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윗에게 미술이란… 손기술이 아닌 아이디어 집합체

김민 기자 2026. 9. 9.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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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미술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바빠지는 건 '눈'이다. 하지만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1일 개막한 기획전 '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Sol LeWitt: Open Structure)'에선 다른 감각과 마주한다.

"개념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다. 예술가가 개념적인 작품을 만들 때 모든 계획은 사전에 결정되며 그것을 제작하는 건 형식적인 일에 불과하다. 예술을 만드는 건 아이디어다."

이 말처럼 르윗에게 미술은 작가의 손기술을 자랑하는 매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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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개념미술 선구자 르윗 기획전
“관람객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바빠지는 건 눈이 아니라 머리”
솔 르윗의 작품 ‘월 드로잉 #882B 선들의 띠’를 제작하는 모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일반적으로 미술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바빠지는 건 ‘눈’이다. 화려한 색채의 조화, 작가의 현란한 붓 터치, 감정을 흔드는 압도적인 비주얼을 기대하며 작품 앞에 선다. 하지만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1일 개막한 기획전 ‘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Sol LeWitt: Open Structure)’에선 다른 감각과 마주한다.

솔 르윗(1928∼2007) 작품을 대규모로 선보이는 이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먼저 ‘차가운’ 도형을 만난다. 한 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는 정육면체 구조물과 벽면을 빼곡히 채운 질서정연한 선과 격자들은 관람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눈으로 보지 말고, 머리로 생각하며 따라오세요.’

미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르윗은 1967년 에세이에서 유명한 선언을 남겼다. “개념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다. 예술가가 개념적인 작품을 만들 때 모든 계획은 사전에 결정되며 그것을 제작하는 건 형식적인 일에 불과하다. 예술을 만드는 건 아이디어다.”

이 말처럼 르윗에게 미술은 작가의 손기술을 자랑하는 매체가 아니다. 그보다 작품의 뼈대가 되는 ‘아이디어’가 전면에 나선다. 작가는 작품을 직접 그리는 게 아니라, 아주 자세한 ‘지시문’을 남겼다. 이를테면 ‘92인치 검정 테두리의 정사각형과 72인치 빨강 선이 있는 드로잉’ 같은 언어로 된 문장이다.

전시가 잡히면 현장 제작자들은 이 지시문을 토대로 마치 연주자가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해내듯 공간에 맞게 작품을 그려낸다.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대형 ‘월 드로잉’ 13점을 미술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솔 르윗 재단 관계자와 국내 미술 실기 전공자 23명으로 구성된 ‘APMA MAKERS’가 미술관 벽에 선과 색을 쌓아 올리며 완성했다.

검정 벽에 흰 크레용을 써서 만든 ‘월 드로잉 #786A 꼭짓점과 변에서 시작되는 두 가지 원호의 조합’(1995년), ‘월 드로잉 #396 A-D 인디아 잉크와…’(1983년) 등 잉크와 연필, 컬러 잉크 워시 등 여러 가지 재료와 형태로 구성된 월 드로잉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마커로 그린 작품 ‘월 드로잉 #869A’는 한 사람이 직선이 아닌 비정형의 선을 자유롭게 그리면 다른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따라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 모두가 처음 그린 선을 따라 그리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선의 형태가 다르게 변한다. 이 모습을 보며 관객은 같은 문장이라도 시간과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현상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르윗을 비롯한 미국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이처럼 언어학과 구조주의에 관심을 가져 왔다. 작품 형태가 아닌 그 의미가 결정되는 상황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런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나 판화, 사진집도 함께 전시된다. ‘자서전’은 르윗이 자기 아파트에 있는 모든 물건을 촬영한 흑백 사진 1000여 장을 격자무늬에 맞춰 배열한 사진집이다.

지도나 사진, 종이를 자르고 접어서 만든 ‘R드로잉’도 만날 수 있다. ‘버킹엄 궁전…을 지워낸 런던 지도(R715)’는 런던 지도 기성품에서 제목에 적힌 다섯 장소를 선으로 잇고 그 안을 잘라낸 작품. 르윗은 이 연작을 100달러(약 13만4500 원)가 넘지 않는 가격에 판매되도록 해 ‘100달러 드로잉’이란 별명도 붙었다. 작품이 유통되는 방식에도 규칙을 적용하려는 시도였는데, 지금은 100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미술관은 전시 개막 뒤 관객이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내년 2월 2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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