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파괴 맞서 온몸으로 대지 보듬어 온 생태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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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페이지 스미스는 향년 92로 세상을 뜬 미국 시인 웬델 베리(1934~2026.8.31)를 가리켜 "이 시대 미국의 예언자적 목소리"라 칭한 바 있다.
그러나 베리가 말했듯, 그 건강한 관계를 근원적으로 훼손시키는 아메리카의 1492 "혁명"은 이제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퍼져 한순간도 멈춤 없이 진행되었으며 그 속도와 강도가 전례 없이 강렬해져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는 우리와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소로-간디-베리를 잇는 비폭력 불복종 정신은 단순히 저항의 수단과 방법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베리의 2011년 탄광 개발 저지 농성 이후에도 탄광 개발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어 그 자체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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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낸 ‘소농, 문명의 뿌리’에서
소농들의 농촌 공동체 해체한
미국 근대사 기술해 이름 알려
인간과 자연 사이 건강성 위해서는
생태적 순환 가능한 지역 공동체를
적정 규모 소농이 돌봐야 한다 주창
70대 후반에 탄광 개발 저지 농성도
역사학자 페이지 스미스는 향년 92로 세상을 뜬 미국 시인 웬델 베리(1934~2026.8.31)를 가리켜 “이 시대 미국의 예언자적 목소리”라 칭한 바 있다. 예언자가 필요한 시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 민중이 실존적 위기, 나아가 존재성의 위기를 느낄 때이다. 베리가 작가, 생태주의 사상가, 농민 운동가, 나아가 문명비평가로서 이 시대에 남긴 예언적 발언들의 핵심 범주가 땅이다.
나는 베리의 ‘소농, 문명의 뿌리: 미국의 뿌리는 어떻게 뽑혔는가’(1977)를 2016년에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거대 농기업이 오랜 세월 대지의 관리자였던 소농/가족농들의 농촌 공동체를 해체시켜온, 건국 이후 미국의 근대사를 기술하여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저술이다. 그 책에서 생생히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의 혁명이자 지금까지 한번도 그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가장 거대한 혁명은, 땅을 고향 땅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몰려왔다는 것이다.”
그에게 인간의 전(全) 존재는 대지에 속해 있다. 여기서 대지는 단순히 발을 디딜 수 있는 물리적 토대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지는 건강이다. 건강은 돌볼 때만 유지될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생태적 순환이 가능한 지역 공동체를 적정 규모의 소농들이 가꾸고 돌보고 관리할 때 그 지역은 건강해진다. 그때에야 비로소 인간 존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베리가 말했듯, 그 건강한 관계를 근원적으로 훼손시키는 아메리카의 1492 “혁명”은 이제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퍼져 한순간도 멈춤 없이 진행되었으며 그 속도와 강도가 전례 없이 강렬해져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는 우리와 작별을 고했다.
그는 자신이 우리 별을 떠난 후 남은 우리들에게 미리 알려주듯, 삶과 세계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대해 말을 남긴 바 있다. 에세이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글’(2014)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지키려고 애써온 것들은 처음보다 더 나빠졌다…우리 모두는 지고 있는 싸움을 해왔다…유일하게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아직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만두지 않은 것은 희망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2013년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시, ‘희망 시(詩)’(A Poem on Hope)에서 희망의 자원이 무엇인지 밝혔다. 시에서 그는 우리의 숲이 망가지고 들판이 침식되며 강이 오염되고 산이 뒤집어지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삶의 장소에 스스로를 맞추어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니 이제,/ 그 어떤 곳과도 같지 않은/ 당신의 터전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감으로써,/ 그리고 다른 어떤 곳보다도 그곳을 아끼고 돌봄으로써,/ 그곳에 속하기를 희망하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독자들이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으로서 한 장소에 안겨 살기를 희망한다면, 지금 당신의 장소가 어떻게 망가져 있고 상처받아 신음하는지, 그 고통에 공명하는 공감의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희망은 통계 수치와 빅데이터에 근거한 예측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소망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귀 기울여라/ 개울둑과 나무와 탁 트인 들판에 속한/ 그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니 당신의 희망을/ 당신의 두 발 아래 놓인 땅에서 찾아라./ 천국에 대한 당신의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 또한/ 당신의 발밑에 있는 땅 위에 내려놓아라.”
‘희망 시’가 나오기까지 그가 실제로 환경운동가로서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확인하면 우리의 희망은 결국 인문적 민주주의 사상과 결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그는 동부 켄터키 일대의 노천 탄광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다른 농부들과 환경운동가들과 더불어 켄터키 주지사 사무실을 점거하여 연좌농성을 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베리에게 산업주의 또는 산업농을 거부하는 태도의 근저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정신이 자리한다. 베리 별세 후 인도의 ‘인디언 익스프레스’지가 베리를 가리켜 “미국의 간디”라고 일컬은 이유이다. 그러나 소로-간디-베리를 잇는 비폭력 불복종 정신은 단순히 저항의 수단과 방법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베리의 2011년 탄광 개발 저지 농성 이후에도 탄광 개발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어 그 자체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비폭력 불복종 시위의 정신은 산이 단순히 석탄이라는 자원을 함유하고 있는 어떤 물체라기보다는 산에 서식하는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의 존재와 그 숲에 깃들어 있는 주민들의 기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베리는 지구별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숱한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돌아올 것이다. 지금 21세기는 여전히 전쟁과 개발의 광기로 얼룩져 있지만, 그는 아직 살아 있는 자연과 숨 쉴 수 있는 계절과의 조화를 통해 개발과 성장을 다시 규정할 지혜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다.
이승렬 전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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