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노력’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 때론 긍정하지 않는 것이 윤리다[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6. 9. 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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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도록 스크린에 가까운 앞자리에서 영화를 본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성장을 담은 영화 '3학년 2학기'를 전국의 학생, 교원, 교육청 관계자와 함께 관람하고, 현장실습 제도 개선 방향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앞으로도 교육부는 현장실습이 배움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전하고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정부 고위 보직자가 이런 영화를 보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다.

내가 볼 때,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전하고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와 같은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영화의 핵심이었다. 정부의 개선 노력 이상의 심각한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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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함부로 긍정 말하지 않기
이란희 감독의 영화 ‘3학년 2학기’는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중소기업 공장에서 보내게 된 실업계고 학생들의 얘기를 다룬다. ‘작업장 봄’ 제공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나는 되도록 스크린에 가까운 앞자리에서 영화를 본다. 거기에 앉으면 스크린도 크게 보일 뿐 아니라 영화가 끝나면 빨리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간혹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영화, 누가 함께 봤을까 하는 궁금증에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좋은 영화를 소수의 관객끼리 보았을 때는, 함께 본 사람들 간에 무언의 동지애가 생기니까. 이란희 감독의 영화 ‘3학년 2학기’가 바로 그런 영화였다. 제작진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나자,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예닐곱 명에 불과한 관객이 있었다.
실습 현장에는 안전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작업장 봄’ 제공
‘3학년 2학기’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고교 졸업 학기를 지칭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소년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시기를 지칭한다. 제목 그대로 영화는 실업계 혹은 특성화고 청소년이 한국 사회에 진입하는 단계를 직접적으로 탐구한다. 진로를 고민하는 고교생들의 대화로 시작해, 그들이 좌충우돌하며 사회의 맛을 보고, 마침내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요즘 실업계 혹은 특성화고 학생의 현황이 궁금한가. 그러면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해당 고교생을 가족이나 지인으로 두지 않은 한, 요즘 그 세계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3학년 2학기가 시작한 이즈음에 보길 권한다.

나의 고교 시절에는 교외 클럽활동을 통해 실업계 친구나 선후배들과 어울릴 일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강북 청소년이던 내가 재개발 이전 서울 관악구 난곡을 경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찬 바람이 세차게 불던 수십 년 전 난곡의 벌판은, 재개발이 오래전에 끝난 오늘날 난곡에는 흔적도 없다. 오늘날 인문계 고교생에게 상시적으로 실업계 고교생을 만날 기회가 있을까. 영화 ‘3학년 2학기’를 통해 미뤄 보면, 없을 것 같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나올지언정, 비실업계 고교생은 단 한 명도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가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주인공 창우가 실업계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아버지가 세 자녀를 두고 일찍 죽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엄마는 세 자녀를 혼자 힘으로 길러야 한다. 여기에 가난의 뿌리가 있다. 혼자 남은 엄마는 고소득을 올릴 만한 기술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다. 그나마 공부를 잘하는 둘째를 대학에 보내기로, 가족은 전략을 세운다. 그러한 가족의 전략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 모든 결정을 묵묵히 수용하는 창우 같은 소년이 과연 흔할까.

교사의 조언대로, 창우는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실습생으로 들어간다. 그 공장에서 실습을 잘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고, 정직원이 되면 연계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대학 진학이 확정되면 병역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실습 현장에서는 유무형의 구박이 이어지고,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작업 시 착용해야 할 팔토시나 가죽 앞치마조차 지급되지 않는다. 특히 2층 하역장에는 작업 속도를 올리느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추락방지 시설조차 없다.

창우는 일을 썩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애매한 실습생이다. 그것이 오히려 그를 현장에 남아 있게 한다. 창우보다 일을 못하는 친구는 초장에 때려치우고 ‘싸나이’가 되겠다며 해병대에 입대한다. 그는 제대 후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 그 싸나이는 행복할 것인가. 다른 한편, 일을 잘하기로 유명한 친구는 너무 일에 매진한 나머지 과로사하고 만다. “사람이 일하다 죽을 수 있는 줄 몰랐어.”

결국 일을 적당히 해낼 수 있는 이들만 현장에 남았다. 그렇다고 경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 사이에도 경쟁이 있고, 창우가 아닌 다른 친구가 정직원-대학-병역 루트를 타게 된다. 이렇게 창우가 자신이 희망했던 루트에서 낙오할 무렵,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창우 대신 루트를 타게 된 친구가 근로감독관에게 안전장비가 부족한 현실을 알리고 만 것이다. 이런 내부고발자(?)는 직장에서 버티기 어렵다. 그 친구는 결국 그 공장을 그만두고 배달라이더가 된다. 그 결과 창우가 대신 그 귀한 정직원-대학-병역 루트를 타게 된다. 이것이 해피엔딩일까. 창우가 원하던 루트를 타게 됐다는 점에서는 그 가족에게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감을 누를 수 없었던 다른 동료의 희생에 기초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일을 겪고도 2층 하역장에는 추락방지 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이 해피엔딩일까.

‘3학년 2학기’는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함으로써 독립영화치고는 제법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교육부 장관도 이 영화를 보고 소감을 남겼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성장을 담은 영화 ‘3학년 2학기’를 전국의 학생, 교원, 교육청 관계자와 함께 관람하고, 현장실습 제도 개선 방향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앞으로도 교육부는 현장실습이 배움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전하고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정부 고위 보직자가 이런 영화를 보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다.

지난해 8월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점검 인력을 덮쳐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당시 출동한 119구조대원이 부상자를 옮기는 모습. 청도소방서 제공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영화의 메시지를 배반한다. 너무 긍정적이어서 오히려 영화를 배반한다. 내가 볼 때,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전하고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와 같은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영화의 핵심이었다. 영화에서는 이미 근로감독관이나 담임선생이나 모두 “안전하고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분투 중이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닌가. 정부의 개선 노력 이상의 심각한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애써 긍정을 자제하는 영화 앞에서 좀처럼 긍정적이 되지 않는 것. 때로는 그것이 관람자의 윤리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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