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오래되고 익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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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학교를 오가며 강의하다 보면 강의실 형태가 의외로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상만 줄줄이 놓인 강의실이 뭐 그리 다를까 싶지만 크기와 구조, 기재와 출입문에 이르기까지 같은 것이 거의 없다.
모든 강의실에 칠판이 있는 건 아니고 문과대학 중에서도 일부만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어쩐지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는데, 강의실에는 전자 교탁과 스크린이 오래전부터 쓰이고 있어 전자칠판의 용도는 그야말로 칠판을 대체하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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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학교는 아직 분필을 쓰는 군요! 처음 칠판을 마주했을 때 나는 거의 호들갑을 피우며 분필을 이리저리 그어보았다. 고교 시절 이후로 거의 처음 만져보는 분필이었다. 나는 강의 도중 글자들을 괜히 칠판에 써넣거나 낙서하듯 몇 개의 선을 덧그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손에 힘을 주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밀도와 칠판에 닿는 면적에 따라 불규칙하게 달라지는 선의 굵기 같은 게 전부 다 매력적이었다. 나는 분필을 실컷 쓴 뒤 손에 묻은 분필가루가 내 셔츠나 바지에 남기는 흰 지문 자국까지 전부 다 좋아했다.
2학기가 시작되어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낯선 기재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전자펜이 부착되어 있는 이동식 전자칠판이었다. 나는 어쩐지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는데, 강의실에는 전자 교탁과 스크린이 오래전부터 쓰이고 있어 전자칠판의 용도는 그야말로 칠판을 대체하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분필과 지우개 등등이 소모품인 걸 생각하면 전자칠판이 편의와 실리면에서 우월하겠으나 어쩐지 나는 추억이 남아 있는 마지막 물건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새하얗고 깨끗한 화면에 그어지는 선들은 선명하고 또렷했다. 전자펜은 매끈하게 써졌지만 분필처럼 자유롭거나 변화무쌍하지 않았다. 어떤 각도로 쓰든 단정하고 일관된, 약속된 만큼의 선을 내보일 뿐이었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지루하기도 했다. 나는 슬그머니 분필칠판으로 옮겨가 판서를 이어갔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오래되고 익숙한 것이 좋은 걸 보니 나도 어엿한 늙크크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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