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한국 공군은 왜 커피의 나라에서 수송기를 수입하나
그가 브라질에 남긴 꿈이 항공 강국으로… 美 록히드마틴도 제쳐

2023년 방위사업청은 대형 수송기 2차 사업 기종으로 브라질 엠브라에르(Embraer)사의 C-390을 선정했다. 앞서 대형 수송기 1차 사업에선 미국 록히드마틴이 선정돼 2014년 4대를 인도받았다. 커피의 나라로 알려진 브라질이 세계 최대의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을 제친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엠브라에르는 세계 3위의 항공기 제작사다. 브라질이 항공 강국으로 성장한 출발점에는 산토스뒤몽(Alberto Santos-Dumont)이 있다.
프랑스계 이민자 후손인 산토스뒤몽의 아버지는 커피 농장으로 큰돈을 벌었다. 1891년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아버지는 치료를 위해 아들과 함께 프랑스로 가고, 그곳에서 에펠탑을 본 산토스뒤몽은 새로운 문명에 매혹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세는 악화하고, 농장을 팔아 금융자산으로 바꾼 그는 아들에게 유언처럼 말했다. “젊은이에게 가장 위험한 곳인 파리로 가라. 의사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의 세계는 기계공학에 있다. 돈 벌 생각은 안 해도 된다. 평생 편안히 살 만큼 주겠다.”
1901년 10월 19일 비행선 하나가 에펠탑 주위를 돌자 파리는 환호했다. 28세의 산토스뒤몽이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다시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비행을 실용적인 교통수단으로 만들고자 했다. 1783년 프랑스에서 열기구와 수소 기구가 탄생했지만, 원하는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프로펠러를 장착한 비행선이 등장하면서 방향 조종이 가능해졌다. 이에 프랑스 항공 클럽은 파리 외곽에서 에펠탑을 30분 이내에 왕복하는 비행선에 거액의 상금을 걸었다. 산토스뒤몽이 여러 번 도전 끝에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당시 그는 비행 중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가까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한다. 바로 프랑스 보석상 루이 카르티에(Louis Cartier)였다. 1904년 카르티에는 그를 위해 비행 중에도 쉽게 시간을 볼 수 있는 손목시계를 개발했다. 이렇게 초기 현대식 손목시계가 탄생한다. 훗날 ‘산토스’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된 이 시계는 여전히 카르티에의 손목시계 핵심 라인이다.
한편 1903년 여름, 미국과 영국의 국가 대항전이 열리던 파리의 폴로 경기장에 산토스뒤몽의 비행선이 착륙하자 사람들이 놀랐다. 비행선에서 내린 조종사가 여성이었기 때문. 열여덟 살 미국 소녀 에이다 드 아코스타(Aida de Acosta)였다. 사교계에서 유명한 그녀는 파리에 여행 왔다가 산토스뒤몽의 비행에 매료된다. 산토스뒤몽은 기꺼이 조종법을 가르쳐 단독 비행을 맡기고, 자신은 자전거로 뒤따랐다. 비행선이 갑자기 내려앉으면서 경기는 중단됐지만, 그녀는 잠시 뒤 다시 이륙해 귀환했다. 동력 비행체를 단독 조종한 최초의 여성이다.
그러나 비행선은 이착륙에 여러 지상 요원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1903년 겨울, 라이트 형제의 비행 소식이 전해졌다. 열기구나 수소 기구를 이용한 비행선과 달리 라이트 형제는 ‘공기보다 무거운(heavier-than-air)’ 항공기로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기는 바퀴 없이 레일 위에서 출발했다. 반면 산토스뒤몽은 바퀴를 달면 지상에서 스스로 이착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행선을 만들던 산토스뒤몽은 방향을 바꿔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에 나섰고, 바퀴가 달린 비행기를 만들었다. 1906년 10월 23일 산토스뒤몽은 약 60m를 날았다. 레일 없이 자체 동력으로 지상을 달려 이륙했고, 이 비행은 공식 심사 위원과 수많은 관중 앞에서 공인됐다. 그리고 특허 소송에 시달린 라이트 형제와 달리 그는 자신의 설계를 독점하지 않았다. 설계도까지 공개하며 초기 항공기 제작의 확산에 기여했다.
하지만 1910년 무렵 잇따른 사고와 건강 악화로 산토스뒤몽은 연구에서 물러난다. 특히 1차 세계대전에서 항공기가 무기로 사용되자 우울증이 심해져 스위스 등에서 요양 생활을 했다. 1931년 고국 브라질로 돌아간 그는 1932년 브라질 헌정 혁명에서 다시 항공기가 전투에 동원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해 7월 23일, 59번째 생일을 맞은 사흘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전 중이던 브라질 정부는 그를 기리며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로 장례를 치렀다. ‘동력 비행의 발명가’이자 브라질의 이름을 세계에 드높인 인물로 추앙했다. 내전 후 1936년 리우데자네이루에 개항한 새 공항에 산토스뒤몽의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1906년의 역사적인 비행을 기념해 10월 23일을 ‘비행사의 날’로 지정했다. 오늘날 이날은 브라질 ‘공군의 날’이기도 하다. 2016년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 산토스뒤몽의 비행 장면이 등장했다.
그를 향한 국가적 자부심은 산업으로 이어졌다. 1941년 브라질 정부는 항공부를 신설하고 항공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채택한다. 이어서 항공 관련 대학과 연구 기관들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과 양성된 인력을 바탕으로 1969년 엠브라에르가 탄생한 것이다. 현재 브라질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이지만 동시에 세계적인 항공기 생산국이다. 커피로 번 돈이 한 소년에게 비행의 꿈을 주었고, 그 소년은 브라질에 항공의 꿈을 남겼다. 브라질의 커피가 산토스뒤몽을 키웠고, 산토스뒤몽은 브라질 항공산업의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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