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으로 읽는 빛] 4-3. ②사유지에 갇히고 수풀에 덮이고…막혀버린 '기억의 길'

안지섭 기자 2026. 9. 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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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빛 밝힌 이름, 빚 잊은 인천

방치된 '한글점자 창안' 박두성 묘소
낡은 안내판, 글자 읽기조차 힘들어
개인 땅 에워싸 허락 없이 출입 난항
무성한 잡초…진입로 사실상 사라져

지자체 무관심 속 위치 정보 엇갈려
공설묘지와 혼선…정확한 안내 필요
유족, 접근 어려워 관리 어려움 호소
“마음 놓고 돌볼 수도 없어 가슴 아파”
올해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을 맞은 가운데 지난 2일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훈맹정음' 창시자 송암 박두성 선생의 묘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노후돼 있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어 점자로만 교육해야 하는 현실에 한계를 느껴, 1926년 11월 4일 세로 3줄, 가로 2줄의 6점식 원리를 적용해 읽고 쓰기에 가장 과학적인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공식 반포했다./김경민 기자 time20406@incheonilbo.com

지난달 28일 오후 3시쯤 인천 남동구 수산동 경신마을 초입.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갈라져 가까이 가지 않으면 글자를 알아보기 힘든 안내판이 형태만 유지한 채 버티고 있었다. '한글점자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 묘 150m 앞'이란 글자를 간신히 읽었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묘소가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겨 송암 박두성 선생이 안장된 것으로 알려진 산 일대로 향했다. 누군가 일궈놓은 밭과 비닐하우스 너머로 보이는 야산은 사람 키만 한 풀과 나무로 빼곡히 뒤덮여 있었다. 이 산 어딘가에 '수산공설묘지'가 있다고 했지만, 둥글게 쌓아 올린 봉분이나 회색 묘비도 드러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들어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한 앱에는 '경신산 송암 박두성 선생 묘쪽 입구 분기점'이라는 장소가 있었지만, 도로에서 안내가 끊겨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앱은 박두성 선생 묘소 위치와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도 "잘 모르겠다"거나 잘못된 길을 알려줬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1963년 8월 25일 송암 선생이 숨을 거둔 뒤 유족들에 의해 이곳에 안장됐다. 포털 사이트에서 관련 자료를 조금만 검색해보면 수년 전 유가족들이나 시각장애인단체, 일반인들이 정돈된 묘지에서 추모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찾은 현장은 그저 '초록색 미로'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오후 인천 남동구 수산공설묘지 내부. 휴대전화 내비게이션 상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묘지는 없고 잡초 더미만 보인다./안지섭 기자 ajs@incheonilbo.com

무심코 들어갔던 산은 사방이 수풀로 가로막혀 있어 어디로 올라가야 할지 막막했다. 산길은 엉뚱한 방향으로 이어져 길을 잃기 일쑤였다. 이따금 마주한 묘비만이 누군가의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 했다. 산에서 두 시간을 헤맸지만 결국 선생의 묘소는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묘소는 며칠 뒤 드론을 동원한 두 번째 시도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뒤에야 취재진이 헤매고 다니던 풀밭 뒤 보이지 않았던 비석이 드러났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박두성 선생의 서거 3주기를 맞아 새긴 시와 묘비명이 담긴 비석 2개가 분명했다.

주변이 사유지라 묘를 방문하려면 토지주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인근 수목원 관계자로부터 출입 허락을 받아 묘소의 뒤로 접근할 수 있었다.

인천 남동구 수산동에 있는 송암 박두성 선생의 문화인물 선정 기념비석이 우거진 풀숲 사이에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김경민 기자 time20406@incheonilbo.com

거친 수풀을 직접 헤치고 나서야 선생의 묘소가 어렴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묘비가 아니었다면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봉분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늘에서 보이지 않았던 검은색 비석도 발견했다. 지난 2002년 4월 문화관광부가 선생을 문화인물로 선정하며 세운 기념비였다. '한글 점자 창안자,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송암 박두성'이라는 글이 무색하게 기념비는 풀에 상당 부분 가려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묘소 주변으로 누군가 던져놓고 간 묘지 이장 업체의 명함 한 장만이 쓸쓸히 나뒹굴고 있었다.

수목원 관계자는 "이곳에서 2년 정도 일했지만, 여기 오겠다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며 "오더라도 풀 때문에 들어가기 힘드실 것이라고 말해 돌려보낸다"고 귀띔했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훈맹정음' 창시자 송암 박두성 선생의 묘소와 추모비가 관리되지 않아 우거진 풀숲 사이에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김경민 기자 time20406@incheonilbo.com

▲못 들어가는 송암 박두성 선생 묘소… 왜?

송암 박두성 선생의 묘소는 '인천 남동구 수산동 산 8의2'에 놓여 있다.

1963년부터 선생의 유족 측이 매입해 소유했던 2281㎡ 규모 임야다. 한 유족은 "선생의 사위가 갖고 있는 땅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국가공간정보센터 'K-geoP'에서 해당 토지를 조회해보면, 맞닿는 3곳 중 2곳이 사유지로 분류돼 있다. 현재 이곳은 모두 소유주에 의해 울타리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국가공간정보센터 'K-geoP'에서 인천 남동구 수산동 산 8-2 조회 결과 갈무리./자료= 국토교통부 국가공간정보센터

나머지 1곳인 '산 14묘'는 시유지이면서 남동구가 담당하는 '수산공설묘지'로, 1953년 자연적으로 조성돼 현재 277구의 시신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사방이 울타리로 쳐져 있는 사유지 한가운데 놓여 발을 들이기가 힘들다. 소유주의 양해를 받아 올라가더라도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또 다른 난관을 겪어야 한다.

구는 해당 공설묘지 관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구 관계자는 "벌초 작업은 개인 성묘객들이 각자의 봉분에 하는 것으로 안다. 구에서 따로 그런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면서 "이곳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보니 그곳에 길을 내고 바닥을 닦는 등 정비가 필요한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퍼져 있는 묘소 위치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개인 성묘객들에게 혼선을 키우고 있다.

현재 남동구청 공식 블로그는 '수산동 산 14 수산공설묘지'에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바로 인근에 공설묘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다.

한 누리꾼은 지난 2015년 송암점자도서관 누리집에 정확한 위치를 문의하고 "기념관이나 시에서 매입해 유적지로 관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인천시와 남동구 관련 부서에도 정확한 위치를 문의했으나, 다른 곳으로 알고 있거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지자체의 역사 인물에 대한 무관심과 행정의 잘못된 지적 설계로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박두성 선생의 묘소를 남동구 수산공설묘지로 오기한 공식 블로그./사진제공=남동구청 공식 누리집 갈무리

유족들은 시간이 갈수록 묘소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유족은 "옛날부터 여름마다 묘소를 찾았는데, 항상 풀이 허리 위로 올라와 있었다"며 "어느 날 벌초를 하다가 벌떼가 무더기로 몰려들었다. 한 두 마리가 아니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죽다 살아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벌 쏘임 사고 이후로도 묘를 관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울타리와 펜스가 생기더니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며 "몇 번 더 시도하려 했지만, 허사가 돼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여기저기가 다 풀숲이 됐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다른 유족은 "우리 가족들이 마음 놓고 돌볼 수도 없었고, 인천에선 별다른 도움을 못 받았다"며 "후손 입장에서 묘소가 방치돼 있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죄송할 따름"이라고 했다.

/곽안나·안지섭 기자 aj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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