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마크롱 정상회담.. '파병 카드' 꺼내나
AI·우주·원전 협력…첨단산업 동맹 구체화 주목
파병 장병 안전부터 국민 부담까지 풀어야 할 과제
한·프 기업 20곳 회동…기술 협력 성과로 이어질지 관심

안보 현안인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 문제와 함께 인공지능(AI), 우주, 원자력, 바이오 등 미래산업 협력이 주요 의제로 거론되면서 양국 정상의 논의 결과가 향후 외교·경제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현지시간 8일 파리 개선문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한국전쟁 참전 기념 동판에도 헌화한 뒤 참전용사들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후 엘리제궁으로 이동해 마크롱 대통령과 단독 오찬을 가진 뒤 양국 대표단이 참석하는 확대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가장 큰 관심사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해협의 안전한 항행 확보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한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해상 운송망의 불안정성이 장기화하면 국제유가 상승과 물류비 증가, 국내 물가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화와 항행 안전을 위한 국제적 협력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폭발물 제거반 등을 포함해 150명 안팎의 장병을 파견하는 방안이 거론된 바 있다. 다만 구체적인 파병 규모와 임무, 작전 범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영국 등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통항을 위한 국제 연대를 주도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에도 양국 정상은 안전한 해상수송로 확보를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어떤 수준의 공조 방안을 마련할지가 주목되는 이유다.
문제는 파병 결정이 외교적 협력 차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에 병력을 투입하면 장병 안전 문제가 가장 먼저 제기될 수 있고, 작전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충돌에 휘말릴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와의 책임 분담이라는 명분과 국민 안전 및 군사적 부담 사이에서 정부가 정교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기여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한미동맹과 대중동 외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과도한 군사적 개입은 한국이 의도하지 않은 분쟁에 연루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파병 여부뿐 아니라 임무의 성격과 교전 규칙, 철수 기준, 국제적 지휘체계까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안보 현안과 함께 첨단산업 협력도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축이다. 양국은 AI와 우주, 원자력, 바이오 분야의 공동 연구개발과 기업 간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청년과 과학기술 인력 교류를 제도화하고 양국 기업의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방안도 협의 대상이다.
특히 원자력 분야에서 프랑스와의 협력은 한국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원전 강국으로 평가받으며 원전 기술과 운영 경험을 축적해왔다. 한국 역시 원전 설계와 건설 역량을 갖춘 만큼 양국의 기술력과 시장 경험을 결합한다면 유럽 및 제3국 원전 시장에서 협력 기회를 확대할 여지가 있다.
AI와 우주 분야 역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분야다. 한국의 반도체와 제조 역량에 프랑스의 연구개발 역량과 유럽 시장 네트워크가 결합하면 공동 연구와 기업 진출을 촉진할 수 있다. 다만 정상회담에서 협력 원칙만 확인하는 데 그친다면 성과의 지속성은 제한적이다. 공동 투자 규모와 연구기관 참여, 기업 간 계약, 기술 상용화 일정 등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정상회담 이후에는 양국 기업 20여 곳이 참여하는 한·프랑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예정돼 있다. 외교적 합의가 산업 현장의 투자와 수출, 기술 협력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이번 한·프랑스 정상회담은 안보와 경제라는 서로 다른 의제가 하나의 외교 테이블에 올라온 자리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신중한 군사적 판단이 요구되고, 첨단산업에서는 과감한 협력 성과가 필요하다. 이 대통령이 국민 안전과 국익을 모두 확보하면서 프랑스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얼마나 구체적인 결과로 발전시킬지가 이번 국빈 방문의 핵심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