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A 2026] 'AI 자랑' 대신…삼성·LG 유럽서 꺼낸 A등급 이상의 '에너지 효율'
LG전자, 더 많은 AI가전과 서비스가 공간을 최적화하는 진화된 AI홈 솔루션 제시
전기세·에너지 절약 예민한 유럽 환경 맞춰 고효율 제품 잇따라 선보여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6'이 본격 시작된 가운데 국내 대표 가전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 나란히 같은 제품 콘셉트를 들고나왔다. 유럽이 전기 효율에 민감한 점을 감안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26에 참가 중이다.
두 기업 모두 '에너지 효율'을 앞세운 제품으로 라인업을 채웠다. 삼성전자는 베를린 도심 훔볼트 카레(Humboldt Carre)에서 6일까지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Your companion to AI Living)'를 주제로 전시 공간을 운영한다. 1991년 IFA에 처음 참가한 이래 메세 베를린의 대규모 자체 전시관 대신 도심에 별도 체험 공간을 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전자는 메세 베를린 18홀에 약 3745㎡ 규모 전시장을 마련하고 '당신에게 맞춘 혁신(Innovation in tune with you)'을 주제로 150여개 주요 제품을 선보인다.

양사가 AI(인공지능)의 가치를 전기요금 절감과 자동 최적화로 재정의한 배경에는 유럽 시장의 특성이 있다. AI라는 기술 자체보다 측정 가능한 비용과 규제, 환경 문제를 해결한다는 설명이 훨씬 강한 구매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의 통계를 보면 미국은 전력 도매가와 소매가가 유럽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과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은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빠르게 확대해 왔다.
유럽연합(EU)은 전 세계에서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지만, 풍력·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불안정한 전력망을 보강하는 데 드는 수조원가량의 비용과 보조금이 각 가정 고지서의 세금과 부담금으로 그대로 얹히는 구조가 됐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망이 흔들리며 원자재 도입 단가가 급등해 전력 도매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는 두 회사의 제품 전략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EU 에너지 라벨 A등급 최저 기준보다 에너지를 최대 70% 덜 쓰는 10㎏ '비스포크 AI 세탁기'를 공개했다. 고효율 인버터 모터를 적용해 세탁물 상황에 맞춰 모터 작동을 정교하게 조절하고, 탈수 시 세탁물의 균형을 맞춰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였다. 표준 세탁 코스(Eco 40-60) 기준 에너지효율지수(EEI)는 15.5로, A등급 진입선인 52를 크게 밑돌아 A등급 안에서도 여유가 상당한 초고효율 제품으로 꼽힌다.
IFA 2024에서 선보인 'A등급 대비 55% 절감' 모델과 IFA 2025의 'A등급 대비 65% 절감' 모델에 이어 70%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세탁 용량도 9㎏에서 10㎏으로 늘었다. 용량이 커지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기존의 절충 관계를 넘어선 셈이다.

LG전자도 세탁기뿐 아니라 바텀프리저 냉장고와 세탁건조기, 건조기, 식기세척기로 A등급 이상 고효율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독자적인 히트펌프와 컴프레서 기술을 바탕으로 A등급 기준보다 에너지를 70% 추가 절감한 세탁기를 내놨고, 바텀프리저 냉장고는 A등급 요건 대비 최대 35%, 하이브리드 에어 드라이 식기세척기는 최대 30% 높은 효율을 제시했다. 사이드바이사이드와 프렌치도어 냉장고도 A등급 성능을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기존 B등급이던 건조기 제품군을 A등급으로 끌어올린 대중 프리미엄 모델도 유럽에 출시할 예정이다.
공간 전략은 삼성과 결이 같다. LG전자는 유럽 표준 가구 깊이인 600㎜를 유지하면서 내부 용량을 확보하는 '핏 앤 맥스(Fit & Max)'를 냉장고에서 세탁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까지 확대했다.

집 전체로 범위도 넓혔다. LG전자는 2024년 인수한 앳홈의 스마트홈 플랫폼 '호미'에 AI 가전과 냉난방공조(HVAC),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동해 집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관리하는 홈에너지관리시스템(HEMS)을 선보였다.
LG전자는 IFA 2024부터 AI DD와 AI 워시, AI 드라이를 에너지 효율과 결합해 왔고 IFA 2025에서는 AI 프레시와 AI 세이빙 모드를 유럽 냉장고에 구체화했다.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전반의 고효율 포트폴리오를 A등급 초과 수치로 묶어 '에너지 리더십'을 앞세우는 전략이다.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IFA에 나온 고효율 가전이 미국 시장에서는 다른 라인업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성능을 희생하는 효율 규제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강한 미국에서는 AI 가전도 사용자가 원하는 성능을 실패 없이 자동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 잘 통한다.
소비자 조사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라벨이 구매에 영향을 준다는 답변이 약 75%였고, 그중 절감 동기가 50%, 환경 동기가 18%였다. 새 가전을 살 때 저전력 소비를 중시한다는 응답도 약 34%였다. 반면 미국은 대형 가전 구매 시 고려 요소로 가격(67%)과 신뢰성(51%), 성능(39%)이 상위 3개를 차지했고 에너지 효율(28%)과 디자인(25%)이 뒤를 이었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사하지 않는 가구의 자발적 교체를 끌어내고 있다. 신축 물량이 약한 시기에도 프리미엄 라인 확장과 빌트인 진입으로 점유율을 늘렸다. 트랙라인 집계 기준 올해 상반기 북미 주방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2위·17.9%)와 LG전자(3위·17.0%)의 합산 점유율은 34.9%로, GE(1위·24.4%)와 월풀(4위·9.3%)의 합산 33.7%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는 한국 업체 합산이 29.6%로 GE·월풀 합산 37.2%에 7.6%포인트 뒤졌던 만큼, 반년 사이 순위가 뒤집힌 셈이다.
세탁기와 건조기, 냉장고 등 미국 6대 주요 가전에서도 LG전자는 지난해 연간 22%를 기록해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두 회사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취약했던 주방가전(레인지·오븐·빌트인) 영역까지 공략에 성공하며 성능을 입증했다.
반면 두 회사가 대형가전 점유율의 70~80%를 차지하는 한국은 사정이 또 다르다. 미국처럼 GE와 월풀을 밀어내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양사가 파이를 나눠 가진 성숙 시장이라는 시각이다. 미국에서는 프리미엄 성능이 GE·월풀 대비 차별점이 되지만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기는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유럽에서 배운 '효율을 교체 이유로 만드는 법'과 미국에서 배운 '이사 없이도 성능을 사게 하는 법'을 모두 끌어와야 한국 시장에서 대처가 가능하다고 본다. 집이 유럽처럼 넓지 않으면서도 전기요금 부담이 있는 데다, 소비자는 미국처럼 처리량과 속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에어컨과 냉장고처럼 전기요금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제품은 유럽처럼 '1등급 대비 몇 % 절감'이라는 표현을 국내 판매 채널에서도 표준화해 소비자가 매장에서 즉시 비교하게 만드는 방식이 수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미국에서 더 크고 빠른 것이 곧 프리미엄으로 통한다면 한국은 반대로 좁은 공간에서 성능을 최대화하는 것이 프리미엄인 만큼, 속도와 성능은 미국을 따라가되 크기와 에너지 효율은 유럽식 모델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