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네버랜드'가 ‘피터팬 아빠’의 마지막 꿈
공동체 마을 설립 실현 앞두고 간암으로 작고
아들 머물 곳 1000여 곳 알아 봤지만 모두 거절
"발달 장애인 도전 행동은 불안과 고통 표현 방식"
"네버랜드 2곳 조성하면 문제의 90%는 해결돼"
"시민이 추진하는 일 정부는 시설 인가 도와주길"
"재단설립 보고 가겠다" 자신과의 약속 못 지켜
"네버랜드는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성인들이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짓는 농업 생활 공동체 마을입니다. 이들이 장애에 매이지 않고 존엄하게 살고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는 곳이죠."
꼭두라는 필명을 쓰는 고 전경철 씨는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곳' 네버랜드를 만들기 위해 피터팬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었다. 네버랜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가 쓴 소설 <피터와 웬디>의 주인공 피터팬이 요정 팅커벨, 그리고 '길 잃은 아이들'과 함께 사는 환상의 섬이다.
전 씨의 외아들 제원 씨는 일찍이 중증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나이 스물일곱이 됐지만 아들의 지능 발달은 2.3세에서 멈췄다. 아들이 자폐성 장애 확진을 받은 날 그는 자신의 삶 대신 아들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4월 그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밝힌 기대여명은 약 6개월이었다. 그는 자신이 떠난 후 아들이 있을 만한 곳을 서둘러 찾았다. 1년 넘게 중증 장애인 거주시설, 복지기관 등 약 1000곳에 문의했지만 아들을 받아주겠다는 시설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때 그는 간암 말기 진단서를 품고 있었다. 남은 거의 유일한 선택지는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었다. 절망에 빠져 아들과 동행하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던 그는 이 막막함과 억울함을 브런치에 글로 쓰기 시작했다.
"동반자살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상한 말인데 이렇게 포장해도 사실상 친족 살해 후 자살입니다. 이제는 언론도 외면하지만 해마다 두 자릿수 이상 발생해요. 어쨌거나 그땐, 답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그편이 오히려 아들이 존엄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유퀴즈', '실화탐사대' 등 방송에도 나갔다. 자신이 쓴 글을 엮어 책도 냈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 <안녕, 피터팬>에서 그는 아들을 '피터팬'이라고 부른다. 그가 꿈꾸는 발달장애인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네버랜드'가 됐다.
"피터팬 이야기는 본래 슬픈 동화지만, 불치병 탓에 어른이 되기 힘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현실의 네버랜드는 불행할 이유가 없는 곳입니다."
나는 그와 두 차례 만났다. 지난달 20일 그와 인터뷰한 후 백경학 푸르메재단 대표와 지난 4일 셋이서 만났다. 그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 자리는 내가 주선했다. 전 작가는 "백 대표와는, 꿈도 각자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같다"면서 이 회동을 '투샷 인터뷰'라고 표현했다. 그날 그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듯했다. 그 이튿날 그가 영면했다는 소식을 후에 기사로 접했다. 인터뷰하기 나흘 전에도 그는 식도 정맥류 파열로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었다. 말기 간암 환자가 흔히 겪는 일이라고 했다.
백 대표가 세운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공익재단이다. 2005년 설립 이래 11년 만에 국내 최초로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지었고, 발달장애 청년 일터인 <푸르메소셜팜>을 만들기도 했다.
전 작가는 지난달 14일 '38년 만의 커튼콜 네버랜드 레퀴엠'이란 이름으로 이미 생전장례식을 치렀다. 자신이 기획해 헌정한 이 공연 도중 네버랜드에 관한 소개를 할 예정이었지만 그때도 쓰러지는 바람에 결국 참석하지는 못했다. 그는 연세대 시절 학내 공연의 기획자이자 연출자였다.

-아들이 갈 만한 시설 무려 1000곳과 접촉했는데 "정원이 찼다", "돌볼 사람이 부족하다", 심지어 제원이의 소위 '도전행동'을 이유로 입소를 거절했다고요?
"중증 자폐인의 경우 자해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밀치고 할퀴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불안과 욕구를 스스로 말로 표현하지 못하기에 행동으로 보내는 일종의 신호죠. 그런 점에서 도전행동이란 말은 그 자체로 잘못된 말입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불안과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제원이는 어렵사리 연결된 농업 생활 공동체 마을에 들어간 후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뒤늦게 이곳을 찾아낸 건 여기가 정부의 '탈시설 자립 정책' 방향과는 충돌하는 비인가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보건복지부의 인가를 제대로 받지는 못했다.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에 있다고 할까? 정식 인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 탈시설 정책에 따라 "기존의 중증 장애인 거주 시설을 대체할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기도 전에 시설을 없애는 바람에 중증 장애인 돌봄의 사각지대가 생겨났다"고 덧붙였다.
"제원이가 사는 곳은 지향점만큼은 네버랜드와 동일한 생활 공동체 마을이죠. 본래 사회적 농장으로 성공을 거둔 곳인데, 요즘은 배추 철이라 배추를 길러요.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씨를 뿌리고, 모종도 심고, 물을 주죠. 이른바 도전 행동을 감시당하면서 갇혀 지내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과 똑같이 즐겁게 일하고 밥때 되면 먹고 숙소로 돌아가 잠을 잡니다. 저로서는 네버랜드를 구상하게 된 원형 같은 곳입니다."
-지난해 4월 간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제원이는 살 곳을 이미 찾았지만 이참에 같은 사정의 중증 장애인들이 살아갈 공동체를 만들 꿈을 꾸시는 거죠?
"3주에 걸쳐 '유퀴즈' 등과 매일 인터뷰를 했고, 대기업 10여 곳에 피터팬재단을 만들자는 제안서를 보냈습니다. 제 나이 마흔이 안 됐을 때 아들이 받은 중증 자폐성 장애 진단에 비하면, 사실 제가 받은 시한부 선고는 아무것도 아니예요."
대기업 한 곳이 재단 설립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가 접촉한 11개 기업이 아닌 곳이었다. 토목·건축을 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인 이곳은 사회공헌 활동(CSR)으로 12년째 취약계층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또 공교롭게도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체인점 세 곳을 운영한다고 한다. 기막힌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 스스로 '행복한 상상'이라고 말한 꿈이 가시화되고 있던 차 그가 스러진 것이다.
<안녕, 피터팬>은 그 새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 책 인세 1억 원을 보태 1800명 가까운 시민이 참여한 약정금이 5억 원 모였다. 장차 피터팬재단 이사회가 될 피터팬재단창립추진위원회도 발족했다. 그는 방송 출연 후 쏟아진 우리 사회의 관심을 '별똥별의 습격'이라고 표현했다.
"실화탐사대 방송 당시 신원을 밝히지 않았는데 네티즌수사대가 5일 만에 저를 찾아냈습니다. 브런치 페이지 하루 방문자 수가 50명 수준이었는데 어느 날 2만 명으로 늘어났죠. 저로서는 제원이 문제 해결에 그치지 말고 그 이상의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무언의 요청으로 받아들였죠.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서러움을 더 이상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폐인 부모들은 외식을 못해요."
그는 이런 글을 올리면 '(중증 발달 장애인에게)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 같은 댓글들이 달린다고 했다.
"타고난 품성이 잔인하다기보다 몰라서, 장애인도 존엄한 인간이라는 인식이 낮아서 그러겠죠. 자폐가 처음 알려졌던 때 자폐인의 평균 수명이 30세 정도였어요. 유전학적 특성이 아니라, 돌봄 없는 환경에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발달 장애인도, 덜 행복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으면서 무엇보다 일을 할 수 있어야죠."
-자녀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이분들의 소원이라면서요? 그런데 네버랜드가 만들어지는 것을 전제로, 이런 공동체가 이 친족 살해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나요?
"3개월 걸려 네버랜드 조감도를 그렸습니다. 네버랜드가 생기면 이 문제의 절반이 해결돼요. 만일 두 곳이 만들어지면 저는 문제의 90% 이상이 해결될 거로 봅니다."
그는 네버랜드를 만드는 기업은 해마다 반복되는 두 자릿 수 규모의 중증 장애인으로 인한 동반자살을 막은 첫 대한민국 기업이 되는 거라고 강조했다.
전 작가는 IT 기업가 출신이다. 기업 간 거래(B2B)형 소프트웨어 회사 오름아이텍을 창업해 25년 동안 경영했고, 경제학도 출신이지만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코딩을 직접 했다. 호적 전산 발급 시스템이 그의 작품이다. 아들을 돌보면서 회사는 자연스럽게 폐업을 했다.
새벽에야 잠드는 제원이를 재운 후 그는 소주를 마셨다. 그는 그 버릇이 간암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노가다 마치고 새벽녘 귀가하는 노인들처럼 저한테는 그 소주 한 잔이 위로였어요. 돌아보면 대단한 부성의 소유자가 아니라 역할과 책임을 피하지 않은 그저 보통의 남자였을 뿐이죠."
-제원이는 엄마와 어떻게 헤어졌나요?
"저로서는 아들의 삶을 살기로 마음 먹었지만, 두 사람의 인생을 갈아넣을 일은 아니더라고요. 아이의 생모는 저보다 젊었고, 그래서 자기 길을 가라고 했습니다."
그가 벌어놓은 돈을 제원이 양육비로 다 까먹었을 때 생모가 경제적인 부담을 졌다. 그는 자신이 떠난 후 제원이를 지켜봐 달라고 생모에게 부탁했다.
-당국을 향해 어떤 제안을 하고 싶나요?
"시민이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하면 시설 인가 등을 잘 도와줬으면 합니다. 전문 돌봄 인력 양성·유지도 전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합니다. 당사자의 입장을 경청하고, 이른바 '탈시설 자립'을 위한 장애인에 대한 시민의 인식 전환에도 필요한 예산을 투입해야죠. 지역사회의 님비(NIMBY,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자신이 사는 지역에는 이롭지 않은 일에 반대하는 행동) 정서의 완화가 목표죠."
그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1962-2027'이다. 스스로 설정한 생몰 연도. "재단 설립의 테이프를 끊는 것까지는 볼 수 있을 거 같다"고 했지만 그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자신이 추진위원장(이사장 후보)인 재단설립위원회 구성까지 마쳤을 뿐이다.
그는 생전에 콘텐츠·출판 플랫폼 '브런치'에 아들의 날들(2)을 연재했다. 지난 8월 25일 마지막으로 올린 글에 그는 이렇게 썼다.
"한 무명노인이 그렸던 '한여름 밤의 꿈'은 '7월의 크리스마스'로 실현됐고, 지금은 '현실 동화'의 탈고를 향해 달려가는 오늘의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피터팬 아빠'가 꿈꾼 중증 발달장애인이 사는 마을 '네버랜드'는 과연 눈앞의 현실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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