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 깻잎, 몸을 챙기는 다섯가지 지혜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고기를 씹다가 깻잎 한 장을 얹으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깻잎 한 장은 이 다섯을 고스란히 품는다.
깻잎 한 장이 만병을 고치지는 못해도, 그런 밥상을 이루는 좋은 조각 하나임은 분명하다.
화려한 보약 한 첩보다, 깻잎 한 장을 밥 위에 얹어 된장과 마늘과 고기를 함께 마는 이 평범한 동작에 오래된 지혜가 숨어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들깨와 깻잎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08/yonhap/20260908093441362qomn.jpg)
고기를 씹다가 깻잎 한 장을 얹으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회를 뜬 살점을 깻잎에 말아 넣으면 비린내는 잦아들고 향긋한 여운만 남는다. 된장찌개와 감자탕에는 은근한 향을 얹고, 장아찌와 김치로 삭으면 밥 한 공기를 너끈히 부른다. 삼겹살집이든 횟집이든, 백반집이든 어느 밥상에 앉아도 깻잎은 낯설지 않은 얼굴로 자리한다.
너무 익숙해서 새삼스러운 것 없는 이 잎 한 장에, 우리 민족이 밥상에서 오래도록 실천해 온 양생의 이치가 겹겹이 배어 있다.
우리가 쌈으로 즐겨 먹는 깻잎은 들깨의 잎이다. 흔히 자줏빛이 도는 자소엽(차조기)과 한 몸으로 여기기 쉽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자소엽은 들깨의 변종으로 잎 색이 보라색을 띠는 한해살이풀이며, 한의학에서는 맛이 맵고 달며 성질이 따뜻해 잎과 줄기, 씨앗을 두루 약재로 써왔다.
반면 우리 밥상에 오르는 푸른 깻잎은 향은 짙되 성질이 한결 순하다. 옛사람들이 이 둘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고 향기로운 잎으로 뭉뚱그려 다뤄온 것은, 음식과 약을 딱 잘라 나누지 않던 생활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몸이 서늘하거나 속이 불편할 때 따뜻한 국물에 향긋한 잎을 띄워 먹던 밥상, 그것이 곧 양생이었다.
깻잎의 영양
현대 영양학이 들여다본 깻잎도 만만치 않다. 철분 함량이 시금치의 두 배를 넘어, 깻잎 30g이면 하루 권장 철분 섭취량을 채울 수 있다.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루테올린은 몸속 염증을 가라앉히고 항알레르기 작용을 도와 기침이나 콧물, 재채기 같은 증상을 누그러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짙푸른 색을 만드는 베타카로틴은 지방과 함께 먹을 때 흡수가 잘되는 지용성 성분이다. 삼겹살 한 점에 깻잎 한 장을 얹어 먹던 우리 식습관은 우연이 아니라 경험이 쌓아 올린 궁합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칼슘과 칼륨 같은 무기질, 비타민 A와 C, 그리고 로즈마린산·퀘르세틴 같은 폴리페놀, 페릴알데하이드·페릴라케톤 등 독특한 방향 성분까지 더해져 다른 잎채소와는 결이 다른 향과 영양을 함께 지닌다. 조상들은 성분표를 몰랐어도 경험으로 그 값어치를 알아, 생선의 비린내와 고기의 누린내 앞에 서슴없이 깻잎을 곁들였다.
![깻잎 수확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08/yonhap/20260908092200668niae.jpg)
'쌈'이라는 음식 문화는 이 지혜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난 자리다. 18세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잎이 큰 채소는 모두 쌈으로 먹었으되 상추쌈을 으뜸으로 쳤다고 적었고, 19세기 조리서 '시의전서'에는 상추쌈뿐 아니라 곰취쌈, 양제채쌈, 깻잎쌈, 피마자잎쌈, 호박잎쌈, 배춧쌈, 김치쌈까지 잎이 큰 것이면 무엇이든 쌈이 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월대보름이면 취나물이나 배춧잎에 밥을 크게 싸서 입 벌려 삼키던 복쌈 풍습도 이 계보에 놓인다. 복이 덩굴째 들어오라는 뜻으로 큼직하게 싸 먹었다 하여 명쌈이라고도 불렀는데, 실은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채소를 한입에 아우르는 실속 있는 한 끼이기도 했다. 밥과 고기, 된장과 마늘, 고추를 한 잎에 싸서 삼키는 이 동작은 결국 서로 다른 영양소가 잎 한 장 안에서 완결되는 밥상의 오랜 셈법이었다.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깻잎 요리
이 지혜를 손자병법 '시계편'(始計篇)에 빗대어본다. 손자는 전쟁을 벌이기 전 반드시 도(道)·천(天)·지(地)·장(將)·법(法) 다섯 가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했다. 도는 백성과 뜻을 함께함이요, 천은 음양과 계절의 흐름이며, 지는 지형의 멀고 가까움과 험하고 평탄함을, 장은 지휘관의 지혜와 믿음과 용기를, 법은 군의 편제와 명령 체계를 이른다.
전쟁에 앞서 자연과 사람과 형세를 두루 살피듯, 무엇을 먹을지보다 언제 어떻게 무엇과 함께 먹을지를 살피는 것이 양생의 첫걸음이다.
깻잎 한 장은 이 다섯을 고스란히 품는다. '도'는 조화다. 밥과 고기, 생선과 채소 어느 것과도 척지지 않고 어우러지는 깻잎처럼, 쌈 문화는 저마다 다른 맛이 제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하나로 겹치는 밥상의 도리를 보여준다.
'천'은 계절이다. 여름 뙤약볕 아래서 짙어진 향은 땀 흘려 잃은 입맛을 다시 불러 세운다. '지'는 형세, 곧 조리법이다. 날로 먹으면 향이 살고, 겉절이로 무치면 양념과 어우러지며, 데쳐 나물로 무치면 부드러워지고, 조려내면 밥을 부르는 깊은 맛이 나며, 전으로 부치거나 튀기면 전혀 다른 얼굴이 되고, 장아찌로 삭히면 시간의 맛이 더해진다. '장'은 자신의 몸을 살피는 안목이다. 좋다는 것을 무턱대고 많이 먹을 게 아니라 제 몸의 상태와 계절, 식습관을 헤아려 양과 방법을 정하는 것, 그것이 밥상을 차리는 이의 지혜다.
'법'은 절제다. 아무리 좋은 잎도 넘치면 균형을 잃으니, 쌈으로만 먹지 않고 나물과 겉절이와 전과 장아찌로 나누어 먹어온 것 자체가 이미 질서였다. 한 가지 식재료를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흩어 먹는 습관은, 결국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오래된 절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손자는 이 다섯을 견주어 헤아리면 승부를 미리 안다고 했다. 몸도 마찬가지다. 오늘 컨디션은 어떤가, 날씨는 어떤가, 무엇을 먹었고 얼마나 움직였는가. 형세를 읽는 눈이 곧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요즘 화두가 되는 저속노화도 다르지 않다. 특별한 보약이 아니라 다양한 채소와 단백질을 골고루 먹고, 과한 열량과 가공식품을 줄이며, 몸을 꾸준히 움직이는 생활이 노화의 속도를 늦춘다. 깻잎 한 장이 만병을 고치지는 못해도, 그런 밥상을 이루는 좋은 조각 하나임은 분명하다.
![깻잎에 싸먹는 대구막창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08/yonhap/20260908092200862hniz.jpg)
화려한 보약 한 첩보다, 깻잎 한 장을 밥 위에 얹어 된장과 마늘과 고기를 함께 마는 이 평범한 동작에 오래된 지혜가 숨어 있다. 좋은 삶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내 몸에 무엇을 들일지 살피는 작은 손끝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깻잎이 좋은 식재료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낸시랭, 새벽 강남서 음주운전하다 검거…면허 취소 수준 | 연합뉴스
- 차량에 무게 2.8㎏ 수박 크기 돌덩이 떨어져…용의자 못 찾아 | 연합뉴스
- 삼성 반도체 일부 직원, 주거지원금 부정수급 의혹…조사 착수 | 연합뉴스
- 7억5천 받고 교회 갈등 '청부 수사' 전직 경찰간부 구속기소 | 연합뉴스
- 땅에 파묻고, 비닐로 싸매고, 쇠파이프로 때리고 | 연합뉴스
- 日야쿠자에 내려졌던 활동제한 속속 해제…세력 위축 영향? | 연합뉴스
- 10대 여성 2명과 싸움 강요해 20대 여성 숨지게 한 연인 구속 | 연합뉴스
- 교내성폭력문제 제기한 지혜복 교사, 2년반만에 원소속학교 복귀 | 연합뉴스
- 중학교 동급생끼리 서열 매겨 강요·폭력…교육청, 진상조사 | 연합뉴스
- 황정민 스토킹 혐의 여성에 벌금 600만원 선고(종합)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