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성적 농담 뒤의 상실… 90분 홀로 채운 여성 1인극 ‘플리백’

박세영 기자 2026. 9. 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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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러 온 스물여섯 살 여성이 느닷없이 상의를 벗으려 한다. 객석이 당황하는 사이에도 무대 위 인물은 태연하다.

지난 6월 19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한 연극 '플리백'이 9월 6일까지 80일간 무대에 오른 뒤 막을 내렸다.

스물여섯 살 플리백은 곳곳에서 삐걱대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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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에든버러프린지서 출발, BBC 드라마로 세계적 성공 거둔 화제작… 정식 라이선스로 한국 초연
김히어라·김주연·김규남 3인 3색 무대… 80일 공연 마치고 6일 폐막
연극 ‘플리백’ 공연사진. 왼쪽부터 김히어라, 김주연, 김규남. 브러쉬씨어터 제공.

면접을 보러 온 스물여섯 살 여성이 느닷없이 상의를 벗으려 한다. 객석이 당황하는 사이에도 무대 위 인물은 태연하다. 연극 ‘플리백(Fleabag)’은 관객의 예상을 먼저 흔들어 놓은 뒤에야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지난 6월 19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한 연극 ‘플리백’이 9월 6일까지 80일간 무대에 오른 뒤 막을 내렸다. 김히어라·김주연·김규남 세 배우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90분씩 무대를 홀로 채우며 여성 1인극의 힘을 확인시킨 시간이었다.

제목이자 주인공의 별명인 ‘플리백’은 ‘지저분해서 사람들이 피하는 이’, 혹은 ‘낡고 허름한 싸구려 숙소’를 가리키는 속어다. 스물여섯 살 플리백은 곳곳에서 삐걱대는 인물이다. 성적 농담과 어수선한 일상, 주변 인물과의 관계가 흘러가는가 싶다가도, 기니피그 카페의 동업자 ‘부(Boo)’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기니피그마저 목숨을 잃는 장면에 이르면 웃음은 잦아든다. 결함투성이 인물의 표면 아래에서 상실과 죄책감이 모습을 드러낸다.

‘플리백’은 배우이자 작가인 피비 월러 브리지가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인 동명의 1인극이 원작이다. 영국 연극계의 화제를 모은 뒤 BBC 드라마로 제작돼 세계적 성공을 거뒀고, 이번 공연은 원작의 정식 라이선스 프로덕션으로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났다.

이번 초연의 특징은 세 배우가 같은 대본, 같은 인물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배우가 바뀌면 무대 구성도 달라졌다. 류주연 연출은 “하나의 공연에 세 개의 무대를 연출하는 초유의 경험을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원작에 가까운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은 김히어라의 무대에, 원작과 거리를 둔 드라마성은 김주연의 무대에 실렸고, 김규남은 두 방식을 빠르게 오가는 구성을 맡았다. 김규남의 무대는 의자 하나를 여러 방식으로 옮겨 가며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를 오갔다.

작품은 유머와 냉소 뒤에 상실과 죄책감, 가족과의 갈등, 고립을 함께 담는다. 김히어라는 앞서 “이 작품은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가진 실수와 상처, 자기혐오 같은 것을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할 것인지를 묻는다”고 말했다. 결함투성이 주인공을 끝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제4의 벽 허물기’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한국 무대에서도 작동했다. 플리백은 객석을 바라보며 속내와 비밀을 털어놓고, 관객은 그 불완전함을 따라간다. 제작사 관계자는 “영국식 유머와 1인극 형식,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이 한국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가 가장 궁금했다”며 “관객들이 그 형식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준, 의미 있는 초연이었다”고 말했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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