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의 Pick]"김치도 스테이크처럼"…'워커힐 김치' 맛의 비밀

김다이 2026. 9. 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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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요리는 종종 예술작품에 비유되곤 합니다.

조선 후기 서울·경기 상류 계층의 전통 맛을 재현한다는 '수펙스(SUPEX) 김치' 그리고 2018년 호텔 김치의 대중화를 위해 론칭한 '워커힐 호텔 김치'.

김치를 만든 뒤 직접 맛을 보고 이전에 만든 김치와 비교하면서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야 원물과 계절에 따른 변화를 잡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조리장은 "양식 셰프들이 스테이크 익힘 정도를 레어, 미디엄, 웰던으로 세분화하듯, 우리도 수펙스 김치의 숙성 정도를 생맛, 중간맛, 익은맛으로 정교하게 나눠 관리한다"면서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를 넘어 언제, 어떤 상태로 제공하는 것이 가장 맛있는가까지 고민한다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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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핵심은 만드는 사람…숙성도까지 관리
저염·비건 등 소비자 변화에 맞춰 레시피 진화
전통의 발효미 지키며 미국·호주 등 해외 진출
김재학 워커힐 김치조리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셰프의 요리는 종종 예술작품에 비유되곤 합니다. 셰프는 접시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철학과 재료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수만 번의 칼질로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예술가들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죠. [셰프의 Pick]은 그들의 이런 노력을 담아냅니다. 국내 호텔 셰프들의 이야기와 요리에 담긴 철학 한 조각을 음미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최고의 셰프들이 전하는 화려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맛 보실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출발합니다. [편집자]

'호텔 김치'라는 단어에는 묘한 거리가 존재한다. 매일 식탁에 오르는 반찬이지만 1㎏에 몇만원을 호가하는 가격표를 보면 '누가 사 먹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프리미엄 김치 시장은 매년 성장 중이다. 그 중심에는 1989년부터 김치를 전담 연구해 온 워커힐 호텔앤리조트가 있다.

조선 후기 서울·경기 상류 계층의 전통 맛을 재현한다는 '수펙스(SUPEX) 김치' 그리고 2018년 호텔 김치의 대중화를 위해 론칭한 '워커힐 호텔 김치'. 두 브랜드의 제조와 판매 전 과정을 지휘하는 김재학 워커힐 김치 조리장을 만나 호텔 김치가 지닌 고집과 글로벌 시장을 향한 비전을 들어봤다.

스테이크 익히듯

워커힐은 1989년 호텔업계 최초로 김치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재료의 계절과 품종, 염도와 숙성 온도, 저장 방식 등을 연구하며 김치 제조 공정을 체계화했다. 오랜 연구를 거쳐 쌓인 노하우는 지금도 김치를 만드는 셰프들의 손끝에서 이어지고 있다.

김 조리장은 워커힐의 프리미엄 김치 '수펙스(SUPEX) 김치'와 대중화를 위해 만든 '워커힐호텔 김치'의 제품 개발과 품질 관리를 맡고 있다. 2001년 워커힐에 입사해 더뷔페와 피자힐, 연회 행사장 등을 거친 그는 2017년 김치 태스크포스(TF)에 합류하면서 김치와 인연을 맺었다.

현재 호텔 내 약 110평 규모의 생산 시설과 R&D 센터에서는 셰프 6명이 2~3일 간격으로 400~600㎏의 수펙스 김치를 직접 담근다. 이처럼 반복해서 김치를 담그다 보면 같은 레시피를 적용하더라도 매번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배추의 상태는 물론 계절과 날씨, 온도에 따라 원물의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재학 워커힐 김치조리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결국 중요한 건 달라진 원물의 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에 맞게 대응하느냐다. 김 조리장은 김치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로 좋은 재료와 레시피, 발효·숙성을 꼽으면서도,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같은 조건이 갖춰졌더라도 누가 만들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김치 맛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도 김치를 만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치를 만드는 사람의 경험과 감각은 결국 '맛을 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그는 "요리사들은 좋은 것을 많이 먹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치를 만든 뒤 직접 맛을 보고 이전에 만든 김치와 비교하면서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야 원물과 계절에 따른 변화를 잡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워커힐 수펙스 김치/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이렇게 원물의 상태부터 맛의 변화를 세밀하게 확인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김치의 '숙성도'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공장에서 일정한 레시피로 대량 생산되는 일반 김치와 호텔 셰프가 만드는 김치의 결정적인 차이로 김 조리장이 '숙성도 관리'를 꼽는 이유다.

김 조리장은 "양식 셰프들이 스테이크 익힘 정도를 레어, 미디엄, 웰던으로 세분화하듯, 우리도 수펙스 김치의 숙성 정도를 생맛, 중간맛, 익은맛으로 정교하게 나눠 관리한다"면서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를 넘어 언제, 어떤 상태로 제공하는 것이 가장 맛있는가까지 고민한다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치는 숙성 냉장고에서 1~5도의 온도를 유지하며 24시간 모니터링한다. 같은 김치라도 어디에서, 언제 제공되는지에 따라 가장 맛있는 숙성 상태를 맞추기 위해서다. 실제로 업장마다 선호하는 숙성도도 다르다. 한식당 온달은 25~30일 숙성된 완숙 김치를 찾지만, 명월관은 15일 정도 숙성한 김치의 청량한 맛을 선호한다.

숨 쉬는 항아리

김 조리장이 꼽은 수펙스 김치의 핵심은 네 가지다. 입자가 고운 '파우더형 고춧가루', 깔끔한 감칠맛을 내는 '육젓과 민물새우', 직접 쑤는 '찹쌀풀죽', 그리고 '항아리 숙성'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비결로 꼽은 건 '항아리 숙성'이다. 항아리의 미세한 기공을 통해 숙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자연스럽게 배출하고 김치의 발효를 돕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수펙스 김치 특유의 시원하고 청량한 탄산감도 살아난다. 김치 제조 시설의 설비는 최첨단으로 바뀌었지만, 김치를 항아리에 담아 적정 온도에서 숙성시키는 방식만큼은 워커힐이 오랜 시간 지켜온 노하우다.

워커힐의 항아리 숙성에 대한 고집은 '묵은지'에서도 드러난다. 워커힐은 판매량에 맞춰 김치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부 물량을 별도로 남겨 의도적으로 숙성시킨다. 배추가 좋은 시기엔 포기김치를 담글 때 전체 생산량의 약 20%를 더 만들어 항아리에 보관하는 방식이다. 김 조리장은 "냉장고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는 항아리가 있다"면서 "계속 보관하다 보면 뚜껑이 혼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워커힐 수펙스(SUPEX) 김치/사진=워커힐 호텔앤리조트

그렇게 최소 6개월 이상 지난 김치는 묵은지가 된다. 김 조리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김치도 이 항아리에서 1년 이상 숙성한 묵은지다. 그는 처음에는 깔끔한 맛과 탄산감이 좋은 백김치를 선호했지만 오랜 시간 숙성된 묵은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풍미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는 "항아리에서 길게는 1년 넘게 숙성된 묵은지는 겉은 빨갛지만 내부에서 황금빛이 도는 오묘한 색을 띤다"며 "특유의 시큼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일품"이라고 묵은지의 매력을 설명했다.

오래 숙성한 묵은지는 활용도도 높다. 김치찌개나 김치찜처럼 익숙한 요리는 물론 회와 파스타, 짬뽕 등 다양한 음식과도 어울린다. 실제 워커힐에서는 맛있게 익은 묵은지를 따로 요청해 16층 클럽 라운지의 찌개용 김치로 제공하기도 한다.

김 조리장은 "맛있게 익은 묵은지를 써달라고 요청해 찌개용으로 제공하기도 한다"면서 "묵은지를 맛본 손님들은 구매하고 싶다고 요청하시기도 한다"며 웃었다.

김치도 진화한다

오랜 전통을 지켜온 워커힐의 김치도 시대와 소비자 취향에 맞춰 변화를 거듭했다. 가장 큰 변화는 '저염화'다. 김 조리장은 "과거 20㎏의 김치를 만들 때 소금 200g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110g 정도로 줄었다"며 "저염식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김치의 염도를 낮췄다"고 설명했다.

염도를 낮추는 일이 단순히 소금의 양만 줄이는 것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염도에 따라 발효 속도와 저장 기간이 달라지고 김치 특유의 시원한 탄산감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워커힐 셰프들은 원물의 절임 상태부터 숙성 온도까지 제조 전 과정을 세밀하게 조정하며 맛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김재학 워커힐 김치조리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서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레시피도 바꿨다. 미주의 통관 기준과 비건(Vegan), 글루텐 프리, 알레르기 유발 물질 차단 등을 고려해 30년간 사용해온 양지 육수를 과감히 뺐다. 대신 상황버섯과 잎새버섯 등 세 가지 버섯과 채소를 진하게 우려낸 '비법 채수'를 새롭게 적용했다.

양지 육수를 빼는 만큼 맛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었다. 김 조리장은 "사실 버섯 채수가 양지 육수를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면서 "육수를 바꾼 뒤 깔끔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을 잡기까지 약 두 달간 수차례 테스트를 거쳤고 채수를 넣은 김치를 열흘 이상 숙성시킨 뒤 맛과 풍미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지금의 레시피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오히려 깔끔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을 훌륭하게 잡아냈고 다른 조리장님들도 맛을 보시더니 기존 제품과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세계인의 식탁으로

레시피를 바꾼 김치는 이제 호텔 밖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워커힐은 지난해 9월 '워커힐호텔 김치'를 미국에 처음 수출한 데 이어 올해 2월 미국 전역으로 판매 지역을 확대했다. 3월에는 호주 시장에도 진출했고 7월에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수펙스 김치'까지 미국 수출을 시작했다.

해외 시장에 맞춘 변화는 레시피에서 끝나지 않았다. 긴 해상 운송 기간 동안 김치가 계속 발효되면서 포장 용기가 부풀어 오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스 흡수 기능성 용기를 도입했다. 김치의 맛과 발효 특성은 지키면서도 장거리 운송에 맞게 포장과 유통 방식을 바꾼 셈이다.

'워커힐 김장 담그는 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조리장으로부터 워커힐만의 김치 비법을 배우고 있다./사진=워커힐 호텔앤리조트

김 조리장이 그리는 김치의 세계화도 '지킬 것과 바꿀 것을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전통의 맛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발효 기술과 맛을 지키면서도 시대와 소비자, 각국의 식문화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 조리장은 "김치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음식이지만 다른 식재료와 만났을 때 상대의 맛과 개성을 살려주는 매력도 있다"며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이라는 인식을 넘어 과학적인 발효식품이라는 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세계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김치 한 가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치를 만들고 나누는 문화까지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김 조리장은 "김장 문화 자체가 K팝처럼 전 세계로 퍼졌으면 좋겠다"면서 "집집마다 맛이 다르고 정을 나누는 한국의 김장 문화가 세계인의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다이 (neverdi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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