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맡기고 뛰러 갑니다"…러너들 얌체짓에 박물관 '몸살' [현장+]

박수빈 2026. 9. 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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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박물관에 있었고, 몸은 박물관 밖에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 물품보관소에 가방을 맡긴 이들은 경복궁 근처를 달렸다. 국립고궁박물관의 무료 물품보관소가 짐 보관 '꿀팁'장소로 공유되면서 생긴 풍경이다.

SNS에서 경복궁 관람 꿀팁으로 국립고궁박물관 무료 물품보관소 이용이 공유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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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만 먹고 올게요"
얌체족 잠적에 박물관 물품보관소 '몸살'
SNS 타고 퍼진 '무료 짐 보관' 꿀팁
러너·나들이객 몰려 사물함 만석
정작 관람객들 "짐 맡길 곳 없어"
지난 6일 오전11시30분경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 관람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짐은 박물관에 있었고, 몸은 박물관 밖에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 물품보관소에 가방을 맡긴 이들은 경복궁 근처를 달렸다. 서촌에서 점심을 먹었다. 인사동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그동안 박물관 관람객은 기저귀 가방, 캐리어 등을 들고 전시실을 돌아다녔다. 국립고궁박물관의 무료 물품보관소가 짐 보관 '꿀팁'장소로 공유되면서 생긴 풍경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이 박물관이 아닌 사물함으로 이용되고 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무료라는 특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퍼지면서 박물관이 러너뿐만 아니라 나들이객 등의 짐 보관 장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공공시설이니 누구나 써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이용객의 인식과 '관람객을 위한 시설'이라는 박물관 취지가 충돌하면서 정작 관람객들이 사물함을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용 '꿀팁', 박물관 관람객에겐 '불편'

지난 6일 오전11시30분경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물품보관소에 러닝용품 보관 지양 공지 포스터가 붙어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지난 6일 오전 11시30분께 찾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78개 사물함 가운데 사용 중인 것은 6개였다. 한산해 보이는 물품보관소였지만 박물관 직원들은 주말마다 사물함을 둘러싸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안내데스크 직원 A씨는 "지난주 주말만 해도 사물함이 개장부터 폐장까지 계속 가득 차 있었다"며 "이번 토·일요일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물품보관소 이용이 지난주와 달리 한산해진 건 공지 영향으로 보인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 3일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러닝용품 보관 지양 공지를 올렸다. 박물관 물품보관소는 박물관 관람객을 위한 공간이기에 관람 목적이 아닌 외부 운동, 개인 용무를 위한 장시간 짐 보관은 지양해 달라는 내용이다.

다만 공지 이후에도 관람 목적 외 짐 보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A씨는 "공지가 올라간 이후, 드라마틱하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며 "짐만 보관하고 나가시는 경우가 아직까지 많다"고 했다. 출입구에서 인원을 관리하는 안전관리요원 B씨는 "오늘 아침에도 러닝하는 한 커플이 왔다"며 "평일에도 이런 분들이 종종 온다"고 했다.

이날 물품보관소에서는 짐만 맡기고 가는 이용객과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관람객을 위한 시설이라는 직원의 설명에 해당 이용객은 "밥만 먹고 오겠다"고 했다. 끝내 직원은 "선생님의 양심적인 판단에 맡기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SNS에서 경복궁 짐 보관 꿀팁이 공유되고 있다. /사진=SNS 갈무리

경복궁 방문객이 짐을 맡기고 가는 경우도 흔하다. SNS에서 경복궁 관람 꿀팁으로 국립고궁박물관 무료 물품보관소 이용이 공유될 정도다. 안내데스크 직원 C씨는 "자전거를 타시는 분이 접이식 자전거를 맡기려고 오시는 경우도 있었다"며 "어렵다고 말씀드리니 '다른 방문객처럼 캐리어에 넣어서 보관하면 되냐'고 반문하시더라"고 했다.

폐관 후 "짐 찾게 문 열어달라" 민원까지

이같은 '사물함화'는 올해 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댕댕런' 등 고궁 일대를 달리는 러닝코스가 대중화되면서 경복궁 러너들이 늘었고, 고궁박물관 내 물품보관소를 이용하는 경우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고궁박물관 행정 시설 관리를 총괄하는 행정사무관 D씨는 "지난해 10월달만 해도 댕댕런이 인기를 끌어 박물관과 고궁을 알리는 겸 뮤지엄런 행사를 열었다. 당시 취지는 좋았으나 물품보관소가 짐 보관 용도로 이렇게 이용될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전 11시30분경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일대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정작 박물관 관람객들은 사물함을 이용하지 못했다. C씨는 "봄부터 계속 사물함이 가득 차는 게 기본값이라 관람객들이 짐을 들고 돌아다니시기도 한다. 관람객분들이 짐 보관소가 또 어딨냐는 질문을 하시면, 경복궁 짐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고 안내드려야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박물관 측에서 물품보관소 이용객을 직접 제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관람객 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는 별도의 규정이 없어, 현장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시설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이용 자제를 당부하는 것이 사실상 최선이다. 안내를 우회하는 이용객들도 있었다. 관람객을 위한 시설이라는 안내를 받으면 전시실을 잠시 둘러본 뒤 짐을 찾아가지 않은 채 곧바로 박물관을 나가는 식이다.

짐 보관 때문에 황당한 민원도 발생했다. 물품보관소에 짐만 맡겨둔 채 박물관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폐관 이후 돌아와 짐을 찾지 못하는 경우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이들은 "짐을 찾아야 한다"며 폐관한 박물관의 문을 다시 열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6일 오전11시30분경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관람객들이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박물관 관람객이라면 관람을 마친 뒤 폐관 전에 짐을 찾아가는 만큼 나오기 어려운 민원이다. 물품보관소를 관람객을 위한 시설이 아닌 도심 나들이 중 잠시 짐을 맡겨두는 공간으로 이용하면서 생겨난 문제인 셈이다. C씨는 "문을 열어달라고 폐장 이후 전화를 걸거나 민원을 넣기도 한다"며 "민원 발생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야 하는 만큼 박물관 측에서도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에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 3일 올린 인스타그램 공지에 입장 마감 시간인 오후 5시 이후에는 보관함 이용 및 물품 반출이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도 담았다. 6일에는 물품보관소에 관련 공지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C씨는 "날이 풀리면서 이용객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공지를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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