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0원대 터치한 환율, 수출기업은 실적 ‘비상’

최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격히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면서 수출 기업들의 실적 전망에 비상이 걸렸다. 원화 강세 자체는 수입 물가를 낮추는 등 한국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문제는 속도다. 수출 기업들 입장에서는 환율 변화를 가격이나 생산 전략에 반영할 시간이 부족하고, 이미 실적 전망에 반영한 고환율 효과를 되돌려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한국 경제에는 반가운 원화 강세가 수출 기업에는 갑작스러운 실적 충격으로 돌아오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환율의 하락 속도는 이례적으로 빠르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간 환율 하락률은 8.09%로, 시장평균환율제도가 시행된 1990년 3월 이후 역대 여섯째로 컸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인 2009년 3월 9.81% 하락 이후 약 17년 만에 가장 가파른 속도다. 8월에도 환율이 3.89% 내려 7~8월 두 달간 환율 하락률(11.67%)은 두 달 기준으로 역대 넷째로 크다. 환율은 6월 말 1549.4원에서 7월 말 1424원으로 떨어졌고, 지난달 말에는 1368.6원까지 내려왔다. 이달 들어서도 하락세가 이어져 7일에는 장중 1330원대까지 내려갔다.
이날 환율은 오전 10시 1334.7원까지 내렸다가, 오후 3시 30분 기준가는 1340.5원을 기록했다. 전 거래일 같은 시각 기준가(1350.4원)보다 9.9원 하락했다.
앞서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시기에는 환율이 급등했다가, 사태가 진정되며 환율이 빠르게 내렸다.

이번 환율 급락의 배경에는 수출 호조가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크게 늘면서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가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SK하이닉스의 ADR(미국 주식예탁증서) 관련 환전에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주주 환원에 따른 달러 공급 기대 등이 겹쳤다. 한국은행의 2연속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한·미 금리 차 축소와 달러 약세 환경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했다.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해 수출 기업의 달러 매도 물량이 시장에 지속적으로 공급된 게 환율 하락의 이유”라고 했다.
환율이 떨어지면 원유·원자재 등 수입 가격을 낮추고 물가 안정과 내수 구매력 개선에 도움을 준다. 원자재를 수입해 쓰는 항공·유틸리티·철강·화학·음식료 업종 등은 환율 하락에 따라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수혜를 본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환율이 지난 6월 말에 비해서는 상당히 많이 하락했고 안정됐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아직도 높은 수준”이라며 “통화 정책의 선제적 대응을 통해 (원화가) 추가 강세로 갈 여지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기업 등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보다 원화 가치가 빠르게 오를 경우다.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환율 하락이 원화 기준 매출과 이익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달러로 100달러를 벌어도 환율이 1500원이면 15만원이지만 1350원이면 13만5000원으로 줄어든다. 특히 반도체·자동차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충격이 크다.
현대차와 기아도 환율 하락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김용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3분기에는 환율 하락으로 자동차 업체의 외화 충당 부채 설정액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실적 악영향이 일부 상쇄되지만, 4분기부터는 수출 수익성 하락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현대차는 2023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환율 상승으로 약 3조7000억원, 기아는 4조3000억원의 영업이익 증가 효과를 누린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제 그 반대 방향의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반도체 역시 안심하기 어렵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메모리 기업들은 결제 대금을 달러로 받지만, 비용의 상당 부분(매출의 약 20%)이 원화로 지출되는 구조”라며 “원화 가치가 10% 상승하면 영업이익이 약 12% 감소하는 단기 실적 부담이 발생한다”고 했다. 최근 씨티그룹은 환율 역풍 등을 반영한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각각 43만원, 30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기존 115조5000억원에서 104조1000억원으로 10% 하향하고,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도 기존 76조7000억원에서 74조원으로 3% 낮췄다.
한편 환율의 방향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에는 달러 수요보다 수출 호조로 인한 기업발 달러 공급이 두드러지며 환율의 급락세가 나타나는 중”이라며 환율이 단기에 기존 전망보다 낮은 13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이달 발표되는 미국의 물가 지표가 예상을 상회해 기준금리 인상 확률이 높아지면 달러는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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