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은행권 내에서조차 다른 상품을 판매하며 가입을 유도하는 ‘꺾기’가 행해진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 입장에선 고위험 상품일수록 신탁보수가 높고, 지점은 고객의 장기 수익 제고 관점보다 본점이 내린 할당 목표를 채우려는 경향이 강해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개연성이 생긴다”며 “모범규준을 지금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4년 2월15일 홍콩H지수ELS피해자모임과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금융당국 대상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4.2.15. 김창길기자
은행들, 사모펀드도 특정금전신탁에 담아 팔아

금감원은 높은 수수료율과 고객 설명 의무를 다했는지 점검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은행권의 특정금전신탁 운영 행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은 공모펀드를 운용하지 못하는데, 특정금전신탁 제도를 활용해 사실상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금전신탁은 공모펀드보다 규제가 덜하다. 자본시장법은 공모펀드는 동일 법인이 발행한 증권에 펀드 자산의 10%를 초과해 투자할 수 없고(81조), 50인 이상에게 청약을 권유하고 증권신고서도 제출(119조)해야 하며, 매일 펀드 자산을 시가로 평가(238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운용보수도 표준 집합투자규약에 따라 적용(102조)된다. 반면 특정금전신탁은 이러한 규제가 모두 적용되지 않는다.

특정금전신탁에 이같은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고객 맞춤형으로 설계해 일대일 자산 관리를 하라는 취지다. 이 때문에 특정금전신탁은 부실자산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산을 담아 운용할 수 있다. 규제가 느슨한 특정금전신탁이 가장 강한 규제를 받는 은행권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셈이다.

금융위도 제도 개선을 검토했으나 재량을 둬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돼 물러선 바 있다. 금융위는 2013년 4월 ‘특정금전신탁 운용 현황 및 정책방향’을 통해 “일대일 맞춤형 자산관리라는 신탁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종합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특정금전신탁의 최소 가입금액 설정, 계약기간 장기화 유도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가 과잉 규제라고 제동을 걸고 업계도 강하게 반발하며 무산됐다.

2022년 10월엔 금융감독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금융감독연구’(제9권)에 특정금전신탁 제도 개선 필요성을 담은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당시 기고글에서 김원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현재 실무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특정금전신탁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상임금융위원을 지낸 김용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일 통화에서 “판례로 불특정금전신탁을 불허한 이후 은행들은 특정금전신탁 판매를 늘려왔다”며 “표면상 고객이 지정한 자산을 넣어 운용하는 형태지만, 펀드보다 완화된 규제로 사실상 펀드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대웅 기자 sdw61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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