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빠지고 4.5조 현금 쥐었다…삼성SDI, 'EV 올인' 대신 두 번째 승부

장지현 기자 2026. 9. 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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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떠난 합작공장 100% 인수…북미 첫 단독기지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팔아 4.45조 투자재원 확보
ESS·UPS·BBU 판매 호조에 7개 분기 만에 흑자
삼성SDI-GM. 사진=삼성SDI

전기차(EV) 시장 둔화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삼성SDI가 북미 생산전략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다시 짜고 있다.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추진하던 배터리 합작공장을 단독 생산기지로 전환한 데 이어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일부를 매각해 4조원 넘는 투자 실탄을 확보하면서다.

EV 전용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기존 방식 대신 ESS(에너지저장장치)와 LFP(리튬인산철), 차세대 배터리까지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투자를 재배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달 11일 GM과 미국 인디애나주 뉴칼라일에 설립한 배터리 합작법인 'SynergyCells'의 합작투자계약을 종료하고 GM이 보유한 지분 49.99%를 전량 인수했다. 이에 따라 해당 공장은 삼성SDI가 지분 100%를 보유한 북미 첫 단독 생산기지로 바뀌게 됐다.

당초 삼성SDI와 GM은 2024년 약 35억달러를 투자해 연산 27GWh(기가와트시) 규모의 EV 배터리 공장을 짓고 향후 최대 36GWh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EV 수요 둔화로 완성차업체들의 배터리 투자 속도 조절이 본격화하면서 협력 방식도 바뀌었다. 삼성SDI는 GM의 지분을 인수한 뒤 해당 공장을 ESS 배터리 생산 등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GM과의 협력 자체를 종료한 것은 아니다. 양사는 고에너지밀도·급속충전 특성을 갖춘 차세대 각형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기로 별도 협약을 맺었다.

공장을 함께 소유하는 관계는 끝냈지만 제품 공동개발은 이어가는 형태다. 삼성SDI는 특정 완성차업체의 EV 물량에 공장 전체가 묶이는 대신 시장 상황에 따라 ESS와 EV 등 여러 용도로 생산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 셈이다.

최근 삼성SDI 실적의 회복 동력이기도 하다. 삼성SDI는 올해 2분기 매출 3조7688억원, 영업이익 203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5% 늘었고 영업손익은 2024년 3분기 이후 7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도 482억원을 기록하며 연간 턴어라운드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

전력용 ESS와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백업유닛(BBU) 등 AI 데이터센터와 연결된 고출력 배터리 수요 확대가 주요 실적 개선 요인으로 꼽혔다. 배터리부문은 2분기 매출 3조5190억원, 영업이익 1593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로 돌아섰다. 

삼성SDI는 하반기에도 미국 각형 LFP 배터리 양산과 UPS·BBU 생산 확대 등을 통해 실적 개선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수주도 ESS 쪽에서 이어지고 있다.

삼성SDI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대형 에너지기업과 ESS용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도 미국 에너지기업과 ESS용 각형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지난 3월 엘앤에프와 LFP 양극재 중장기 공급계약도 맺었다.

EV 중심이던 배터리 포트폴리오에 ESS와 LFP가 빠르게 들어오고 있는 흐름이다.
삼성SDI의 UPS용 배터리 제품. 사진=삼성SDI

GM 합작공장 단독 전환…4.45조원 현금 확보

공장 전략을 바꾼 삼성SDI는 대규모 투자재원 확보에도 나섰다. 삼성SDI는 지난달 21일 보유 중이던 삼성디스플레이 주식 1309만주를 약 4조4500억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는 매각 목적을 '미래 성장동력 투자재원 확보'라고 밝혔다. 거래 이후에도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0.22%는 유지한다.

반기보고서를 보면 삼성SDI는 올해 상반기 중 시설투자에 1조928억원을 사용했다. 이 중 에너지솔루션 부문 투자가 1조809억원으로 사실상 대부분을 차지했다. 삼성SDI는 향후에도 전지사업을 중심으로 시설투자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금창출력은 아직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 연결 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은 지난해 말 약 1조8040억원에서 올해 6월 말 약 1조5055억원으로 감소했다. 상반기 영업활동현금흐름은 1094억원으로 전년 동기 7016억원보다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유형자산 취득에는 약 1조1259억원이 투입됐다.

삼성SDI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목적은 성장투자 재원 확보다. EV 시장 둔화 속에서도 북미 공장과 ESS, LFP, 차세대 배터리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4조원대 현금을 확보한 것은 향후 투자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 있는 재무적 여력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다.

'공장 유연하게 쓰기' 전략으로

삼성SDI의 변화는 최근 몇 년간 국내 배터리업계가 추진해온 북미 투자전략과 비교하면 더 선명하다.

EV 성장기에는 완성차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고 전용 합작공장을 빠르게 늘리는 것이 경쟁력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EV 수요가 예상보다 더디게 늘면서 유휴 생산능력이 부담으로 떠올랐고, 반대로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힘입어 ESS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기존 공장을 얼마나 유연하게 다른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삼성SDI가 GM 합작공장을 단독으로 전환한 뒤 ESS 생산 활용 계획을 밝힌 것도 이 같은 시장 변화에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SDI는 과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에 비해 북미 증설 속도가 상대적으로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EV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보수적인 투자전략이 약점으로 지적됐지만, 현재처럼 수요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는 특정 고객과 용도에 생산능력이 묶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생산 유연성'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는 향후 가동률과 제품 전환 속도에 달려 있다. GM이 합작법인에서 빠진 만큼 뉴칼라일 공장의 투자와 가동 부담은 앞으로 삼성SDI가 직접 감당해야 한다.

EV 물량 감소분을 ESS가 얼마나 빠르게 채울 수 있는지가 수익성의 핵심 변수다.
삼성SDI 각형 배터리 '프리즘스택'. 사진=삼성SDI

ESS로 현금 벌고, 46파이·전고체까지

삼성SDI는 업황 둔화 속에서도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연결 손익에 비용으로 인식한 연구개발비는 8586억원으로 전년 동기 7044억원보다 약 22% 증가했다.

연구개발 포트폴리오를 보면 회사의 중장기 전략이 드러난다.

삼성SDI는 UPS용 고출력 ESS 모듈과 M-Mobility용 46파이 원통형 셀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는 BMW와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반기보고서에는 46파이 원통형 셀과 UPS용 고출력 ESS 모듈 개발 과제가 명시돼 있으며, 지난해 10월 BMW와 전고체 배터리 실증 프로젝트 업무협약을 맺은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삼성SDI의 포트폴리오는 단기적으로는 ESS·UPS·BBU 등에서 현금창출력을 높이고, 중기적으로는 LFP와 46파이 원통형을 확대하며, 장기적으로는 전고체 배터리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뉘고 있다.

다만 ESS 역시 만만한 시장은 아니다. LFP 기반 ESS 시장에서는 CATL과 BYD 등 중국 업체들이 가격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우고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이 ESS 배터리 신규 생산공장 승인을 일시 중단하며 과잉생산 점검에 들어간 것도 중국 내 공급능력이 이미 크게 확대됐다는 방증이다.

미국에서는 중국 공급망을 배제하려는 정책이 삼성SDI 등 한국 업체에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결국 중국 업체와 가격으로 맞붙어야 한다. 북미 현지생산 LFP와 안전성이 높은 각형 배터리 등으로 차별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유럽에서는 환경규제도 새로운 부담으로 떠올랐다.

헝가리 정부는 최근 EV 배터리공장을 전담 감독하는 환경 규제기관을 만들고 대형 제조업체의 환경법 위반 최고 벌금을 50억포린트(약 1600만달러)까지 높이기로 했다. 삼성SDI의 괴드 공장도 과거 환경규정 위반 사례가 언급된 만큼 향후 추가 환경투자와 운영비용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배터리업계는 EV 캐즘이 길어지는 동안 기존 공장을 얼마나 빠르게 ESS와 LFP 생산으로 바꾸고, 확보한 현금을 차세대 제품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GM과 함께 짓던 공장을 온전히 가져오고 4조4500억원의 투자재원을 추가로 확보한 삼성SDI는 북미 사업의 통제권과 투자 선택권을 동시에 쥐게 됐다.

과거 배터리 호황기에 상대적으로 신중했던 투자가 현재의 생산 유연성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떠안은 공장의 가동률 부담으로 돌아올지는 앞으로 ESS·LFP 전환 속도와 신규 수주가 결정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