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분석해줬는데 담당 판사가 편향적 재판부 바꿔주세요”

김나영 기자 2026. 9. 9. 00: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초동 25시]
몰래 녹음 후 ‘기피 신청’ 늘어
서울중앙지법 /뉴시스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사 소송 중인 A씨는 최근 “담당 재판부가 편향적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며 법관 기피 신청을 냈다. A씨가 낸 기피 신청서엔 재판장의 소송 지휘 방식에 대해 인공지능(AI)이 평가한 결과가 들어가 있었다. ‘원고의 주장에 호응한 횟수는 15회인데, 피고에게 호응한 횟수는 3회뿐이었다’ ‘한쪽 당사자에게 유독 공격적인 질문을 하거나 말을 자주 끊는다’ 등 내용이었다. 재판 상황을 녹음한 뒤, 이를 AI에 분석해달라고 맡긴 것이다.

판사의 편향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 판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법정 재판 내용을 녹음하려면 재판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몰래 녹음하다가 적발되면, 감치에 처해지거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사건 관계인들이 재판부 허가 없이 녹음하는 것은 물론, AI에 판사 성향까지 물어 이를 소송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중앙지법 판사는 “녹음 신청이 들어오면 웬만해선 다 받아주는데도 신청 없이 녹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몰래 녹음하면서 재판장에게서 특정한 반응이나 발언을 이끌어내려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다른 판사도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더라도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적잖고 호의적으로 보여도 불리한 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AI가 언뜻 객관적 수치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여도, 재판장의 단편적인 태도만으로 기피 신청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가 법정에서 몰래 녹음하는 행위를 잡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한 법원 보안관리대 경위는 “요즘은 스마트워치 등으로 녹음할 때가 잦아 방청객이나 변호인이 녹음 중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며 “의심스럽지만 확신은 서지 않은 상황에서 괜히 말을 꺼냈다가 재판 흐름을 깰 수 있어 제지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법관 기피 신청은 느는 추세다. 지방법원 민사 사건에서 기피(제척·회피 포함) 신청 건수는 2022년 657건에서 2023년 714건, 2024년 739건으로 늘어났고 지난해 716건을 기록했다. 지방법원 형사 사건에서도 같은 기간 282건에서 370건, 405건, 416건 등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법관 기피 신청이 인용되는 것은 1년에 1~2건에 불과하다. 소송 지연 등 의도를 갖고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셈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