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독의 ‘향수’를 팔았다···AfD 돌풍 배후 울리히 지그문트[시스루피플]

최경윤 기자 2026. 9. 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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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 시절 다져온 ‘호감의 기술’
‘추억 라이딩’ 통해 옛 동독 유권자 사로잡아
어린 시절 고향 내세워 ‘강경 추방’ 정당화
따뜻한 이미지 뒤엔 극우 인맥 포진
울리히 지그문트 독일을위한대안(AfD) 작센안할트 주총리 후보가 6일(현지시간) 탕어뮌데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소형 오토바이 ‘심슨 슈발베’를 타고 떠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 크베들린부르크에서 열린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의 유세 현장. 군중을 헤치며 파란색 오토바이 ‘심슨’을 타고 등장한 이가 있었다. AfD가 작센안할트 주총리 후보로 내세운 울리히 지그문트다.

AfD 추산 5000여명이 모인 당시 행사는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로 가득했다. 주민들로 구성된 대다수 참가자는 동독의 ‘국민차’로 통했던 트라반트 자동차와 ‘국민 오토바이’인 심슨을 타고 왔다. 옛 동독과 자유청년연맹(FDJ)의 깃발, 낫과 망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동독’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헬멧을 썼다. 이들은 지그문트와 함께 하르츠산맥을 달렸다.

‘민주주의 위협 단체’는 어떻게 돌풍 일으켰나

독일 국내정보기관은 지난해 AfD 작센안할트 지부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단주의 단체’로 공식 분류했다. 꾸준히 높은 지지율을 이어오던 이 극단주의 단체는 6일(현지시간) 치러진 작센안할트 주선거에서 최소 44%를 득표하며 돌풍을 입증해냈다.

그 배경에는 친근한 이미지를 앞세워 옛 동독 지역 유권자의 향수를 자극한 지그문트와 AfD의 전략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그문트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과거의 공격적 메시지를 멈추고 희망의 언어를 외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강경 추방과 이주책 등 AfD의 급진적 정책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주민들에게 AfD의 새 얼굴은 신선하게 다가갔다.

현지 민주주의 시민단체 ‘미테인데어’ 산하 극우주의 연구소 소장인 다비트 베그리히는 독일 공영 ZDF방송과 인터뷰에서 지그문트 진영을 “극우주의 환경 속에서 정치적으로 사회화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노련한 세일즈맨, 이념을 팔기 시작했다

지그문트는 1990년생으로 올해 36세다. 작센안할트주 북부 엘베강변의 소도시 탕어뮌데 출신이다. 농촌 지역인 이곳은 그의 고향을 넘어 정치적 구상점이 됐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을 “저녁에도 아무 걱정 없이 거리에서 놀 수 있었던 곳”으로 묘사하며 작센안할트주 전체가 이처럼 ‘이상적인 세상’(heile Welt)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소위 말하는 ‘정치 엘리트’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 전문대학 진학 자격을 취득한 뒤 김나지움을 나와 곧바로 직업교육을 받았다. 전기제품 판매원으로 일했고 안과병원 등에서도 근무했다. 이후 산업·조직심리학을 공부했고 자신의 향기 판매 사업도 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과거 창고 바닥을 쓸던 경험이나 고객과 직접 대면했던 경험을 강조했다. 현지 매체들은 지그문트가 판매원으로서의 경력 덕에 짧은 만남에서도 상대에게 좋은 느낌을 남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계 입문 초기 지금과 같은 극우 성향도 아니었다. 18세 시절 그는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CDU)에 입당했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유로존 구제정책에 반대하며 2013년 무렵 AfD로 옮겼다. 이후 2016년 20대의 나이로 작센안할트 주의회에 입성했다. 코로나19 무렵 정부의 방역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인지도를 얻었고 2022년 원내 공동대표에 오르며 차기 주총리 후보로 급부상했다.

여느 AfD 정치인과 유사했던 그의 메시지는 선거 1년 전 무렵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독설과 선동을 멈추고 따뜻하고 밝은 말투를 구사했다. “모든 것은 가능하다” “나라를 다시 세우자” 등 긍정의 언어를 사용했다. 친근함도 더했다. 정장 차림으로 연단에서 연설하기보다 스웨터를 입고 차 안이나 산책길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소통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그를 ‘이데올로기를 파는 영리한 세일즈맨’이라고 평가했다.

친근함 뒤에 가려진 ‘극우의 얼굴’

하지만 온화한 이미지와 달리, 그의 공약과 주변 인사들의 면면에서는 AfD의 급진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독일 마르틴루터 할레비텐베르크대학교의 이민법 전문가들은 독일 법학전문매체 ‘페어파쑹스블로크’에 지그문트 측의 공약 대다수가 위법 소지가 있다는 글을 게재했다. 일반 교도소에 추방 대상자를 구금하는 방안과 외국과의 송환 협정 체결, 난민신청자에 대한 지원 축소 등 핵심 공약이 현행법이나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한 측근의 나치즘 관련 단체 활동 이력도 문제로 떠올랐다. AfD 작센안할트주 선거대책본부장인 파트리크 하르는 ‘인종학’등을 가르쳐 현재는 금지된 네오나치 단체 HDJ 소속으로 알려졌다. 선거 홍보물을 제작한 ‘필름쿤스트콜렉티프’ 소속 인사들도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이 극단주의로 분류한 단체 소속이다. 지그문트는 이들을 “탁월한 팀”으로 치켜세워왔다.

그의 이중적 모습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지그문트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해왔지만, 베그리히 소장은 이를 두고 “사실상 형법상 처벌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극단적·급진적 세력이나 입장과 정치적으로 거리를 두지 않고 처벌 대상이 아닌 것은 모두 문제없다는 식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AfD 내부에서조차 지그문트의 실제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ZDF는 전했다.

극우 집권 현실화···‘AfD의 독일’은

지그문트를 두고 AfD 중앙당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무엇이 됐든 그의 집권 의지만큼은 뚜렷해 보인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단독정부 구성이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다른 정당과의 연립 가능성을 배제하며 집권을 고수하고 있다.

AfD는 나치 시대에 대한 성찰을 ‘죄책감 콤플렉스의 영구화’로 규정하고, 독일에 거주하는 모든 시리아인을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정당이다.

ZDF는 지그문트와 AfD의 작센안할트주에 어떤 변화가 닥칠지는 알 수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의 선거 포스터에 적힌 “모든 것은 가능하다”는 문구를 다시 한번 전했다.

최경윤 기자 c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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