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호르무즈 딜레마' 대통령의 시험대

김종우 2026. 9. 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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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공짜는 없다.

정부 내에선 호르무즈 해협에 P-8 해상초계기, 군수지원함, 해군 특수전전단 폭발물처리반(EOD) 등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호르무즈에서 이란에 맞서는 행동을 하면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과 전쟁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앞서 이 대통령이 시민사회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파병 얘기는 정말 어렵다", "고민이 깊다"고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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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악방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인간관계에서 공짜는 없다. 국제관계는 더하다. 동맹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한국에 '동맹의 비용'을 요구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한국에) 이란 문제에 대해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더니 안 하는 편이 좋겠다고 답했다"며 "기억해둘 것"이라고 압박했다. 며칠 뒤엔 한국의 핵심 미사일 방어무기인 천궁-Ⅱ를 우크라이나에 팔아야 한다는 워싱턴포스트(WP) 칼럼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 내에선 호르무즈 해협에 P-8 해상초계기, 군수지원함, 해군 특수전전단 폭발물처리반(EOD) 등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요구엔 응하되 이란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고육책인 셈이다. 하지만 절충안이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이란은 선을 그었다. 한국이 호르무즈에서 이란에 맞서는 행동을 하면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과 전쟁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호르무즈는 세계 에너지 수송의 동맥이자 한국 경제의 급소다. 그만큼 해협의 안정은 남의 일이 아니다. 다만 군사적 개입이 안정을 보장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파병한다면 대이란 관계 악화와 우리 선박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트럼프가 공언한 '대가'를 걱정해야 한다. 트럼프는 안보와 통상, 방위비와 투자를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 매사 손익을 따지는 거래적 동맹관을 갖고 있다. 호르무즈에서 생긴 미수금이 언제 관세·반도체 문제에 전가될지 알 수 없다. 정부의 운신 폭이 호르무즈 해협보다 좁다.

여기에 국내 정치라는 또 다른 장벽도 만만치 않다. 호르무즈 파병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여당이 다수당이라고 해도 쉽게 통과시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여권 지지층엔 미국 주도의 중동 군사개입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 깊다. 앞서 이 대통령이 시민사회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파병 얘기는 정말 어렵다", "고민이 깊다"고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병을 결정하면 지지층 일부의 이반(離反)은 각오해야 한다. 가뜩이나 여권 내부의 균열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파병 논란까지 겹치면 정치적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시험대에 선 바 있다. 미국의 이라크 추가 파병 요청 앞에서 핵심 지지층과 시민사회는 "명분 없는 전쟁에 왜 파병하느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 청와대 안팎에선 파병을 강행하면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그해 12월 3천명 규모의 추가 파병안을 확정했다. 이유는 북한 핵 위기 속에서 한미동맹을 흔들 수 없다는 현실론이었다. 진보 진영의 대통령이 지지층의 반발을 감수하고 한미동맹이라는 현실 카드를 선택한 순간이었다.

23년이 흘러 이라크에서 호르무즈로, 부시에서 트럼프로 바뀌었지만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동맹의 요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국익과 명분이 충돌할 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관건은 파병의 범위·규모를 어느 수준으로 정해야 동맹의 요구와 국익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느냐다. 대통령직은 때로 지지층이 원하는 방향과 자신이 판단한 국익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고독한 자리다. 그 책임도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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