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와 표준 물리학자의 ‘따로 또 같이’…양자역학을 향하여

한겨레 2026. 9. 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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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나간 글(길을 찾아서 6화, 내 안의 '괴짜 물리학자' 일깨운 우정과학학자 송상용)에서 송상용 교수가 나를 일러 '괴짜 물리학자'라 불렀다는 말을 했다. 내가 물리학 관행에서 '주류 노선'을 벗어나 '자유 노선'을 밟았다고 한다면, 이와는 달리 끝까지 주류 노선을 지켜나간 이가 송희성 교수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이에도 나와 송 교수는 누구보다도 더 오래도록, 더 가까이 지내온 사람이다.

그런데 송 교수는 내가 가지지 못한 특기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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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 물리학자 장회익 경계를 넘어] 9화 표준 물리학자의 표준 양자역학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나는 지나간 글(길을 찾아서 6화, 내 안의 ‘괴짜 물리학자’ 일깨운 우정…과학학자 송상용)에서 송상용 교수가 나를 일러 ‘괴짜 물리학자’라 불렀다는 말을 했다. 그럼 ‘표준 물리학자’도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그런 사람도 있다. 이미 작고한 송희성 교수(1937~2016)야말로 누가 뭐래도 표준 물리학자이다. 내가 물리학 관행에서 ‘주류 노선’을 벗어나 ‘자유 노선’을 밟았다고 한다면, 이와는 달리 끝까지 주류 노선을 지켜나간 이가 송희성 교수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이에도 나와 송 교수는 누구보다도 더 오래도록, 더 가까이 지내온 사람이다. 1970년 내가 귀국하여 서울대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2003년 퇴임 때까지 대학의 같은 학과에서 연구실을 나란히 하고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던 가장 가까운 동료이다. 대학생 때에도 한해 선후배로 알고 지냈으니, 인연의 세월은 길기도 하다.

당연히 송 교수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나이가 한해 위이고 대학도 한해 선배지만, 같은 대학에 입학하여 같은 물리학을 했고, 둘 다 실험실은 필요 없는 이론물리학을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직장으로 보자면 서울대 공과대학 응용물리학과 교수로 출발하여 서울대 종합화 이후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에서 퇴임하는 날까지 동고동락해왔다.(본래 내 정년 일자는 한 학기 뒤였지만 앞당겨 퇴임했기에 같은 날 학교를 떠났다.)

이런 외형적 공통점과 함께 서로 다른 점 또한 의외로 많다. 물리학에서도 내가 다소 응용의 여지를 지닌 응집물질 쪽을 택했던 것에 비해, 그는 순수물리학의 대표라 할 입자물리학을 해왔고, 내가 물리학 이외의 이것저것에 관심을 가질 때도 그는 오로지 물리학에만 학문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사회적으로 격변의 연속이었던 반세기를 살아오면서도 내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때때로 대외적 활동에 참여했던 것에 비해, 그는 오직 학문과 교육에 관심을 두면서 옆으로 눈을 돌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대학의 행정이나 학계 움직임에까지 눈을 감고 지나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지 않은 행정 능력을 발휘하여 일찍부터 공대 응용물리학과장, 자연과학대 교무담당 학장보, 물리학과장, 서울대학교 이론물리학연구소장 등 교육과 학문에 관련된 행정업무를 꾸준히 맡으며 학교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학교 밖으로는 한국물리학회 회장과 한국 학술단체연합회 회장 등을 맡아 학계의 중추 구실을 훌륭하게 해냈으니, 이것들은 모두 그의 원만한 인품을 말해주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행적은 갈지자로 걸었던 내 경우와 색깔을 달리한다. 내가 주로 체제 밖의 활동에 관여해 왔다면, 그는 줄곧 체제 내의 ‘정도’를 지켜 온 셈이다.

나는 송 교수를 추도하는 어느 모임에서 그분을 표현할 열쇳말 하나를 제시한 일이 있다. ‘밥’이다. 첫 이유는 그가 내 점심 동반자로서 대학에 근무한 30여년간 가장 여러번 밥을 함께 먹었기 때문이다. 사실 점심 동반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만나면 격의 없이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송 교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더 적절한 이유는 그가 서울대 물리학과 교육에서 주된 영양의 원천인 ‘밥’을 제공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다.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을 하나의 밥상이라고 볼 때, 내가 주로 기호가 선명한 반찬들을 제공했다면, 그는 늘 주식에 해당하는 ‘밥’을 제공한 사람이다.

이러한 차이는 그가 쓴 책 ‘양자역학’(초판 1984, 2판 2009)에도 드러난다. 한때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면 책상 위에 사람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원고 뭉치들이 쌓여 있었는데, 모두 양자역학 책 준비 과정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어 양자역학 교재라 할 만한 것으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송양자”(宋量子)라 불리며 40년 이상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우선 분량만 보아도 압도적이다. 4×6배판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으로, 지면의 70% 이상을 빽빽한 수식들로 가득 메웠다. 마치 중국의 태산을 오르려면 무척 힘들고 고달프지만 하나하나의 계단만 다 밟고 오르면 누구나 오르듯이, 양자역학이라는 태산을 오르기 위해선 이 책만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하면 되는, 친절하면서도 엄청 많은 인내력이 요구되는 그러한 책이다. 한마디로 전문적인 물리학자가 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높은 문턱에 해당하는 책으로, “표준 양자역학”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나는 한마디로 이러한 책과 기질을 달리한다.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수학적 논리는 완벽하지만 다 읽고 나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찾기 어려운 책을, 나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 책뿐 아니라 대다수 양자역학 교재들은 태산을 오르되 옆도 보지 말고 계단만 밟으라 하는 식이다. 양자역학 학습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은 내 방식과는 크게 다르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우선 나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 그다음에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양자역학의 첩경을 찾으려고 애써 왔다. 그렇게 해서 쓴 책이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한울 2022)이다.

지금까지는 “너, ‘송양자’ 읽었어? 그럼, 너 양자역학 알아. 너, 송양자 못 읽었어? 그럼, 너 양자역학 몰라” 이 한가지 기준뿐이었다. 떠도는 양자역학 대중서들은 그저 양자역학 홍보물들일 뿐 그것을 통해 양자역학을 알게 해준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쓴 책은 크기도 교양서 수준의 신국판이며 쪽수는 송양자의 반에도 못 미치는 300여쪽, 수식도 전체의 30%에 이를까 말까 하는 만만한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책만 읽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겠다”고 하는 독자들의 반응이 들려오기를 기대했는데, 아직은 그런 소식이 별로 들려오지 않는다. 물론 이것만 읽어서 전문 물리학자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왜 양자역학을 전문 물리학자들만 알아야 하는가?

많은 기질적 차이에도 송 교수와 나는 서로 만나면 부담 없이 어울렸다. 신경 써야 할 관심사 자체가 일치하지 않기에 오히려 마음 편한 일상 이야기들만 주고받으면서 푸근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로 점심 이후 관악산 주변에서 가벼운 산책을 즐겼는데, 산책길에서 나누는 대화는 종종 가벼운 실랑이로 이어졌다.

내가 좀 더 높이 산을 올라가자고 하면, 자신은 나보다 15㎏짜리 짐(우리 체중의 차이)을 더 지고 다니는 셈이니 힘들어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항상 운동하지 않을 핑계만 만들어 낸다고 핀잔한다. 겨울이면 그가 나보다 피부가 5㎜ 더 두꺼우니 외투는 필요 없을 거라고 주장하면, 온도 감각은 피부 바깥쪽에 있는 것이므로 추위는 마찬가지라고 응수한다. 우리의 이런 논쟁 속에 승부는 물론 없다. 그저 외롭지 않을 만한 거리에 상대방을 두고 끝없이 평행선을 그어 나가는 것이 우리 관계였다.

그런데 송 교수는 내가 가지지 못한 특기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다. 바둑이다. 일찍이 바둑을 배운 일이 없는 나는 겨우 남의 바둑 관전을 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는 급수가 제법 높은 편이었다. 어느 날 누구하고 바둑을 두던 그가 지나가던 나를 기세 좋게 불러 세웠다.

“장 선생, 무슨 재미로 사시오.”

들여다보니 방금 대마를 잡아 판세를 뒤엎는 형국이었다. 바둑의 이런 묘미도 못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뜻이다. 아마 인생사에서도 그는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묘미를 따로 느끼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바둑에서나 인생에서나 그보다 항상 한 수 아래 놓였던 내가 그의 경지를 다 파악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가지 크게 아쉬운 것이 남아 있다. 내가 쓴 양자역학 책을 그에게 보여 주며 이게 말이 되는 책이냐고 따져 물어보고 싶었으나, 내 책이 나올 즈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장회익 | 1938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30여년 교수로 일하다 퇴임하고, 지금은 충남 아산에서 살고 있다. 자유로운 사색을 통해 통합적 학문의 모습을 그려보는 ‘소요거사’로 지낸다. 물리학 말고도 과학이론의 구조와 성격, 생명의 이해, 동서 학문의 비교 연구, 온전한 앎의 성격 등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공부도둑’(‘공부 이야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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